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 결과


이라크 전쟁 수렁에 빠진 블레어와 영국노동당


영국 좌파 정기간행물 종합

지난 6월 10일 영국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집권 노동당이 맛본 사상 최악의 참패 중 하나였다.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은 24퍼센트를 득표,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에 이어 3위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더 나빴다. 겨우 23퍼센트 득표에 그쳤을 뿐이다.
선거 전 여러 달 동안 노동당 지도자들은 이라크 전쟁이 대도시 중간계급의 쟁점일 뿐이며 일반 노동 대중은 전쟁 문제에 관심 없다고 주장해 왔다. 선거 운동 기간에 노동당 간부들은 자신들이 만나 본 어떤 유권자도 이라크 전쟁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4백60여 석을 잃은 데다 돈커스터나 뉴캐슬 같은 노동당의 오랜 아성에서조차 패배하자 이제는 어느 누구도 전쟁 때문에 블레어가 몰락할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당의 참패 원인이 이라크 전쟁만은 아니다. 노동당은 1997년 집권 이후 장시간 노동, 저임금, 사유화, 연금 축소 등등의 문제에서 배신을 거듭하며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이 때문에 노동당에 대한 불신과 불만, 분노가 커져 왔다. 여기에 이라크 전쟁은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노동당이 참패했다고 해서 보수당이 승리한 것도 아니다. 보수당의 유럽의회 선거 득표율도 겨우 27퍼센트였을 뿐이다.
지금 영국의 주류 정치는 매우 유동적이며, 주류 정치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 좌파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급진 좌파 선거 연합인  리스펙트(Respect)가 거둔 성공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지난 1월 출범한 리스펙트는 겨우 20주 만에 첫 선거를 치른 데다 친노동당 신문인 〈가디언〉을 비롯한 주류 언론의 철저한 무시 등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런던과 버밍엄 지방선거에서 각각 5퍼센트와 7퍼센트를 득표했을 뿐 아니라 레스터 시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9퍼센트 이상을 득표했다.
프레스턴 지방선거에서는 29.8퍼센트의 득표율로 노동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리스펙트의 런던 시장 후보로 출마한 전쟁저지연합 소집자 린지 저먼은 6만여 표를 획득, 첫 출마에 5위를 기록하며 나찌인 영국 국민당(BNP)과 녹색당 후보들을 누르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래서 비록 유럽의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리스펙트 선거 운동 참가자들은 지금 자신감과 활력으로 크게 고무돼 있다.
리스펙트를 주도하는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는 향후 과제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훨씬 더 광범한 지역에서 리스펙트를 건설해야 하고 저변을 더 확대해야 한다. 앞으로 보궐선거에도 출마해야 하고 내년 총선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주의자들이 모든 노동계급 투쟁, 모든 피켓라인과 시위․행진에 연루하도록 할 필요도 있다.
“블레어와 주류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의 과제는 그런 사람들을 좌파 주변으로 끌어당기고 조직하는 것이다.”


유럽 각국의 선거 결과
좌파 지지에서 드러난 반정부 성향

이번 유럽 전역의 선거 결과는 동일한 현상을 보여 주었다. 즉, 중도 우파든 중도 좌파든 각국의 집권당이 패배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야당인 사회당이 30퍼센트를 얻은 반면, 대통령 자크 시라크가 이끄는 우파 집권당은 겨우 16.8퍼센트를 얻는 데 그쳤다.
독일에서도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집권 사민당은 고작 21.5퍼센트를 얻은 반면, 우파 야당 기독교민주당은 44.5퍼센트를 얻었다.
유럽연합(EU)의 새 회원국이 된 폴란드에서도 30퍼센트 투표율에 집권당 득표율은 겨우 11퍼센트에 불과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우파 정부에 반대하는 강력한 반전 운동과 대규모 파업 투쟁들이 이번 선거에 반영됐다.
우파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포르자 이탈리아 당(전진이탈리아 당)의 지지율은 지난 2001년 총선 때의 29.4퍼센트에서 이번에 21퍼센트로 하락한 반면, 중도 좌파인 올리브나무동맹은 31.3퍼센트를 얻었다.
급진 좌파인 리폰다찌오네 꼬무니스따(재건공산당)는 1백85만 표(6.1퍼센트)를 획득해, 유럽의회 의원(MEP) 두 명을 추가해 의석 수가 모두 다섯으로 늘어났다.
스페인에서도 좌파연합(United Left)이 4.2퍼센트를 득표해, MEP 두 명을 배출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우파 정당들, 특히 집권당이 패배하고 전쟁과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반대한 사회당이 두 명의 MEP를 당선시켰다. 2년 전 급부상해 심각한 위협이 됐던 극우 정당 핌 포르타운 당은 이번에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리스에서는 공산당이 9퍼센트를 득표해 세 명의 MEP를 유지했다. 또 다른 좌파 정당 시나스피스모스(Synaspismos) [좌파진보연합(Coalition of the Left and Progress)]은 4.1퍼센트를 얻었지만 유럽의회 의석 두 석 중 한 석을 잃었다.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인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이 참가하고 있는 신생 조직 반자본주의동맹은 1만 2천 표를 얻었다.


영국 독립당

이번 영국 선거에서 두드러진 성공을 거둔 당이 영국 독립당(UKIP)이다. 독립당은 11년 전 유럽 통합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총리 존 메이저에 반대한 일부 보수당원들이 뛰쳐나가 결성한 정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독립당은 유럽 통합에 회의적인 백만장자 폴 사익스나 은퇴한 마권업자 앨런 보운 같은 자들에게서 2백만 파운드(약 42억 5천만 원)의 선거자금을 받았다.
기성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국민의 정당”(peopleꡑs party)을 자처하는 독립당의 정치는 유럽연합(EU)에서 전면 철수를 주장하는 점을 빼면 근본적으로 보수당과 다르지 않다. 예컨대, 이주자 문제에 대한 독립당의 공식 입장은 철저히 인종차별적이다.
그러나 독립당은 영국 국민당(BNP)과 같은 파시스트 정당은 아니다. 독립당이 얻은 표의 다수는 강경 우파 정책들에 대한 확고한 지지표라기보다는 기성 주류 정당들에 대한 반감과 항의가 혼란스럽게 표출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