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자 〈한겨레〉는 1면에서 “화석화된 진보 국민 공감 못 얻었다”며 “이석기 통합진보당(진보당) 의원의 … 국정원의 수사로 진보정치는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위기는,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일부 과거 지향적 정파를 진보정치세력 안에서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 위기를 빠져나가려면 “유권자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한다. 〈한겨레〉에게 국민은 “유권자”다.

사회민주주의연대 주대환 공동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석기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건 옳았다고 본다. 구속 수사는 해야 한다” 고 했고, 진중권은 “발달장애”라 비난했으며, 심상정은 “헌법을 벗어난 진보는 용납할 수 없다”고 진보를 헌법 안에 가뒀다.

‘이석기 종북몰이’로 이른바 통합진보당 내 자주파는 진보의 공적이 되는 모양새다. 국정원은 이런 자중지란 모양새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종북’이라는 말도, 진보진영에서 나왔다. 2001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통합협상에서 사회당 대표 원용수가 ‘종북세력과는 당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했고, 2008년 진보신당으로 분당하던 조승수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종북’을 말해 대서특필됐다.

이런 진보세력의 분열에는 1987년 6월투쟁 세대의 ‘원죄’가 있다. 당시 초좌파적 CA진영은 NL진영을 타협할 수 없는 ‘개량주의’라 공격했고, NL진영은 CA진영을 ‘미제의 간첩’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들에게는 1920년대 초에 레닌과 트로츠키가 제시했던, 서로의 정치적 독립성과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함께 투쟁하는, ‘공동전선’ 전술이 없었다. 그런 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공동의 적에게 탄압받고, 어쩔 수 없이 함께 싸우면서도 패권주의적 대립, 비난, 헤게모니 쟁탈전 속에, 서로 치명적 상처를 주고 받으며 분노를 쌓았고, 서로 황폐하게 했다.

서로가 ‘피억압 계급투쟁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각자의 주장이 다르다 해도 공동의 적 앞에 함께 싸울 수 있어야 했다.

이석기 종북 몰이 앞에, 진보당뿐 아니라, 정의당, 노동당, 노동자, 농민, 모든 민중, 민주당까지도 ‘종북’인가 아닌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공동의 적에게 탄압받고 있지만, ‘종북’에 대한 사상검열을 해야 한다는 태도가 있다.

그러나 북한 관료주의와 남한에서 탄압받는 피착취 계급의 일부인 자주파 세력을 동일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종북’으로 탄압받는 것을 진보세력들이 못 본 척한다면, ‘친공산주의’, ‘친맑시즘’, ‘친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죄’, ‘혁명을 말한 죄’, ‘혁명에 관한 책을 읽은 죄’로 탄압받는 것에도 눈 감아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가 허락해 주는 진보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