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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논란:
임금과 노동시간의 어떤 개편이 필요한가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법리 논쟁은 표면적인 것이었다. 핵심은 노동자와 자본가 중 누구 편이냐 하는 계급 문제였다. 대법관들은 이 소송의 결과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주로 질문했다.

실제로 통상임금 논쟁의 배경에는 임금 체계와 노동시간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통상임금은 시간외·야간·휴일근로 등 법정 노동시간 외 초과근로의 가산임금 산정 기준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자본가들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최대한 좁게 해석해 싼 값에 초과노동을 시키려 한다. 반면, 노동자들은 그동안 여러 소송을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점점 더 넓게 인정받아 왔다.

따라서 사법부가 통상임금 소송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긴 이유는 통상임금을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을 뒤집기 위한 자본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박근혜 자신이 GM회장을 만난 뒤 이런 신호를 줬다.

자본가들은 기본급으로 지불해야 할 임금을 기형적인 방식으로 쪼개 놨다. 기본급 비중은 최대한 줄이고 대신 각종 상여금과 수당 등을 지급하는 임금 체계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현대차 등 완성차 노동자들의 평균 기본급은 1백50만 원가량밖에 안 된다. 기본급이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퍼센트(현대차)밖에 안 된다. 반면 수당의 종류는 40여 개나 된다.

이 때문에 마땅히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할 수당이나 상여금 등이 많이 제외돼 왔다. 그 결과 법정근로시간 동안의 시간당 임금보다 초과근로시간 동안의 시간당 임금이 더 적은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근로기준법 56조의 취지 ―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초과근로시간을 제한하고, 초과근로를 시킬 때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한다 ― 를 누더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통상임금 소송으로 노동자들이 받을 돈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로부터 ‘저녁이 있는 삶’,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 ‘건강한 삶’을 빼앗고도 지불하지 않은 ‘장물’인 것이다.

이런 기형적 임금 체계 때문에 노동자들은 낮은 기본급으론 생활할 수 없어서 연장, 휴일, 특근 등 초과노동을 하느라 등골이 뽑혔다.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건강한 삶과 스스로 생각하고 정치활동을 할 여유를 뜻한다. 이런 시간이 확보돼야만 소외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특히, 노동시간이 줄어들어도 임금과 노동조건의 후퇴가 없어야만 적절한 생활 수준 유지를 위해 또다시 장시간 일해야 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초과노동 없이 기본급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기본급 비중을 최대한 늘리고, 각종 수당을 기본급화해야 한다. 기본급의 액수 자체도 초과노동이 필요 없을 정도로 높여야 하고, 불안정한 시급제가 아니라 월급제로 바꿔야 한다.

어떤 노동시간 단축인가

박근혜 정부도 고용률 70퍼센트 달성의 수단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고 있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안도 발표했다.

그러나 박근혜가 통상임금 판례를 뒤집으라는 신호를 준 것을 보면,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싼 값에 쓰려는 기업주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 유연화·임금 감소와 맞바꾸는 방식이기에 노동자들에게 해악적이다.

가령, 박근혜 정부가 확대하려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하루 4시간, 주 20시간을 근무하고 정년을 보장하는 형태다. 그러나 근무시간에 비례해 적은 보수를 받고 승진도 늦다. 공무원연금도 못 받는다. 노동자의 의사에 따라 전일제공무원으로 전환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시간제 확대 대상으로 꼽힌 영양사들은 ‘평균 급여가 1백50만 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하루 5시간만 일하라는 건 생계를 포기하라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나마 이런 시간제라도 지원할 사람들은 주로 양육과 병행하려는 여성들일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양육 부담이 계속 여성에게 남겨진 채, 여성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장시간 노동 관행이 굳어진 기존 일자리를 쪼개는 효과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휴일 근로를 연장 근로에 포함하는 안 역시 ‘근로시간저축휴가제’와 함께 도입하려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 유연화를 결합시키려는 것이다.

또한, 정부와 경총은 통상임금 논쟁을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근속기간에 따라 해마다 임금이 인상되는 연공급제를 성과급제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식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라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배부른 노동자’들만의 문제?

통상임금 쟁점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지금, 노동운동은 임금 체계 개선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조직력이 단단한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앞장서서 이런 쟁점을 걸고 싸운다면 노동자 전체에 큰 힘과 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통상임금 문제를 ‘배부른 노동자’들의 문제로 취급하며 쉬쉬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통상임금 소송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통상임금 문제로 승소한 금아리무진 노동자들은 버스 운전사들이다. 이들처럼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환경미화원 노조 등 ‘고소득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들도 통상임금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소송에 참여하는 더 많은 부분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노동자들일지라도 착취의 대가를 빼앗길 이유는 없다. 잘 조직된 정규직 대기업 노조가 통상임금을 넓게 인정받아 두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통상임금을 산정하거나 인금 인상을 요구할 때도 유리하다.

무엇보다 통상임금 소송의 의미를 깎아 내리는 분위기가 되면, 통상임금 산정 범위 축소에 맞선 투쟁과, 이를 계기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기본급을 높이는 투쟁을 적극 벌여 나가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이런 투쟁은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투쟁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통상임금 소송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비정규직 조직화 기금으로 사용하자는 제안은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을 하는 사람들이 통상임금 소송을 ‘배부른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편, 노동부는 “[통상임금 논란이] 최저임금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흘렸고, 이 때문에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 요구에 대한 우려가 있는 듯하다. 저임금 사업장에서 기업주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통상임금 확대 요구 때문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기업주 탓이다. 통상임금 인정 범위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은 둘 중 하나를 희생해야만 하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즉, 상여금이나 수당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도록 투쟁하면서도 그만큼 최저임금 수준을 올리라고 요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