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공공우편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열메일을 민영화하면서 신규 상장 주식을 투자자들에게 안겨 주자 런던 금융가는 잔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여기에 IMF가 영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는 사실을 보탠다면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지는 이유도 알 만하다.

그러나 세계경제를 살펴보면 전반적 상황은 훨씬 더 암울하다. 요컨대 IMF는 영국 경제에 대해 더 낙관적인 전망을 표명하면서도 올해와 내년의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낮췄다.

그 주된 원인은 미 의회의 공화당과 버락 오바마의 협상이 고착상태에 빠지면서 불거진 불확실성 때문이 아니다.

이런 변화의 근본 원인에는 ‘남반구’의 “신흥 시장 경제들”[중국·브라질·러시아·인도 등]이 있다. 특히 중국은 2008~09년의 위기 이후 세계경제 성장의 주된 동력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부가 대출 보증과 투자를 대규모 늘린 것이 있었고, 이 때문에 중국은 지금 자산 거품과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경기 부양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 때문에 중국 성장이 주춤해졌을 뿐 아니라 중국에 수출하는 나라들까지도 그 영향을 받았다.

반면 미국 정부는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시스템에 매달 8백50억 달러[90조 원] 이상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 돈은 대부분 브라질과 터키 같은 나라들로 유입됐다. 그 나라들의 경기활황에서 이윤을 얻을 목적으로 말이다.

올해 여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조만간 양적 완화를 ‘점진적으로 축소’할 예정이라고 시사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양적완화가 축소된 것처럼 금리가 오르고 “신흥 시장” 경제에서는 자본유출이 일어났다.

그 결과 지난 4년 동안 세계경제에서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 침체하고 있다. IMF의 바람은 선진국의 성장률이 한층 높아져 이를 상쇄하는 것이지만 이 기대의 실현은 매우 요원하다.

실망감

〈파이낸셜 타임스〉의 마틴 울프는 최근 “통화 행동주의”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울프의 이 표현은 미국의 양적 완화와 일본, 영국, 유로존에서 추진된 통화량 증가를 가리킨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렇다면 이런 통화 행동주의의 대가로 무엇을 얻었는가? 실망감이다. 2013년 2분기에는 선진국 중 오직 두 나라, 미국과 독일만이 5년 전 위기 이전에 견줘 경제가 성장했다. 미국 경제 규모는 당시보다 5퍼센트, 독일의 규모는 2퍼센트 늘어났다. 프랑스 경제 규모는 위기 이전으로 돌아왔으며 영국은 약 3퍼센트 축소됐다. 위기에 휘청대는 이탈리아 경제는 9퍼센트나 축소됐다.

“공격적인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작았다는 것은 비록 금융부문이 회복되고, 자산 가격이 조정되고, 민간 부채는 줄었지만 이 경제들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 준다.

“이런 약점이 조만간 사라지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돈을 찍어 낸 것과 다름없는 전자적 거래들[양적 완화]은 경제 붕괴를 막았을지 모르지만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상승 국면에 들어서도록 하지는 못했다.

유로존에서 더 취약한 지역들은 1930년대 대공황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지역의 은행 시스템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소식으로는 아일랜드나 스페인 같은 나라들에서 중소기업들이 신용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에서 부활의 신호가 가장 강력한 곳은 주택시장과 주식시장이다. 즉, 금융투기의 동력이 다시 힘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10월 11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의 어느 특집기사의 제목은 “런던 금융가는 다시 안도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였다.

이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사의 내용과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모기지 승인 건수는 61만 건이지만 2006년에는 1백40만 건에 달했다. 시티오브런던[영국 금융 중심지]의 금융서비스 종사자의 수는 25만 5천 명으로 2008년에 비해 10만 명이나 줄어들었다. 올해는 로열메일 상장 이전까지 모두 50억 파운드를 겨우 넘어서는 53건의 기업공개가 이뤄진 반면 2006년 정점에는 3백50억 파운드에 달하는 2백98건의 기업공개가 이뤄졌다.

선진국에서 자본주의가 회복을 시작했을 수는 있지만 자본주의라는 야수가 입은 치명상은 아직도 여전하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