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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지부 지난해 활동 평가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호에 실린 서울대 지부 정문수 대표가 쓴 글('학생 그룹의 전망과 모색')에 대한 반론이다.

《열린 주장과 대안》 9호에 실린 '학생 그룹의 전망과 모색'에서 정문수 씨는 학생 그룹의 지난 활동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나름의 활동 방향을 제시했다. 이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 글은 나에게 지난해 서울대 지부 활동을 되돌아볼 계기를 제공했다.

'전망과 모색'에서 정문수 씨는 지난 학생 그룹 활동의 문제점이 "집회나 노동자 투쟁에 참여하여 전체 계급 운동에 복무하는 것이 중심적인 활동의 목표"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 그룹은 "학생 운동을 하기 위해서 건설"된 것이며 따라서 "대학 사회와 기층 공동체에 성과가 축적"되는 방향으로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나는 이 주장이 서울대 지부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 동안 서울대 지부는 모임과 집회 참여 등의 학생 그룹 활동이 부재해 사실상 하나의 단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지금은 미흡하나마 정기 모임도 운영하고 공개 홍보 및 판매 활동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런 일상 활동을 구축하는 데 1년이나 걸린 것은 자기비판적으로 반성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그러면 서울대 지부의 활동이 지난 1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문수 씨가 강조하듯이 서울대 당원들이 학생 그룹의 위상과 활동 방향에 대해 모호하게 생각해서일까?

지난해 서울대 지부 활동의 결정적 문제는 무엇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무수히 많은 말과 빈약한 실천이었다. 정문수 씨가 다소 회의적으로 비판하는 학생 그룹의 노학연대 활동(집회, 시위, 파업 참여 등)에 서울대 지부는 열의를 갖고 참여한 적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나는 정문수 씨와는 다른 입장에서 서울대 지부의 지지부진했던 활동의 이유를 자기 반성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활동적인 서울대 당원들은 과 혹은 학생회 활동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또, 당원을 확대해야 하고 당의 주장과 활동을 대학에 알려야 하며 당원은 대중 공간을 기반으로 일상적인 정치 활동을 벌여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대 지부는 학생 사회 내에서 민주노동당의 주장과 활동을 알리고 그것에 대한 지지와 동의의 표시로 당에 가입하게 함으로써 당원을 확대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 다른 정치 조직의 지도부와 협상에 의한 조직간 통합을 통해 당을 확대하는 것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정기 모임, 공개 홍보와 판매 활동, 대자보 작업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일부 서울대 당원들은 다른 정파와 통합을 위해서 다른 정치 조직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정파와 부딪칠 수 있는 활동(예를 들어 학생회 선거 참여)들은 삼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학생회 선거 참여는 상당히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대중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경로"다.

그런데도 일부 서울대 당원들은 서울대 지부는 들어올 생각도 않고 있는 다른 모든 진보 세력을 고려하여 이 "경로"를 단정적으로 포기하고자 했다. 물론 당시 서울대 지부는 학생회 선거에 후보 전술을 구사할 역량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서울대 당원들의 선거 후보 전술 배제 주장은 우리의 구체적 역량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당의 특정 정파로 돼서는 안 된다는 소위 '당이 계급을 대표한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당원은 기층 공간에서 활동해야 하고 그 성과는 기층 공간에 남아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문제는 기층 공간에서의 당원 활동들에 대한 지도는 부재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대 지부의 활동은 오로지 위상 토론에만 한정됐다. 당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정치와 활동을 토론할 필요성에 대해 열의가 없거나 심지어 거부하는 당원들도 있었다.

정문수 씨는 "정치 조직으로서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논쟁"을 해야 하고 "한국 학생 정치 운동의 지도적 구심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모순되게도 이런 활동을 수행해야 할 당원들의 정치적 무장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보니 해당 시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슨 의미이며, 어떤 일이 정세적 중요성을 가지며 우리가 개입해야 할 핵심 쟁점은 무엇인지가 전혀 논의되거나 제시되지 못했다. 정치적 지도 없이 기층 공간에서 정치 활동이 잘 이뤄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몽상이다.

요컨대, 활동의 성과가 기층 공간에 남아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문제 될 게 없지만, 중요한 것은 기층 공간에서의 활동을 어떤 방향과 내용으로 이끌어 낼 것인가이다.

서울대 지부가 다른 지부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학생 그룹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논쟁일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대부분의 서울대 활동은 총회 준비를 위해 바쳐졌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논쟁 속에서 우리는 다른 정치 조직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학생 그룹이 학생 운동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등등 위상과 역할에 대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대 지부와 접촉한 학생들은 서울대 지부 모임을 재미 없고 지루하고 자기와는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는 곳으로 여겼다. 그 결과, 당원들이 활동적인 학생들을 당에 가입시키려 해도 활동이 없다 보니 당 활동에 끌어들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니 당원이 확대될 리 만무했다. 간혹 있다 하더라도 함께하는 공동 활동이 없으니 명부상의 당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활동 방향에 대한 계획 없이 그리고 이에 따른 꼼꼼한 지도 없이, 위상 토론을 통해 "학생 그룹이 학생 운동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정언명제 하나 만들어 낸다고 해서 학생 그룹 건설이 보장되는 것이 아님은 명백했다.

우리가 허비한 지난 1년은 형식적인 위상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 활동을 위한 정치 토론으로 채워졌어야 했다. 우리는 이런 토론 과정에서 공통 분모를 찾아내 그에 바탕을 둔 공동 활동을 벌이는 것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시설물 관리 노조 파업 투쟁, 학사 관리 엄정화 반대 투쟁, 아셈 항의 투쟁, 대우차 투쟁 등 지난해에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쟁점들은 꽤 많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정치적으로 치열하게 논쟁하기를 주저하지 말고,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면 공동으로 활동 계획을 세우고 지도하고 실천하면서 학생 그룹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