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는 곳에 주둔하지 않는다”?

 

럼스펠드는 “미군은 원하지 않는 곳에 주둔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덜 고분고분한 정권들을 향한 협박일 뿐, 순전한 거짓말이다. 주둔지 주민의 의사를 거슬러 미군이 주둔해 있는 곳이 전 세계에서 한둘이 아니다.

예컨대 1995년 미 해병 두 명과 해군 한 명이 오키나와에서 12살짜리 소녀를 납치해 강간한 사건이 벌어진 뒤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에서 미군 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하라는 항의가 거세게 일었지만, 주일미군은 감축되지 않았다.

이번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과정에서도 주일미군 감축 계획은 없다. 주일미군이 주로 해·공군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전 국방부 정책실장 차영구가 지적하듯이, “주한미군이 좀 빠지고 주일미군은 그대로인 것은 미국의 전략 때문이지 정권의 기분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또, 미국은 필리핀처럼 미군이 이미 쫓겨난 지역에서도 기지를 다시 설치할 권리를 확보할 방안을 찾는 데 부심해 왔다.

미국은 주둔국의 의사가 아니라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세계 곳곳에 미군 기지를 확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군 기지는 2001년부터 급속히 늘기 시작했는데,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의 기지 수가 특히 눈에 띄게 늘었다.

해외 미군 기지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에 대해서 절대적인 군사적 우세를 유지”하고 “가능한 한 많은 석유 자원을 통제”하는 구실을 한다(찰머스 존슨, 《제국의 슬픔》).

해외 미군 기지는 다국적기업의 이익에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 전에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 ― 셰브런, 캘리포니아 유니언 오일, 엑슨 등 ― 은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양보를 얻어 내고 파이프라인 사업을 성사시키려고 애썼지만 성과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이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