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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적 이라크 ‘주권 이양’

허구적 이라크 ‘주권 이양’

미국은 절대 그냥 물러나지 않는다

김용욱

이라크 임시정부의 대통령과 총리 임명 과정은 한 마디로 말해 엉망진창이었다. 또한 ‘주권 이양’ 이후 다국적군의 지위에 관한 논쟁은 유엔 결의안 통과에 주된 걸림돌이었다. 시아파 최고 지도자인 알-시스타니는 임시정부에 대해 조건부 지지에 가까운 모호한 말을 했다.

이러한 논란은 ‘주권 이양’과 관련한 중요한 일이 진정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주권 이양’이라는 이름의 신기루일 따름이다.

새로운 이라크 임시정부는 사실 정부라고 부르기도 뭣할 만큼 권한이 없다. 사실상 미국 총독부인 연합군정청 시절 정해진 법률에 대해서 이 정부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한다. 〈이코노미스트〉가 “자본가들의 꿈 … 외국 투자자들이 개발도상국에 바라는 소망들의 목록”이라고 평가한 외국인 투자법도 그대로 남을 것이고, 미군은 계속 이라크인들을 마음대로 구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것이다.

밀실에서 신임 총리로 결정된 알라위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MI6[해외 담당 정보기관]와 친밀한 자로,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로 45분 만에 영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그는 어마어마한 뇌물을 요구하기로도 악명이 높다. 20명의 각료들은 거의 다 친미주의자들이고, 꼭두각시인 과도통치위원회 출신이다.

사실, 유엔 특사 브라히미는 미국과 과도통치위원회와 거리가 있는 전문 관료들을 선택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이렇게 불평했다. “브레머 씨[미 군정청장]는 이라크의 독재자다. 그는 돈이 있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 나라에서 그의 동의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 이제 이 독재자의 자리는 ‘이라크 대사’ 네그로폰테에게 넘어갈 것이다.

따라서 임시정부가 다국적군과 어떤 관계를 갖느냐는 유엔 내 논쟁은 전혀 핵심이 아니다. 미국은 전에도 ‘주권 정부’[사실은 꼭두각시 정부]의 요청에 따라 다른 나라를 침공하고 점령한 사례가 있다. 베트남이 바로 그 예이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1980년대 엘살바도르도 같은 사례였다. 네그로폰테가 두 경우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뒤치다꺼리

알라위는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이라크 저항세력이 꼭두각시 정부의 지위를 위협할까 봐 두려워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뿐이다. 이미 미국은 주둔 미군의 지위가 결정되기도 전인 6월 1일에 이라크 내 미군의 복무 기간을 강제로 연장하면서 장기 주둔을 준비했다.

꼭두각시 정부가 출범하고 미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다고 해서 조지 W 부시가 이라크에서 성공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유엔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미국은 낙관할 처지가 아니다.

일단 결의안을 통과시켜 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미국의 뒤치다꺼리를 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라크에서 꼭두각시 정부와 미국 모두 정치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이고 행동에 제약을 받을 것이다.

이라크 치안군은 임시정부를 구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 내에서 강력한 군대의 등장을 경계하기 때문에 취약한 치안군 외에 이라크인 군대를 확대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랍에서 강력한 군대는 항상 제국주의 세력에게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부족한 군사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미군에 의존할수록 스스로 꼭두각시임을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된다. 따라서 많은 좌충우돌과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저항은 지속할 것이고, 이를 탄압할수록 정부의 정당성은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이라크에서 미국이 성공할 수 있는 여지를 더 축소할 것이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자신의 우위를 확고히 하고, 잠재적 경쟁자들을 겁주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은 지금 그 전쟁 때문에 자신의 패권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부시 정부는 이미 미국의 패배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다.

그러나 미국은 순순히 물러날 수 없는 입장이다. 월든 벨로의 지적처럼, “일방적 철수는 미국의 위신과 지도력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 오직 저항을 통해서만 미국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