지난 3월 22일 오전 10시. 그 동안 온갖 부패와 비리를 일삼으며 다시금 학교를 자신의 손아귀 안에 넣으려 한 부패 재단(이우자 전 이사장)에 맞선 싸움에서, 상문고등학교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 들이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이 날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은 서울시교육청의 상문고 재단 이사진 승인 취소를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는 지난해 6월 29일에 있었던 1심(서울행정법원 12부, 재판장 김영태) 재판 결과를 뒤엎은 것이었다. 이로써 상춘식(이우자의 남편)과 이우자는 상문고에 다시 발을 붙이기가 당분간 쉽지 않아졌다.

승리의 원동력

서울고법이 상문고 투쟁의 승리를 '공식' 선언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동안 상문고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들이 벌인 강력한 반대와 항의 행동이었다.

사실, 서울고법의 판결은 지난해 6월 29일에 내려졌어야 했다. 이 날은 이우자가 5차 관선 이사 파견이 부당하다며 행정법원에 '임원취임승인취소에 대한 효력정지 신청'을 제기하면서 열린 재판의 선고일이었다.

그런데 이 날 김영태 재판부는 이우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결국 관선 이사의 업무가 정지되고 학교는 파행을 거듭했다. 재판부는 "신청인들[이우자 등 ― 필자]에게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고,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우자에게 생길 손해는 아주 세심하게 배려한 반면, 이우자 복귀로 인해 생겨날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들의 교습권 침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김영태 재판부의 판결은 곧 부패 재단과 재판부 사이의 유착, 그리고 법조계의 오랜 병폐인 '전관예우'가 어우러진 합작품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이우자 측의 변호사 임승순은 2000년 2월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직을 그만두고 2000년 3월 이 사건을 맡았다.

당시 '상문고 정상화를 위한 공동 대책위원회'(상문고 공대위)는 재판부의 이러한 판결에 대해 "대한민국 사학 교육에 대한 사형 선고"라고 평했다. 그 판결은 상문고를 '제2의 상문고 사태'로 이끌었다.

단지 부패한 재단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상문고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 들은 사회의 모든 부패·비리와 맞서야 했다. 승리의 판결은 바로 그 끈질긴 저항의 결과다.

저항의 날들

1994년 3월 14일 상문고 교사 8명은 상춘식(1973년 교장 취임)과 이우자(1980년 이사장 취임)가 저지른 수많은 비리와 부패에 견디다 못해 양심 선언을 했다.

다음 날 교사 35명이 2차로 양심 선언을 했고, 상문고 재단의 비리와 부패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언론사, 교육청, 교육부, 국무총리실, 청와대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결국 당시 대통령(김영삼)은 특별 지시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고, 검찰은 상춘식과 이우자 등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심 선언 전에도 교사들이 여러 차례 제보를 했지만 언론과 검찰은 꿈쩍하지 않았다.

상춘식과 이우자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1994∼99년 관선 이사가 잇달아 파견되는 동안 상문고는 학생과 교사 등에 의해 민주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됐다.

특히 학생들의 권리가 많이 향상됐다. 학생들은 직접 선거를 통해 1994년에 1대 학생회를 건설했다. 1995년부터 학생예술축제를 열었고, 교복도 자유롭게 정했다. 상춘식·이우자 부부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1999년 12월 27일, 4차 관선이사들이 임시이사회에서 전 이사장 이우자 등 7명을 정이사로 뽑으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학교가 다시 옛 비리 재단의 손아귀 안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뜻했다.

횡령, 배임(背任), 업무 방해, 성적 조작, 교사·학생 인권 말살,  보충수업비  가로채기 …. 1994년 당시 언론과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진 상춘식과 이우자의 비리 혐의이다. 그들의 비리와 부패는 일일이  늘어 놓기 힘들 정도이다.

이런 '교육 범죄자'의 복귀에 반대해 전교조 소속의 상문고 교사 43명과 전교조 서울 지부 10명은 작년 1월 17일 교육청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10박 11일 만에 교사들은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이우자 등의 이사 승인 취소와 5차 관선 이사 파견'을 약속하는 각서를 받아 냈다.

겨울방학을 마치고 2월 7일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도 분노를 참지 못했다. 학생들은 졸업생과 어울려 준비랄 것도 없이 학내 집회를 시작했다. 1천4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우자·상춘식의 재단 복귀 반대"를 외쳤고, 졸업생들은 "모교가 능욕당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음 날에도 학생들 8백여 명이 집결, 전날 대의원 회의에서 채택한 "쾌적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찾고 싶다!"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지난해 2월 10일 5차 관선 이사가 파견됐고, 학교는 다시 정상화 되는듯했다. 특히 5차 관선 이사에는 학부모 추천 1인, 동문회 추천 1인, 교사 추천 1인, 교육단체 추천 1인 등 '상문고 공대위'의 입장을 대변하는 4명의 이사가 속해 있어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6월 29일 법원이 "어처구니 없는 판결"을 내리면서 학교가 다시 파행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학생회는 수업 거부와 기말고사 무기한 연기를 결정했다. 그리고 비리재단 복귀에 항의하는 집회를 7월 5일부터 7월 8일까지 열었다.

