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 탈북 청소년 9명이 강제 북송된 이후, 역시나 우파와 박근혜 정부는 ‘북한 인권’ 운운하며 위선을 떨었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이 청소년들이 억류됐을 때부터 강제로 북송될 때까지 별 관심도 안 보였고 한 일도 없다.

정부의 이런 안이한 대처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는 탈북민들을 우파 결집과 ‘종북’ 공세의 소재로만 이용했을 뿐이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탈북민 수가 급격히 늘자 한국 정부는 탈북민들을 짐짝 취급했다.

이명박 정부는 중국 등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 8만여 명을 국내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제3국에 수용소를 지어 수용하려 했고, 탈북민을 ‘잠재적 간첩’ 취급하면서 이들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고 통제를 강화했다. 한국 입국 심사 기간을 늘리는 등 입국 요건을 강화했다.

환멸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처지가 더 나은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엄청난 실업률과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에 시달리는데 정부는 탈북민 지원금도 대폭 줄이고 정착금 지원 기간이나 대상도 축소했다.

이런 온갖 차별과 편견 속에서 남과 북 모두에 환멸을 품는 탈북민도 적지 않다. 오죽하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탈북민들이 계속 생겨나겠는가.

한국 정부와 우익들이 탈북민들의 처지는 나 몰라라 하고 심지어 문제를 만든 장본인이면서 ‘인권’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다.

새누리당이 추진하겠다는 ‘북한인권법’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북한 압박용이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대북 식량 지원에 반대하거나 인색했다. 북한인권법에는 ‘북한 인권 관련 민간 단체들에 대한 지원’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이것은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는 반공·반북 뉴라이트 단체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부각해 사회적 쟁점을 돌리고 우파를 결집하려 한다.

민주당 정책위의장 장병완은 ‘일부 내용을 수정한다면 북한인권법을 수용할 수 있다’며 이를 추수하고 있다.

다른 한편, 오바마도 중국 견제용으로 이 쟁점을 꺼낼 듯하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인권을 운운하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이후 2011년 말까지 미국에 입국한 탈북 난민은 불과 1백26명밖에 안 된다. 미국은 고통에 처한 탈북민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핵 선제 공격 위협과 연습까지 하면서 ‘인권’을 말하는 것은 우습다.

물론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는 심각하다. 평범한 주민들이 극심한 생존 위기에 처해 있고 수만 명이나 탈출한다는 사실은 북한 체제의 문제를 드러낸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며 주민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사회는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 점에서 좌파는 탈북민 문제를 미국과 남한의 냉전 우익들이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부풀린 거짓으로 치부하며 침묵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자들은 북한 압박용일 뿐인 북한인권법 제정에 반대하면서도, 탈북민의 자유 왕래, 난민 권리 인정, 한국 정착 탈북민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를 요구해야 한다.

남한의 노동자·민중이 그랬듯, 북한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쟁취는 오로지 북한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 투쟁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관점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