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8년에 수은증기에 중독돼 이가 삭아 빠지고 온몸의 뼈가 녹아내린 열다섯 살 송면이가 마석 모란공원묘원에 눕혀질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또, 동료 택시 노동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위장질환과 관절염,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노동재해’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됐다.

컨베이어에 머리가 딸려 들어간 해태제과의 여성 노동자, 화학물질에 절은 몸뚱이로 살아가는 한국타이어 노동자, 수만 볼트에 감전돼 팔다리가 잘린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전기원 노동자들을 봐 왔다. 점차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며칠을 잠 못 자며 육중한 건설 장비를 운송하던 트레일러 노동자가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타워크레인이 무너져서 한꺼번에 여러 생명줄이 끊기는 일들은 알고 보니 사장들의 이윤을 위해서였다.

혼잡한 길거리에서 일어난 작은 접촉사고를 회사에 알렸더니 수화기 저편에서 돌아오는 답은 “차 많이 망가졌냐?”였다.

“다치지 않았냐? 많이 놀랐겠구나!” 하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런 일들 때문에 너무나 화가 나서 동료들과 함께 트럭 19대의 운행을 이틀간 거부한 일도 있다.

1990년대에 뇌가 녹아내려 죽어 나간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을 보면서 이처럼 한스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데 이윤의 흡혈귀는 2000년대 반도체 산업으로 옮겨 와서 박지연 씨와 황유미 씨를 죽였고, 이것도 모자라 더 많은 죽음을 부르고 있다.

일회용

구미공단에서 새어 나온 불산가스 때문에 소나무가 벌겋게 단풍처럼 물들고 콩잎사귀는 만지면 부서지는 화석이 됐다. 적어도 앞으로 3년간은 농작물을 경작할 수 없을 정도로 일대의 모든 것이 망가졌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사장들은 노동자들이 대피하지 못하게 하고 일을 시켰다. 여전히 우리는 이처럼 슬픈 현실의 한가운데에 버려져 있다.

자그마한 도시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어린 시절에 ‘공장 다니는 친구’라고 내가 늘 부러워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손톱깎기 공장을 다니다가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렸는데 보상금으로 7천 원을 받고 공장에서 쫓겨났다. 이윤 축적을 위한 ‘일회용 반창고’인 셈이었다.

자본주의 이윤 축적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기계의 안전이 우선이다. 노동자가 쾌적한 환경에서 평온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등은 언제나 관심 밖의 일이다.

이윤 축적을 위한 경쟁 속에서 노동자들의 등골을 먼저 빨아먹는 자가 번쩍이는 자가용을 굴리는 사장이 되던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맞은편 기슭에는 개발 독재 시절 변변한 건설 장비도 없이 ‘인해전술’로 만들던 경부고속도로에서 죽어 나간 노동자가 77명이라고 쓰인 비문이 있다. 물론 이 수치가 거짓말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처럼 참혹한 세월의 질곡을 딛고서야 1980년에 산업안전보건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용광로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는 끓는 쇳물에 빠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영국에서는 한 노동자가 노동재해로 사망하자 해당 기업주가 과실치사로 구속됐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노동자 40명이 허파가 시커멓게 타 죽게 내버려 둔 냉동 창고 기업에 고작 벌금 2천만 원이 부과됐다. 한 사람당 50만 원씩으로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노동안전·보건 단체를 중심으로 ‘기업살인법’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통계로 한 해에 2천5백 명이 노동현장에서 죽어 나가고 10만여 명이 다친다. 이 법안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노동현장에서 어마어마한 죽음의 행렬을 멈칫거리게라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병원 노동자가 환자를 돌보다가 바늘에 찔리고 메스에 베이면서 병원균에 감염되고 있다.

평생을 칠판에 글을 쓰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육 노동자가 밤마다 어깨가 아파서 잠을 못 이루고 성대질환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일생을 건설현장에서 망치질을 해 온 노동자가 날이 갈수록 팔을 마음대로 못 쓰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이윤체제를 반드시 폐지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