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국 자본주의 발전 속도는 대단했다. 2002~07년 중국은 연평균 10.8퍼센트 성장했다.

2008년 경제 위기 발생 이후의 통계는 더 놀랍다. 미국은 2008~11년 사이 겨우 2퍼센트 성장했지만, 중국은 같은 기간 53퍼센트 성장했다.

그러나 중국 자본주의는 고도화의 측면에서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친다. 예컨대, 2010년 미국과 중국의 제조업 생산량은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미국 제조업 노동자 수는 1천1백50만 명이지만, 중국은 1억 명이 넘는다.

또, 중국은 엄청난 수의 절대 빈곤 인구문제가 있고, 무자비한 자본축적 과정 덕분에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최저인 30퍼센트 중반이다.

흔히, 오늘날 중국의 부상은 19세기 말 미국과 독일의 부상에 비교된다. 그러나 1900년에 이르렀을 때 독일과 미국은 거의 모든 경제 지표에서 영국을 능가했다.

오늘날 중국은 그런 능력이 없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에서는 오바마가 없자 시진핑이 ‘큰 형’ 대접을 받았다.

이런 양면성을 봐야 한다. ‘중국의 세기’가 왔다고 주장하는 것도, 중국이 여전히 ‘주변부’ 국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한 면만을 본 것이다. 오늘날 중국 제국주의 대전략(大戰略)에는 중국 자본주의의 이런 모순이 반영돼 있다.

21세기 중국의 대전략

첫째, ‘미국보다 중국의 노동자, 농민, 소수민족이 더 무섭다.’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 후진타오는 2005년 연설에서 인민해방군의 제1차 임무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보장하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 지배자들은 노동자·민중 운동으로부터 공산당을 보호하는 것이 경제 발전 지속과 세계적 열강으로의 부상에 필요하다고 믿는다.

국가 재정에서 치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국방비에 육박하는 것도, 인민해방군의 70퍼센트를 육군으로 유지하는 것도, 주력 부대를 대체로 중국 내 인구 밀집 지역에 배치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예컨대, 육군 최정예 부대인 38과 39집단군은 정치 중심지인 베이징과 셴양에, 기타 정예 부대들도 연안 수출 공업단지 근처에 배치돼 있다. 소수민족 밀집 지역은 소심한 자유화도 허용되지 않는 대규모 군점령지다.

중국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시키 않는 한 공산당 독재 수호는 중국 군전략의 기초일 것이다.

둘째, ‘현존 제국주의 질서를 옹호한다.’

중국 제국주의는 아직 자본주의 중심지인 북미와 유럽은커녕, 전략과 자원의 요충지인 중동과 아프리카 등에서도 개입할 능력을 크게 제약받고 있다.

예컨대, 중국의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 개발이 군사기지 망(‘진주목걸이’)과 연관됐다는 관측이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가 지역 분리 운동을 제압하고 항구를 보호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업용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 사례가 보여 주듯이 중국에게는 ‘고품질’ 동맹이 없다. 브라질·러시아·인도·남아공과 함께 만든 브릭스는 이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이며, 이란 핵이나 일부 국제 경제 질서 문제 등에서 힘을 모아 미국을 견제하려 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중국조차 아직 회원국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충돌을 조정할 능력이 없다.

예컨대, 브라질은 전 세계에서 중국 상품에 가장 많은 덤핑 판정을 내린 나라 중 하나다. 인도가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전략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중·러 군사협력협정에는 상호방위조항이 없다. 또, 러시아는 중국의 경쟁자인 베트남과 인도에게 최신 무기를 판매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 미국의 모험은 중국의 세계 진출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이었다.

군사력의 제약, 동맹의 부족, 미국의 모험 앞에서 중국 지배자들은 차악으로서 중국 자본주의 성장을 뒷받침한 현존 제국주의적 질서를 대체로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모험뿐 아니라 아랍 혁명에도 반대했다.

석유 수입 다변화에도 중국이 필요로 하는 막대한 석유를 추가로 공급할 여유를 가진 지역은 여전히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친미 반동 왕정들이다.

그래서 후진타오가 사우디아라비아 의회에서 연설을 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미국 방문 후 바로 중국을 방문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중국 정부는 중동 정치 중심인 이집트의 안정을 위해 친미 독재자 무바라크 정부에 공을 들여 2004년 제1차 중국·아랍협력포럼의 장소로 이집트를 선택했다.

그러나 2011년 무바라크가 무너지고 걸프 왕정들로 시위가 확산되자 중국 정부는 충격을 받았다. 관영 언론인 〈환구시보〉와 〈인민일보〉가 최근 이집트 사태에 관해 논평하면서 “이집트는 왜 단호하게 혁명을 반대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는 논평을 내놓은 배경에는 이런 우려가 깔려 있다.

