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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의 재정적·정치적 독립성을 위해: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서울시 지원금 수령 결정을 철회하라

 이 글은 8월 30일 노동자연대다함께가 발표한 성명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이하 서울본부) 지도부가 서울시로부터 약 20억 원을 받아 비정규노동센터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노동운동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문제는 곧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에서도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우리는 서울본부 지도부의 서울시 지원금 수령에 반대하며, 민주노총 중집이 노동조합의 재정 독립성 원칙을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2001년 대의원대회에서 국고보조금 수령 시 “건물, 토지 등 부동산과 최소한의 관리유지비를 포함한 비용으로 제한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 뒤에도 정부 지원금 수령 논란이 계속됐고, 2011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는 ‘미조직·비정규 사업 등에 한해 정부(와 지방정부) 지원금을 확대해 받자’는 안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 지원금 내역에는 사업비와 인건비 등 비정규노동센터의 제반 운영비가 다 포함돼 있어 2001년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정해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정을 산하 조직이 마음대로 뒤집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2001년 대의원대회에서 정부 지원금 수령을 제한한 것은 정부 지원금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우려한 정당한 결정이었다. 노동조합이 사측이나 정부의 지원으로 재정을 충당한다면 그들의 압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서울본부가 수령하려고 하는 20억 원은 서울본부 1년 예산의 무려 3배가 넘는 규모다. 비정규노동센터의 사업 규모가 서울본부의 그것을 압도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본부가 서울시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며 필요할 때 제대로 맞서 싸울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일리가 있다. 지금 서울시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로 이런 정당한 걱정과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자주성 침해

또, 서울시 지원금을 받으면 ‘서울특별시 보조금 관리조례’에 따라 서울시의 관리와 감독을 받게 되는데 이는 통제의 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 지원금이 투여된 사업에 시의 입김이 당연히 작용할 테고, 시의 판단에 따라 지원금이 중단되거나 축소될 수도 있다. 지원금이 끊길까 봐 전전긍긍하거나 눈치를 보면서 정치적 독립을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서울시가 제시한 노동단체 지원사업의 추진 방향을 보면 서울시의 재정 지원에 대가가 없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는 “산업현장에서 분규를 해소하기 위한 노사갈등관리 프로그램 운영”, “노조운영의 민주성·투명성 강화사업(규약 개정, 외부 회계 감사)”, “불합리한 노사관행을 시정하기 위한 홍보 및 연구사업” 등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포함돼 있다. “불합리한 노사관행 시정”에는 임금 인상 주기를 늘리는 개악 방안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들은 시민운동 리더 출신인 박원순 시장이 주는 지원금이기 때문에 괜찮다거나 ‘정부에게 돈을 받더라도, 비정규직 지원과 같은 좋은 일에 쓰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서울본부 지도부도 서울시 지원을 받아서라도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복지가 더 제공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재정 문제에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박원순 시장이 일부 개혁적 조처를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전철 민자 사업, 어린이집 위탁 계획 등에서 보듯이 한계도 분명하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것을 잘 보여 준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정치적 독립성을 갖고 박원순 시장의 정책에 대해 잘못된 것은 반대하고 필요할 때 투쟁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재정을 의존하고서 정치적 독립성을 온전히 발휘하기는 어렵다.

노동조합의 임무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고 노동자들을 집단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서울시 재정을 지원받아 일부 노동자 개개인을 구제하는 것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건 개선을 위해 스스로 투쟁하도록 지원하고,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 서울본부가 진정 강화해야 할 일일 것이다.

2013년 8월 30일

노동자연대다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