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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속의 논쟁 - 노동귀족론은 왜 틀렸는가:
대기업 조직 노동자 투쟁이 정당한 이유

정부와 보수언론, 사장들은 ‘귀족노조의 집단 이기주의’를 비난한다.

기업의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는 것도,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도 모두 대기업 정규직 ‘노동귀족’의 자기 몫 챙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업주들과 그 나팔수들의 이런 “노동귀족론”은 첫째 진정한 계급 불평등을 가리고 왜곡한다. 그래서 그 책임을 엉뚱한 곳에 전가한다.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 대면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노동조건이 절반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실개울이라면, 기업주와 노동자(계급 간)의 차이는 태평양이다.

10대 그룹 총수들이 2012년초에 주식 배당으로만 받은 돈이 2천5백60억 원이다. 연봉 5천만 원 노동자 5천 명 치 연봉을 단 열 명이 주식 한 주 처분 않고도 현금으로 챙긴 것이다.

계급 불평등 경제 위기 속에서 국민총소득 중 기업소득의 비중(위 그래프의 검은선)은 꾸준히 늘고 있고 가계소득의 비중(아래 그래프의 검은선)은 반대로 계속 줄고 있다.(회색선은 OECD 평균) ⓒ레프트21

현대기아차 그룹 정몽구와 정의선 부자가 최근 3년간 받은 주식배당액만 가지고도 현대차 공장의 비정규직 1만 3천여 명을 모두 정규직화할 수 있다고 한다.

2006년에 경총 회장을 맡아 최저임금 동결과 비정규직 악법 제정에 앞장섰던 이수영은 그 기간에 조세도피처에 큰 돈을 숨겨 놓고 있었다. 경총은 올해도 최저임금 동결 생떼를 썼다.

계급

이처럼 진정한 불평등은 바로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있다. 노동계급의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내부의 차이를 강조할 게 아니라 노동계급이 단결해 자본가계급에 맞서야 하는 것이다.

노동귀족론은 이쯤에서 또 독사의 혓바닥을 내민다.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 때문에 노동계급 내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정규직이 양보·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둘째 문제점이다.

노동부 통계를 보면, 2010년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자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온다. 반면, 2011년에는 그 격차가 좁혀졌다. 그런데 임금 인상률로 보면, 2010년에는 양쪽 노동자 모두 임금이 많이 올랐고, 2011년에는 둘 다 임금이 오히려 줄었다.

노동계급의 임금은 대체로 동반 상승하고, 동반 하락하는 것이다. 이런 패턴은 그 이전에도 나타난다. 사실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1987~96년에는 임금이 상승하며 내부 격차도 줄었다. 임금이 가장 낮았던 제조업에서 임금이 엄청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같은 중요한 운동들은 모두 상향 평준화를 이루자는 요구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더 나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낮춰야 한다는 것은 상향 평준화 요구의 기준점 자체를 낮추자는 기만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임금 격차가 워낙 크다 보니 중소기업에 오려는 인력도 적고, 어렵게 뽑아 놔도 금방 대기업으로 가는 게 현실”(〈한국경제〉)이라고 말한다.

즉, 대기업·정규직의 노동조건을 중소기업 수준으로 낮추자는 것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1년 중소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은 대기업의 29.1퍼센트에 불과하다. 반면 임금은 대기업의 약 62퍼센트다.

임금 격차보다 생산성 격차가 더 큰 것은 오히려 대기업 노동자가 기업주들에게 더 많이 착취당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노동귀족론은 이런 현실을 가리는 구실도 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을 판매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이용해 기업주들은 임금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킨다. 이런 잉여노동을 사장들이 집단적으로 가져가는 게 자본주의 착취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노동귀족’ 정규직들도 엄청난 노동시간에 허덕인다. 현대차 공장에서 1년에 2천5백 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가 1만7천여 명이나 된다. 하루 8시간, 주5일 노동을 기준으로 OECD 평균보다 거의 넉 달을 더 일하는 셈이다.

바로 그 때문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착취당하는 몫을 줄이려고 투쟁하는 것이다. 임금을 깎지 말고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요구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투쟁한 결과인 것이다.

노동귀족론이 하는 셋째 구실은 바로 이런 조직된 행동을 비난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해악적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정부와 사측에 협조한 대가로 기사 딸린 고급 세단이나 타고 다니며 온갖 특권을 누리는 일부 어용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귀족’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 노동운동가’로 치켜세운다.

반면 사측이 저지르는 불법, 차별, 폭력에 맞서 공장을 점거하고 싸움에 나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노동귀족’이라고 비난한다. 보통의 비정규직보다 두 배 가까운 연봉을 받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저들은 잘 조직돼 투쟁으로 자신의 노동조건을 올리는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주로 민주노총 소속인 이 노조들은 두 가지 강점이 있다. 자동차 등 주력 수출 대기업과 공공부문 등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부문에 잘 조직돼 있다는 점과 여전히 전투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조직

2008년 기준으로 조직 노동자 중 1천 명 이상 노조에 속한 노동자가 71.4퍼센트다. 최근 노동쟁의에서 대기업 노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40퍼센트다.

10퍼센트를 간신히 넘는 노조 조직률에도 한국의 노조가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리해고 등을 도입하려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에 맞선 1997년 1월 파업에서도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며 앞장서 결국 승리를 불러온 주역은 대기업 노조들이었다.

역사에도 이런 사례가 많다. 20세기 초 유럽에서도 금속산업 대공장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비난받곤 했다.

그러나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서, 독일 베를린에서, 전쟁을 끝내는 혁명에 앞장선 것은 잘 조직되고 투쟁의 경험이 탄탄한 이 “귀족” 노동자들이었다.

진정으로 자본주의의 패악을 끝장내고 싶다면 노동계급 대중의 힘에 기대야 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권력의 원천인 이윤 창출을 봉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한 바로 이 힘 때문에 노동계급은 새로운 사회를 주도해서 조직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한 유일한 집단이다.

이들은 “배제”됐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만한 ‘힘’과 ‘경험(투쟁과 조직화의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 자본가들이 주요 부문에 잘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증오하는 것이다.

지금 노동운동이 위기인 이유는 이런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이런 맥락에서 진보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노동중심성 패러다임과 대기업 정규직 정당에 치우친 것이 문제’라고 ‘반성’한 것은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노동귀족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노동운동의 약점에 진정한 책임이 있는 노조운동 상층 지도자들의 관료주의와 투쟁 회피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운동 좌파 지도자들에게 의존하던 일부 좌파도 상층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나 노동 대중의 일시적인 전투성 후퇴를 두고 도덕적 실망에 빠지곤 한다. 그 좌절감과 조급함이 일부에서 조직 노동운동과 거리 두기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려면, 노동계급 대중의 잠재력을 현실화할 전략과 정치가 필요하다. 노동귀족론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때는 그것을 적극 지지·고무하면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려 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제를 가장 잘 수행할 집단은 조직된 사회주의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연결망을 구축하며 그들이 투쟁 속에서 협소한 부문주의와 개혁주의를 뛰어넘도록 고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