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제국주의는 가능할까? 식민지 근대화론을 앞세운 뉴라이트의 관점에서는 가능하다.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최선이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 이를 전파한 일본 제국주의는 결과적으로 선한 구실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제국주의의 ‘문명화’ 효과가 있든 없든 모든 식민주의에 반대한다. 예를 들어 1907년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문명화’된 식민지 정책을 내세운 것을 격하게 비판했다. 식민 지배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주류 한국사학계가 민족주의에 치우쳤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일제의 식민사학을 재탕하고 있다. 이들은 조선 사회에서 생산력이 계속 떨어지다가 19세기에는 완전히 파멸했다고 과장한다. 이런 조선 경제를 살려낸 게 일제의 식민 지배라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조선에 자본주의 맹아가 없었으므로 제국주의 침략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진국도 선진국의 기술, 제도, 자본을 도입해 자본주의로 발전(근대화)할 수 있다.

실제 독일, 러시아, 일본 등에서 근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 즉, 일제의 식민 지배가 없었더라도 자본주의적 경쟁 압력에 직면한 조선은 위로부터 근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었다.

대한제국 시기 이른바 광무 개혁이 그것을 보여 준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광무개혁이 황제권의 강화 등 근대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에서 ‘전근대적 요소’가 혼재·강화되는 현상은 새로울 게 없다. 러시아에서는 차르 황제가, 일본에서는 천황제가 자본주의 발전에 앞장서지 않았던가.

반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총독부의 ‘근대적 합리성’을 강조한다. 이런 폭압적 기구의 유산이 이후 박정희 독재로 계승돼 자본주의적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일제가 시행한 토지조사 사업도 수탈이 아니라 근대화 사업으로 치켜세운다.

또,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시기에 철도 건설 등이 있었으니 민족주의 사학이 식민지 수탈을 부각하는 것은 일면적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가 레닌도 지적했듯이, “철도 건설은 언뜻 보기에 … 문명을 보급하는 사업처럼 여겨진다. … 그러나 [자본주의는] 철도 건설 사업을 … 지구상의 절반 이상의 인구를 억압하는 도구로 바꿨다.”

자본주의 전환

다만 기존의 민족주의·스탈린주의 좌파는 이러한 수탈을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보는 약점이 있었다. 이런 입장은 식민 지배 속에서도 자본주의가 발전했고, 그 속에서 노동계급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론은 단순히 일제 시대에 근대화가 진전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발전 방향은 자본주의적 발전밖에 없었다”는 것을 강요하려고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를 찬미한다.

이들은 기아선상에 놓여 있던 빈농, 초착취와 폭력적 노무 관리에 시달린 노동자, 전시 강제 동원 속에 죽어간 수십 만 명을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부수적’ 피해쯤으로 여긴다. 자본주의 전환에 성공했으니 “피식민지의 가혹한 시련”은 “한국인에게는 …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 시대에 ‘경제의 고도 성장’이 계속됐던 것처럼 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들은 태평양 전쟁으로 식민지 경제가 붕괴한 1941∼45년 기간의 통계는 누락한다.

실제로 식민 지배를 겪은 많은 나라들이 정체와 저성장에 빠진 바 있다. 그래서 많은 제3세계 나라들에서는 제국주의 식민 정책 때문에 성장이 저해된다며 독립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민족주의 프로젝트가 제기됐던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시대에 ‘근대 사회를 운영할 세력’이 출현했다고 강조한다. 바로 친일 엘리트, 즉 조선인 자본가와 국가 관료 들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자연스럽게 친일파 복권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물론 식민지 근대화론은 노동자도 이 과정에서 기술을 습득하는 등 근대적 세력으로 성장했다고 본다. 그러나 착취하기에 더 알맞은 존재가 된 것일 뿐이라고 본다.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가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계급’으로 등장했다는 것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는다. 실제로 조선 노동계급은 원산 총파업 등 여러 파업을 통해 일제에 항거했다. 그 잠재력은 해방 이후에도 미 군정에 맞선 30만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일제의 식민 지배가 남긴 유일한 ‘긍정적 요소’가 있다면 바로 노동계급의 형성일 것이다.

당시에 식민지를 통한 근대화 외의 다른 진보적 대안은 무엇이었을까? 좌파 민족주의와 스탈린주의는 모종의 민족경제를 대안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자립적 민족경제로 세계 자본주의가 가하는 압력에 대항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탈식민지 과정에서 이들 역시 또 다른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귀결됐다.

가장 진보적 대안은 선진 제국의 노동자 혁명과 피억압 식민국가의 민족해방 혁명이 결합함으로써 비자본주의적 근대화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지기 10여 년 전, 마르크스는 전근대적인 러시아의 농촌공동체가 서유럽의 노동자 혁명과 결합될 경우,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도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된 뒤에 벌어진, 1910년 일제의 조선 침략은 불필요할 뿐더러 반동적인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