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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재판:
‘재판 쇼’로 감추지 못한 중국 지배계급의 분열

8월 22~26일 중국의 전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가 뇌물수수, 공금횡령, 직권남용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는 지난해 충칭 당서기 직위를 박탈당하고 계속 구금돼 있었다.

이 재판은 1981년 4인방 재판 이후 중국 최대의 정치 재판으로 불리고 있다. 그가 한때 인기 있는 정책들을 펼치며 중국의 최고 지도부 후보로 거론되던 거물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부인의 영국인 사업가 독살 혐의와 측근의 미국 망명 시도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보시라이는 권력에서 축출됐다. 이 과정에서, 1989년 톈안먼 항쟁 이후 가장 심각한 지배층 분열이 드러났다.

중국 지배자들은 보시라이 재판으로, 보시라이 축출의 정당성과 반부패 의지 등을 대중에 보여 주고자 했다.

이번 재판에서 보시라이 일가의 온갖 부패와 비리 혐의가 공개됐다. 보시라이의 아들은 기업주가 제공한 전용기로 아프리카로 놀러 다녔으며, 아내는 거액의 뇌물을 챙기고 프랑스에 호화 별장을 샀다.

관영 〈인민일보〉는 “이번 재판은 법에 근거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됐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국가주석 시진핑과 지배자들의 의도가 잘 먹혔는지는 의문이다.

공산당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 법원이 ‘사법 투명성’을 보여 줬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 재판의 주요 내용은 법원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로 상세히 중계했지만, 이는 공산당의 검열을 통한 공개였다.

보시라이 가족의 엄청난 부패 실태는 중국 대중에 상당한 실망과 분노를 일으킬 만하다. 그러나 이 분노는 다른 고위 관료들한테도 부메랑이 돼 날아갈 수 있다. 중국에서 부패는 고질적인 문제고, 그 핵심에 공산당 관료들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재판은 “승자가 없는 정치 재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위기

중국의 일부 신좌파는 보시라이가 추진한 경제·사회 정책인 ‘충칭모델’ 때문에 중국 관료들이 그를 제거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시장화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데 진정으로 관심 있는 개혁가가 아니었다.

‘충칭모델’의 핵심은 중국의 변두리 충칭의 성장을 위해 국유기업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보시라이는 민간 자본과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데도 열을 올렸다.

충칭시가 추진해 온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투자, 공공주택 건설, 심지어 호구제도 개혁도 민간 자본 유치가 주된 목표였다. 따라서 보시라이와 나머지 고위 관료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 중국 지배자들이 중국 안팎의 문제들을 놓고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경제 위기 속에 중국의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제 더는 수출 위주의 고속 성장 모델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해지고 있다.

ⓒ레프트21

2008년 경제 위기를 탈출하려고 시작한 대대적 경기부양 정책은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부동산 거품과 지방 부채는 중국이 겪는 심각한 ‘부작용’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와중에 대중의 불만과 저항은 날로 커지고 있다. 아직까지 단일 쟁점과 자기 지역을 넘지 않는 수준이지만, 언제든 중앙 정부와 체제 전체를 향해 저항이 터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래서 지배자들이 아랍 혁명의 불씨가 중국으로 옮겨 붙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즉, 중국 자본주의의 모순과 기층 민중의 투쟁·불만으로 현 지배 방식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층 전반에 확산되면서 이들 사이에 분열이 불거지는 것이다. 보시라이 사태는 이런 분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따라서 보시라이 재판으로 중국 공산당 내 분열과 갈등이 봉합될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지금 총리 리커창은 국내 소비를 키우려고 금융 규제 완화, 도시화와 호구제도 개혁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요 국유기업들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려 한다.

이런 구상이 관료들의 엇갈리는 이해관계 때문에 순탄하게 진행될지 두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정치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예컨대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과 그 측근들이 지금 숙청 대상으로 거론되는데, 석유 관련 국유기업들을 통제해 온 이들이 표적이 된 것과 시진핑·리커창의 국유기업 개혁이 아무런 상관이 없겠는가.

따라서 앞으로 중국 지배자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은 계속 불거질 것이고, 이는 기층 민중이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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