또, 아프리카는 중국이 미국뿐 아니라 유럽 제국주의의 허를 찌른 지역이다. 그러나 프랑스와 미국의 말리 개입을 지원하기 위해 5백 명을 유엔군으로 파견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입장은 현 질서 유지에 있다.

물론, 이런 현상 유지 정책은 중동에서 새로운 질서를 꾀하는 미국과 종종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최근 오마바의 곤경은 미국 제국주의가 기존 방식을 수정해야 하는 압력을 받고 있음을 보여 줬다. 미국의 약화와 중국의 한계라는 조건이 유지되면 중동과 아프리카 등에서 둘의 갈등은 직접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것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추세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셋째,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라.’

중국의 대전략은 중국 국경 근처로 이동하면 강조점이 현상 유지에서 변화로 조금씩 바뀐다. 중국은 인도와 갈등 관계이며, 버마·라오스·스리랑카의 권위주의 정부를 지원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상하이협력체를 운영하고 위구르를 열심히 탄압하면서 제국주의 국가로서 바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중국 제국주의가 현재 가장 힘을 쏟는 곳은 동아시아다. 이것은 중국의 생산 과정이 주로 (동)아시아적 현상인 것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중국 10대 교역국 중 7개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있다.

그러나 그중 4개가 동아시아 친미 동맹 국가다. 또, 미국은 남중국해, 말라카 해협, 타이완 해협, 한반도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덩샤오핑 이래 공산당 지도자들은 ‘도광양회’(자기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림)란 미명 아래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피했다. 심지어 1995~96년 타이완 위기 당시 미국이 주력 항공모함을 파견하자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일본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또, 2002년 중국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동남아 국가들과 남중국해 문제의 우호적 해결을 위한 ‘행위 규범’에 합의하기도 했다. 한반도에서는 6자 회담을 중재했다.

그러나 2008년 경제 위기를 전후해 모든 게 변했다. 중국의 회복이 너무 빨라 주변국의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중국 지배자들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를 뒤흔든다는 구상을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옛 적인 국민당의 한 장군이 1948년 작성한 지도를 근거로 동남아 국가들에게 남중국해 전체가 중국 것임을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넣었다. 댜오위다오(센카쿠) 문제에서는 일시적으로 일본을 굴복시켰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 유지를 위해 남중국해, 댜오위다오, 한반도에서 중국과 주변국 관계를 (효과적으로) 이간질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중국의 장기 계획을 좌절시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확실한 이유를 제공했을 따름이다.

제1차세계대전

현재 중국의 계획은 중국과의 충돌시 미국이 치를 대가를 크게 만들어 미국 정부가 동맹들을 방어한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 정부의 계산은 동맹 체제를 굳건히 하고 중국을 압도할 연합 군사력을 확보해, 중국이 그런 준비를 하는 것을 시간과 돈 낭비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제1차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국제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어리석은 사고방식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은 당장 이런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 두 나라의 복잡한 경제 관계는 하나의 요인이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이며, 서방 시장과 기술은 중국의 경제 성장뿐 아니라 지정학 경쟁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중국이 제작한 최신예 7천 톤급 함정 센젠과 얀타는 독일산 전력 시스템, 프랑스산 레이더, 이탈리아산 어뢰, 우크라이나산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2008년 경제 위기 발생 후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수출을 대폭 늘려 위기의 충격을 완화했다.

또, 미국이 세계경제 2위 대국가 그 앞마당에서 상대하는 데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많은 미국 장성들은 이미 타이완과 중국 사이 힘의 균형이 깨졌다고 본다.

따라서 미국에게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상대하는 것은 장기적 문제기 때문에 군사적 포위, 이간질과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한다.

그래서 대중국 군사 계획인 공해전투의 새 보고서에서는 중국이란 단어가 빠졌다. 공해전투 계획 작성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퇴역 장군 러프헤드는 이 계획이 중국을 노린 것이냐는 질문에 자신의 아이폰을 보여 주며 답했다. “만약 우리가 중국을 봉쇄하고 싶다면 왜 제가 중국에서 조립된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겠습니까?”

낙관적인 이들은 이런 ‘자제’를 보면서 두 나라가 그럭저럭 관계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이 두 나라가 자본주의 경쟁 논리 때문에 발생하는 온갖 변수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

연재 마지막 글에서 이 변수들과 그것이 국제 노동자·민중 운동에게 제기하는 과제에 관해서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