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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률 70퍼센트 로드맵:
여성은 육아를 전담하며 시간제로 일해라?

한국의 고용률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낮다. 청년과 여성 고용률이 평균을 크게 밑돌기 때문이다. 반면,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한국 노동자들은 OECD 평균보다 해마다 3개월이나 더 일한다.

따라서 노동계급 입장에서도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일자리냐 하는 점이다.

박근혜의 ‘고용률 70퍼센트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협약’의 제1장은 기업 규제 완화와 기업의 성장이 우선임을 밝히고 있다. 철저히 자본가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로드맵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늘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기존 일자리를 쪼개거나, 임금을 더 주지 않고도 더 오래 일하게 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정부는 네덜란드가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최근 판 베첼 네덜란드노총 대표는 “극도로 불안정한 형태의 고용이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하는 결과를 낳고 고용의 질이 악화됐다”고 ‘네덜란드 모델’의 실체를 폭로했다.

박근혜의 로드맵의 주요 내용도 시간제 일자리 확대다. 이를 통해 특히 여성 고용률을 높이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들에게 ‘일하고 싶으면 시간제 저임금 일자리에나 만족하라’는 말일 뿐이다. 이미 여성 노동자 60퍼센트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임금도 남성의 60퍼센트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에 많이 편입되면 여성들의 노동시장 내 차별적인 지위가 더 악화될 것이다.

강요된 ‘선택’

현재 시간제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전체 노동자 평균의 64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사회보험 가입률도 매우 낮다. 시간제 일자리의 92.3퍼센트가 고용이 매우 불안정한 임시·일용직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차별 없는”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기업의 투자를 강제할 방법은 내놓지 않는다.

설사 시간제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이 전일제 노동자와 같아진다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전일제 노동자도 기본급만으로 생활할 수 없는 저임금 구조 속에서, 시간제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평생 시간제 일자리에 머무르려 하겠는가. 따라서 지금 같은 조건에서는 여성들에게 시간제 일자리는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것일 수밖에 없다.

사실 로드맵은 이미 실패한 정책의 재탕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가 공공부문에 유연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신청자가 거의 없었다. 임금·인사·승진에서 차별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청한 사람들은 육아 부담 속에서 시간제 일자리라도 감수해야 했던 여성과 일부 하위직급 노동자들뿐이었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여성들에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라고 강요하는 것이고, 여성에게 육아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의 본분이 육아와 가사노동이고, 여성은 저임금을 받아도 되는 부차적인 노동력일 뿐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실제로는 여성 노동이 경제 전체와 가족의 생계에서 점점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여성들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받는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원한다. 질 좋은 여성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보육에 대한 국가의 대대적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출산율과 여성의 노동 참가율을 높이고자 보육 예산을 늘려 왔으나 턱없이 부족했고, 주로 민간 보육시설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실패 재탕하기?

그러나 이윤 추구가 우선인 민간 시설은 보육의 질이 낮고 온갖 추가 부담을 요구한다. 이런 보육 시장화 정책 때문에 현재 국공립보육시설의 비중은 겨우 5.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질 좋은 국공립보육시설이 대폭 확충돼야 한다.

또, 여성들이 육아기에도 유급 휴가를 차별 없이 쓸 수 있어야 하고, 육아휴직비의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 출산을 이유로 해고되지 않고 출산 후 원래의 업무로 복직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남성들이 녹초가 되도록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구조로는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육아 분담이 몹시 어렵다.

무엇보다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해야만 한편에선 전일제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때문에 고통받고, 다른 한편에선 저임금 시간제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고통받고 ‘투잡’, ‘쓰리잡’을 뛰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하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변화에 필요한 돈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제 위기인데도 2012년 3분기에 상장회사 1천6백44곳의 내부유보금은 8백32조 원이나 됐다. 최근 조세도피처를 통해 빼돌려진 한국 자금이 8백조 원이 넘는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런 돈을 노동자들을 위해 쓰게 하려면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이 필요하다.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질 좋은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것은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구직자 모두가 단결할 수 있는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