특히 7월 8일에는 2천여 명이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및 검찰청 정문까지 가서 법원 판결의 부당함을 규탄했다. 이 날은 또한 학생들이 경찰의 폭력성을 체험한 날이기도 했다. 전투 경찰의 곤봉과 방패와 군화발은 고등학생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2001년 새해에도 파행은 계속됐다. 급기야 재단측은 1994년에 성적 조작으로 구속됐던 장방언 전 교감을 교장으로 임명했다.

교사와 직원들은 2월 9일부터 교무실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3월 2일 개학식 때는 상문고 교사 50여 명과 졸업생 30여 명이 마스크를 쓴 채 학교 정문 앞에서 교문을 걸어 잠그고 신임 교장의 출근을 막았다. 2·3학년 학생 1천6백여 명도 교사들과 함께 '침묵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3월 3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무기한 수업 거부를 결의했고, 9일부터는 등교를 거부했다.

상문고 재단과 교육청 관료의 유착

서울시 교육청은 3월 8일 '상문고 정상화 대책안'을 발표했다. 장방언 교장의 퇴진과 임시 이사 파견이 골자였다. 그런데, 다음 날 느닷없이 '신입생 재배정 및 특수지 학교 지정'이라는 변경안을 내놓았다.

올해 신입생들이 다른 학교로 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특수 지 학교(옛 전수 학교 ― 교육청이 학교 배정을 하지 않고 모집을 통해 학생 선발) 지정은 내년에도 정상적인 신입생 선발을 막는 조처였다. 사실상 교육청 방침은 "상문고 폐교 음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작년과 올해 상문고 파행의 책임이 "교육 당국에 있다"고 지적한다. 작년과 올해 상문고 사태의 도화선은 1999년 말 4차 관선 이사들이 이우자 등을 정이사로 임명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를 사흘 만에 독단 승인한 쪽도, 4차 관선 이사를 선임한 쪽도 바로 시교육청이다.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의 이금천 공동사무처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94년] 상문고 사태가 터졌을 때 상문고 비리와 관련된 교육청 관료가 26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단 한 사람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승진해서 교육부로 올라가서 중요한 고위직을 차지하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4차 관선 이사는 이우자 복귀를 위해서 치밀하게 준비된 시나리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립학교법

"사립학교법 개정은 곧 상문고법 개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현재 국회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과 상문고 사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련을 가진다. 실제로 '이우자 정이사 임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1999년 8월에 사립학교법이 개악됐기 때문이다.

개악의 핵심은 임시 이사 재임 기간을 2년 이내로 하는 것과 현재 재임중인 임시 이사의 임기가 1999년에 끝난다는 것이었다. 상춘식의 인맥으로 짜여진 4차 관선 이사는 자신들이 임기를 마치고 곧바로 이우자 등을 정이사로 선임했다.

더욱 큰 문제는 현행 사립학교법이 여러 부패 재단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만도 전국 50여 개 중·고교와 10여 개 대학이 재단의 부패 문제로 몸살을 앓았고, 현재 수많은 사립학교들이 학교 공금 횡령, 회계부정 등 크고 작은 분규에 휩싸여 있다.

"사립학교법이야말로 사학재단 부정부패의 제도적 근원이며 '교육 마피아' ― 부패한 사학재단과 일부 교육 관료의 카르텔 ― 의 치외법권지대이다. 이 법을 개정하지 않고서는 바람 잘 날 없는 사학재단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한겨레 21〉 2월 20일치.)

연대

현재의 사립학교법, 부패한 사학재단과 교육 관료, 부패한 보수 정치권이 교육을 이끌어 가는 한 이 나라 교육에 미래는 없다.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연대야말로 진정한 교육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이번 상문고는 이 점을 충분히 입증했다. 비리 재단과 맞서기 위해 한편이 됐던 전교조 교사들과 상문고 학생들이야말로 우리 나라 교육을 살리는 진정한 주체이다.

상문고의 경험, 즉 1∼4차 관선이사가 파견돼 있었던 1994∼1999년과 2000년 1학기의 경험은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학교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교사와 학생이 학교 운영을 통제했다. 교무회의에서는 활발한 토론과 합의가 있었다.

작년에 상문고 학생들은 자신의 스승들이 6년 전 재단의 비리를 폭로하며 양심 선언을 한 3월 14일에 맞춰 '인권 선언'을 발표해 두발과 신발의 자유를 쟁취했다. 기자가 만났던 상문고 학생들은 이 점을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여기고 있다.

상문고 '사태'는 우리 나라 교육의 현 주소를 보여 주었다. 동시에, 교육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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