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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속의 논쟁:
마녀사냥에 대한 타협과 혼란이 문제인 이유

이번 마녀사냥에서 민주당은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신속히 통과시키며 국정원에 힘을 실어 줬다. 그러더니 결국 빈손으로 국회에 등원하며 다시 한 번 한심함을 드러냈다.

집권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는커녕 공안 마녀사냥에 기대곤 했던 민주당이 매카시즘에 굴복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이 당의 친자본주의적 한계를 보여 준다.

친민주당 자유주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국정원과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 둘 다 문제라는 양비론도 폈다. ‘국정원과 진보당은 적대적 공생 관계’라는 주장도 나왔다.

국정원이 진보당 마녀사냥을 통해 득을 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보당은 득을 보기는커녕 국회의원 제명과 정당 해산 위협을 당하고 있다. 우익들은 진보당 인사들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목을 베는 퍼포먼스까지 벌이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민중 운동의 일부다 국가탄압이야말로 통합진보당의 노선에 대한 비판과 토론을 가로막는다. ⓒ이미진

이런 상황을 ‘공생 관계’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민중 운동을 탄압해 온 대표적 억압 기구다. 그러나 진보당은 이런 국정원의 탄압을 당하며 기층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민중 운동의 일부다.

촛불집회나 노동자 투쟁의 현장에서 한 번이라도 진보당과 함께 촛불을 들거나 구호를 외쳐 본 사람이라면 국정원과 진보당이 ‘공생 관계’라는 말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헌법 밖 진보”

다른 한편, 정의당 지도자 등 진보 운동 내 개혁주의자들은 이석기 의원 등 진보당 활동가들의 사상을 비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검찰이 아무것도 못 밝혀내 구속 기간을 늘릴 정도인데도 녹취록을 기정사실화한다.

박노자 교수는 “좌파민족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의 상당수는 ‘우리’와 ‘주사파 또라이’가 다르다는 점을 어떻게 세인에게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흠뻑 빠져 있는 것 같다” 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정의당 조승수 전 의원은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은] 북한 관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며, 이들의 문제점은 “우리 사회를 폭력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진보당 활동가들을 일면적으로 “낡고 시대착오적” 세력이라 치부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개혁주의자들의 이런 태도에는 헌법과 체제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다.

심상정 의원이 “헌법 밖 진보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정작 헌법도 보장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국가기관이 짓밟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치도 않다.

또 국가를 중립적인 존재로 여기다 보니 국정원이 아니라 검찰이 수사하면 된다는 식의 요구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9월 26일 검찰이 내놓은 공소장과 중간수사결과는 앞서 국정원이 제시한 구속영장의 복사판에 불과했다. 사실 공안검찰이야말로 역대 마녀사냥의 주동자였다.

“불체포특권에 연연하지 말고 스스로 수사기관을 찾아 수사를 청하는 것이 도리”라는 주장은 그런 점에서 옳지 않다.

또한 개혁주의자들은 북한의 억압적 지배계급과 북한을 모종의 대안으로 여기는 자주파 활동가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사상의 자유로 보호받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진보당 활동가들을 “광신교 종교 집단”인양 묘사하며 “감옥으로 보낼 게 아니라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게 맞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계급적 기반과 실천을 떼어 놓고 정치와 사상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는 진보당 활동가들이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항의 운동과 2008년 촛불항쟁을 주도한 전력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것은 지금 탄압받는 활동가들이 우리 운동의 일부며 탄압이 겨냥하는 것이 진보 운동 전체임을 보여 준다.

지금의 국가 탄압을 방조하는 태도는 진보진영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이른바 ‘이석기 방지법’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위헌 정당 해산이 이뤄지면 해당 정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까지 모두 자격을 박탈하고 심지어 한 번이라도 당원이었으면 자격 박탈 대상이 되도록 돼 있다.

진보 활동가들이 국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호시탐탐 때만 노리던 전교조에 대한 공격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탄압의 칼날이 단지 ‘경기동부’나 진보당에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박근혜 정권은 복지 공약을 먹튀하며 재벌 퍼 주기와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주적 기본권조차 짓밟으며 재벌·기업들의 이윤을 지켜주기 위해 혈안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개혁을 위해서도 시장 논리와 체제의 우선순위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도전에는 대중 투쟁이 필요하고 단지 제도권 정치에만 머무르려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조승수 전 의원처럼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방향과 이념을 설정해야 한다”며 진보당과 선을 긋는 태도는 한계가 있다.

지배계급은 지금 마녀사냥을 이용해 진보 운동을 향해 체제에 순응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우파 결집과 노동자 대중의 분열을 노린다. 심상정 대표, 조승수 전 의원 등의 태도는 이런 책략에 말려드는 꼴이다.

시장 논리

한편, 자주파의 일부인 인천연합 경향 활동가들이 마녀사냥 반대 투쟁에 충분히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이들은 정의당 내에서 체포동의안 찬성 당론을 비판한 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책임감 있는 정치경향이라면 공식적으로 분명한 태도를 밝히고 실천하는 게 옳다.

일찍이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 서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지금 우리 운동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자세다.

그런 점에서 일부 급진좌파가 흔쾌히 방어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아쉽다.

노동당은 체포동의안에 반대하면서도 “혐의의 입증은 검찰이 하고 죄의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하면 된다”며 탄압에 대한 원칙적 반대 입장에 서지는 않고 있다. 현재 노동당은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 대책위(이하 공안탄압 대책위)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또한 “발은 여의도에 두고 있으면서 머리는 평양에 두고 있는 태도는 제도권 정치인으로서의 사고방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진보당이 “특정 사상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석준 부대표 역시 녹취록 내용을 두고 “사이비 종교의 집회나 다단계 회사 행사”이고 “심각한 일탈”이라며 비난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번 탄압이 “사회운동을 위축시키려”는 것이라며 공안탄압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옳게 지적했다.

이들은 “현재의 위기는 … 민중운동의 이념과 노선에 대한 대중적 불신으로부터 발생하는 위기”라며 진보당의 노선을 “성찰하고 혁신하기 위한 공동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탄압에 맞서기’와 ‘자주파 비판하기’를 비슷한 비중의 과제로 제시한다. 이 때문인지 사회진보연대도 아직 공안탄압 대책위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물론 실제로 진보당 지도부의 인민전선주의와 그에 따른 실천(민주당과의 야권연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등)은 진보진영을 분열시키고 운동에 어려움을 줬다. 이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비판과 논쟁을 위해서라도 공안탄압에 실천적으로 함께 맞서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개혁 쟁취를 위해 자본주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려면 국가의 사상 단속을 좌절시켜야 한다. 사상과 논쟁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국가 탄압에 공동으로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