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철도 구조 개편 계획과 너무도 흡사한 영국식 분할 민영화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재앙의 길이다.

영국에서 민영화의 시작을 알린 것은 1980년대 대처 정부였다. 1950~60년대 장기호황이 끝나고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서, 지배자들은 노동계급을 더 쥐어짤 신자유주의를 천명했다.

영국 보수당 정부는 1990년대 중엽부터 철도 민영화에 착수했다. 정부는 철도사업 전체를 1백여 개로 조각내 사기업에 팔아 넘기겠다고 선언했다.

이권을 잃을까 걱정하던 일부 정부 관료들, 심지어 일부 보수당 의원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의 반대는 일관되지 않았고, 대처 정부하에서 약화된 노동운동은 민영화를 막아 내지 못했다.

결국 영국 철도는 1997년 4월에 완전히 분할 민영화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했다.

시설 유지·보수를 맡았던 사기업 레일트렉은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투자에조차 인색했다. 1997년 런던 사우스올 사고로 7명이 사망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윤에 눈이 먼 레일트렉은 이 사고 이후에도 재정 부담을 이유로 보호 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2년 뒤 런던 패딩턴역 근방에서 열차 충돌 사고가 벌어져, 다시 31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기업들이 돈벌이 경쟁을 하는 체제에서는 최소한의 통합적 안전시스템도 불가능했다. 2001년에 레일트렉 대변인은 이렇게 시인했다. “선로 시설도 있고, 열차도 그대로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을 어떻게 결합시켜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열차 운행사들도 주주 배당을 위해 공공성을 내팽개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기업들은 고장 난 안전장치를 수리하지 않은 채로 운행을 감행하기 일쑤였다.

특히 영국의 철도 요금은 매년 치솟아 대중의 원성을 사고 있다. 2013년 현재 서울역에서 수원역 거리(리버풀-맨체스터)의 1년 이용료가 한국보다 5~6배나 비싼 4백80만 원이나 된다. 게다가 정부의 보조금은 줄어들기는커녕, 민영화 이후 2배 가까이 늘었다. 사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려고 혈세를 쏟아부은 탓이다.

영국 기관사 노조의 앤드루 머리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 철도의 경험 덕분에 ‘민영화와 자유 시장이 우월하다’는 주장이 끝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에 맞선 대안을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된다면, 영국에서 우리가 겪은 온갖 괴로움들은 결코 헛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