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지난 11일 ‘에너지기본계획 민관합동 워킹그룹’의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이하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을 보면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이명박 정부 시절 목표치인 41퍼센트에서 22~29퍼센트로 ‘줄이겠다’고 돼 있다. 현재 핵발전 비중은 24퍼센트다.

이런 시늉이라도 나온 것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계속 커져 온 반핵 여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폭로된 것처럼 ‘비중 축소’는 완전한 꼼수다. 절대량은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 전력 생산량이 크게 늘면 실제로는 그 목표에 맞춰 핵발전소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

1인당 가정용 전력소비량 출처 : UNSD, World Bank, 2010

산업통상자원부가 대외비로 작성한 전력 수요 전망을 기준으로 하면 핵발전 비중을 22퍼센트로 해도 핵발전소 12개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29퍼센트면 18개를 새로 지어야 한다.

초안에는 기가 막히게도 “원전시장 진입장벽[을] 제거”해 “경쟁[을] 촉진”해서 “비리 발생 요인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자는 제안도 실려 있다. 후쿠시마에서 사고를 내고 지금도 무책임하게 방사성 물질을 흘려 보내고 있는 도쿄전력이 바로 그렇게 세워진 민간 발전회사다.

이처럼 초안은 핵발전 확대 계획이다. 심지어 “수출주력노형(APR-1400)에 특화된 체계적 교육·훈련을 거쳐 해외 사업 요원으로 양성”한다고 하는 등 핵발전 수출을 계속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동시에 줄어든 핵발전 ‘비중’만큼 화력 발전을 늘릴 계획이다. 환경 파괴나 온실가스 문제는 “비용효과적”으로 즉, 경제 효율 논리에 종속시켰다.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도 있지만 재원마련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다. 결국 이번에도 공문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초안은 가정용 전기요금 대폭 인상 가능성에 문을 열어 뒀다.

그러나 정부와 주류 언론의 왜곡과 달리 이 나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전혀 싸지 않고 가정용 전기 사용량도 많지 않다[그림]. 따라서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은 노동자들의 부담을 늘릴 뿐, 전기 사용량을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

정부는 워킹그룹에 참여한 환경단체 리더들에게 회의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고 심지어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아예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고 버텼다.

그런데 이 초안을 만든 민관워킹그룹에 참여한 일부 환경단체 리더들이 그 결과를 일부 두둔하려 드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사회적 합의?

보도자료가 보여 주듯이, 애당초 정부가 민관워킹그룹을 만들어 환경단체 리더들을 참여시킨 목적은 명백하다. “국민 행복시대의 新에너지 정책, 큰걸음 내딛다. ─ 시민사회, 산업계, 학계가 모여 에너지믹스 합의(안) 도출”

실제 회의록에 드러난 회의 과정을 살펴보면 정부는 핵발전 비중을 제1차에너지기본계획보다 낮추는 것으로 양보하는 척하며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 보이는 문제들에서 환경단체 리더들의 양보를 유도한 뒤 마지막에 뒤통수를 친 듯하다.

따라서 정부의 의도가 어느 정도 드러나기 시작한 뒤에도 주요 환경단체 리더들이 민관워킹그룹에서 탈퇴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일부 환경단체 리더들은 ‘탈핵’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장외에 남느니 핵발전을 일부 축소할 수만 있다면 합의 기구에 참여하는 게 낫다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났듯이 환경단체 리더들의 ‘참여’는 정부 정책에 명분을 주고 불필요한 타협만 낳았다.

또, 환경 문제의 원인을 전체 사회구조에서 찾기보다 대중의 전기 ‘낭비’에서 찾다보니 전기요금 인상에도 분명히 반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갈수록 핵에 의존하려는 지배자들에 맞서는 게 핵심 과제다.

핵발전소를 즉각 폐쇄하고 기업주가 내야 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며 대중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