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축은 이라크 위기가 재촉한 것

김하영

 

미국은 주한미군 1만 2천5백 명을 1년 반 안에 감축하겠다고 한국측에 통보했다.

그러자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은 이것이 그 동안 한국 내 반미 분위기가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결과라고 노무현 정부를 몰아세웠다. 미국의 비위를 잘 맞춰 그들을 붙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가 노무현 정부 또는 한국 내 반미 분위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1990년 4월에 발표된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에 따라 1990년부터 1992년 사이에도 주한미군 7천 명이 철수한 바 있지만, 당시 정권은 미국에 매우 고분고분한 노태우 정권이었다.

전 주한 미국 대사 윌리엄 포터가 적절히 비유한 바 있듯이, 한국의 전통적 지배자들은 여전히 “‘엉클 샘’의 젖통에 착 달라붙어 … [미군을] 놔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계속돼 온 그들의 이런 태도에 진저리를 내 왔다. 미군(2사단)이 피해를 입으면 미국이 자동 개입한다는, 그래서 한국 지배계급이 부여잡고 싶어하는 “인계철선” 개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미연합사령관 리언 러포트는 지난해 4월 M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인계철선은 미2사단 장병에게 모욕적인 발언이며, 이미 파산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주장하듯이 근래에 한미동맹이 전과 같지 않고 삐걱거려 온 것은 사실이다. 매향리, 포름알데히드 방류 등으로 누적된 주한미군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2002년 두 여중생의 죽음을 계기로 정점에 이르렀고, 이것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계적 반감과 만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삐걱거림의 기저에는 냉전 해체라는 세계사적 변화가 깔려 있다. 냉전 해체 때문에 남한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생겨났다. 예컨대, 미국은 북한을 악마로 만들기를 원했고 남한은 한편으로 북한과의 쉽지 않은 화해를 조심스럽게 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내부에서는 ‘햇볕 정책’ 추진 이후, 특히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고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았으며, 그 경우 주한미군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했다고 한다(헤리티지 재단의 L 워츨).

 

미군 기지의 세계적 띠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는 한미동맹과 관계가 없다. 그것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PR)의 일환으로서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대규모 해외 미군 기지를 소규모 기지로 대체하려는 복합적인 변화의 서막”이다.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의 주요 기획자인 미국 국방부 전략 담당 부차관보 앤디 호언은 “이 문제는 … 특정 지역이나 대륙을 초월하는 것으로, 전 세계적 규모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럼스펠드는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해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테러집단이나 국가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과 한국 등에 붙박여 있던 대규모 미군 기지를 기동성이 높은 신속 대응 체제로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군의 전력은 분쟁 지역에 투입되는 데 30일이나 걸린다는 약점이 있다. 미국은 96시간에서 120시간 이내에 분쟁 지역에 투입될 수 있도록 미군이 작고 가벼운 장비를 사용하는 여단 또는 경사단으로 편제되기를 바란다. 한국에도 이미 선보인 스트라이커 부대처럼 말이다.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가 부시 정부 구상대로 이뤄지면 미군 기지의 띠는 유라시아 대륙을 휘감게 된다.

주한미군, 특히 2사단은 미군 내에서도 가장 기동성이 떨어지는 부대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4월 10일 한 학술회의에서 예비역 미 해군소장 에릭 맥배든은 “미 국방성 관리들은 주한미군을 비기동적인 군대의 최악의 표본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문가와 정책담당자들은 주한미군을 즉시 재배치하고 기동군으로 재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과 개편 작업은 보병을 줄이는 대신 해·공군력을 강화하고 첨단무기 배치를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파탄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가 미국의 넓은 안목 속에서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한미군 감축은 예정보다 서둘러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라크에서 미국의 다급한 처지 때문이다.

전 국방부 정책실장 차영구는 〈조선일보〉가 마련한 대담에서 “[주한미군 조기 감축의] 가장 가까운 원인은 이라크 안정화를 위한 미국의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애초에 럼스펠드 구상은 두 개 이상의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러 승리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한 개의 전선이 수렁에 빠지는 것을 구조하는 데 급급해 있다.

당연히, 다른 전선엔 이상이 없느냐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누가 보아도 미국은 지금 ‘북한의 위협’을 돌볼 여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군 재배치가 북한에 대한 당장의 공격 가능성을 높인 것처럼 여기는 시민사회단체 일각의 주장은 옳지 않다. 미국의 말과 그것을 실행할 능력은 구분해야 한다. 미국이 한반도로 시선을 옮길 여력을 갖게 되느냐 아니냐는 여전히 이라크에 달려 있다.

물론 주한미군 감축이 곧 한반도 긴장 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앞으로 3년 동안 110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비를 들여 주한미군의 기동성과 첨단무기 능력을 강화한다는 전력 증강 계획을 내놓고 있으며 한국 정부에도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자주” 국방의 이름으로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안보 공백”을 국방비 증액으로 메우려 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국방비를] 노 대통령 임기 내 GDP 대비 3.2퍼센트로 증액하고 당장 3퍼센트로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협력적 자주 국방”의 비전은 (미국으로부터) 신형 무기들(공중조기경보통제기, 공중급유기, 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 이지스함 등)의 도입을 포함한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안보 불안 사태가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활용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주변 지역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익들의 “안보공백” 호들갑과는 달리, 주한미군의 감축이 아니라 그 주둔이 한반도를 불안정으로 몰아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