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 왼쪽으로 이동하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남한의 정치 지형을 살펴본다

 

운 좋게도 얼마 전에 나는 급속히 변하고 있는 나라인 남한에 다녀왔다. 남한은 세계 자본주의의 무게중심을 환태평양 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동아시아의 몇 안 되는 역동적인 경제권 가운데 하나다. 지난 몇 년 동안 남한의 경제 상황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1997년에 남한은 이른바 “IMF 위기”를 겪은 바 있다. IMF는 그 공황을 이용해 남한 경제를 외국 자본에 개방시켰다.

남한은 이제 다시금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마어마한 도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재벌 ― 남한 경제를 지배하는 족벌 대기업 ― 들은 수출과 해외 투자를 중국에 집중시켰다. 말하자면 남한은 중국의 경이로운 경제 호황에 빌붙어 온 셈이다.

지금까지는 이 방법이 먹혀들었지만 만약에 중국 경제가 과열된다면 ― 일부 논평가들은 이것이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 그에 따른 침체는 남한도 함께 끌어내릴 것이다.

한편, 남한의 정치 상황도 바뀌고 있다.

1960년부터 1993년까지 군사 독재 정권이 급속한 공업화를 주도하며 남한을 통치했다. 1987년에 노동자와 학생들의 대규모 반란에 직면한 군부는 마침내 권력을 포기했다.

하지만 1990년대의 정치적 민주화는 겉보기엔 그럴듯했지만 내용은 부실했다. 좌파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았다. 이 법은 사회주의자들을 북한 간첩으로 매도하는 데 이용됐다.

“3김” 정치가 남한 정계를 주름잡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군사 독재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로, 1990년대에 차례로 대통령이 됐다.

그들은 집권하기 위해 세번째 김씨인 김종필로 대변되는 수구 세력과 타협했다. 1961년의 군사 쿠데타를 기획했고 공포의 대상이던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김종필은 1990년대에 의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002년 말에 진정한 정치적 단절이 일어났다. 미군 장갑차가 한국인 10대 소녀 두 명을 치여 죽이자 거대한 촛불 시위가 일어났다. 지금도 남한에는 거의 4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당시에 부시 정부는 이라크는 물론, 북한 정권과도 전쟁을 벌이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재래식 전쟁만으로도 좋이 수십만 명은 죽을 것이다.

두 여중생의 죽음 ― 미군이 저지른 수많은 살인 사건 가운데 최근의 사례 ― 은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대규모 저항을 촉진했다. 그 저항의 정치적 수혜자는 노무현이었다. 그는 자유주의 성향의 노동변호사 출신으로 2002년 12월 대선에서 당선했다.

집권한 노무현은 곧 실망스런 인물임이 드러났다. 그는 전임자들의 자유 시장 정책을 추종했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돕기 위해 남한 군대를 파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 그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여전히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수구 정당들은 이때다 싶어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노무현을 탄핵했다.

이 준(準)쿠데타에 맞서 대중은 대규모 항의 시위로 응수했다. 4월에 실시된 의회 선거에서 수구세력은 몰락했다. 노무현의 열린우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김종필은 의석을 잃었고 현재 삼성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중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에 창당했다. 이 당은 1997년 대중 파업 당시 핵심적 구실을 한 민주노총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남한 사회는 급속히 왼쪽으로 이동해 왔다. 많은 논평가들은 촛불 시위와 탄핵 반대 행동에 대거 참가한 청년들에 주목했다.

물론 노무현이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그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지지 기반, 재벌, 미국 제국주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할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남한의 노동자들이 이제 독자적인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아울러 사회주의자들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당을 왼쪽으로 끌어당기고 의회주의적 타협에서 멀어지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지난달 23일에 나는 민주노동당 내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 단체 ‘다함께’가 서울에서 주최한 6백 명 규모의 토론회에서 연설했다.

‘다함께’는 반전 운동과 탄핵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1월에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도 그들은 두드러졌었다. ‘다함께’의 등장과 성장은 남한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또 다른 징표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