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절판된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 새롭게 출판됐다. 얼마나 반갑고 기쁜 일인가.

이제 독자들은 왜곡되고 악마화된 레닌의 이미지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에 대한 광범위한 곡해를 벗어던지고, “국가의 폐지를, 즉 모든 조직적·체계적인 폭력의 폐지를, 인간 일반에 대한 모든 폭력 사용의 폐지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국가와 혁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지음, 문성원ㆍ안규남 옮김, 아고라, 230쪽, 15,000원

대선 개입과 마녀사냥 등을 통해 국가기구의 추악함이 나날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이 책이 출판된 것은 더욱 반갑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20세기 초 널리 퍼져 있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왜곡에 맞서 “마르크스의 국가론을 원상복구”했다.

오늘날은 자율주의와 개혁주의의 마르크스주의 왜곡뿐 아니라 스탈린주의 체제의 끔직한 경험과 실패 때문에 사회주의는 숨막히는 관료적 일당 독재 체제와 동일시되고 있다. 옛 소련, 동유럽, 북한 등지에서 일어난 일의 책임을 ‘레닌주의의 오류’로 돌리는 생각은 심지어 급진 좌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레닌의 국가론은 스탈린 체제의 일당 독재와 아무 상관이 없다. 《국가와 혁명》에서는 정당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혁명은 혁명정당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소비에트(노동자·병사 평의회)로 조직된 평범한 노동자 대중이 역사의 무대 전면에 나서야 한다.

레닌은 대중의 창조적 잠재력을 철저히 신뢰했다. 레닌은 “근로 민중을, 빈민을 일상적 국가 행정 업무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회주의에서는 “문명 사회의 역사상 처음으로 주민 대중이 일어나 투표와 선거뿐 아니라 일상적 행정 사무에도 자주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레닌은 국가가 중립적이고, 서로 싸우는 개인이나 계급 들을 중재하려고 존재한다는 신비화된 관념을 비판했다.

국가의 존재는 “계급 대립들이 화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엥겔스가 지적했듯이, “고대국가와 봉건국가가 노예와 농노를 착취하기 위한 기관이었듯이, 근대의 대의제 국가 역시 자본에 의한 임노동 착취의 도구이다.”

강제력

독자들은 그래도 민주공화국은 다르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운영자들은 헌법적 외피를 두르고 국가가 중립적인 것처럼 행세한다. 또, 자본축적에 도움이 되는 복지 제도를 마련하고, 어느 정도의 공공적 기능을 담당한다.

군대ㆍ검찰ㆍ경찰 같은 국가기구는 체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1973년 칠레에서는 군부 쿠데타로 온건한 사민주의 정부가 타도됐다

그러나 레닌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는 군대와 경찰과 같은 강제력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국정원, 경찰, 법원, 군대와 같은 국가 관료 기구들은 “수천 가닥의 끈으로 부르주아지들과 연결”돼 있고, “항상 압제적이고 기생적인 관료 정치를 동반”한다. 이들 자본주의 관료 기구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되지도 통제받지도 않고, 상명하복식의 엄격한 위계제로 조직돼 있다.

고위 공직자들은 선출된 정부와 의회의 통제에서도 벗어나 있고, 자본가들과 공모해 어떠한 진지한 개혁 시도라도 무력화시킬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다.

우리는 지난 1백 년간 국가를 민주화하려는 시도, 의회를 통해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거듭 실패해 왔음을 봤다.

따라서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기존의 국가 집행기구와 관료들의 방해 때문에,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레닌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타당하다.

물론 레닌은 다양한 자본주의 국가 형태의 차이점을 무시하지 않았다. 의회민주주의가 권위주의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훨씬 수월”하게 한다는 것도 인정했고, 필요할 때는 부르주아 의회제라는 ‘돼지우리’까지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레닌은 “몇 년에 한 번씩 지배계급의 어느 부위가 의회를 통해서 인민을 억압하고 짓누를지를 결정하는” 부르주아 의회제도는 “언제나 소수를 위한, 유산계급만을 위한, 부자들만을 위한 민주주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1871년 파리 코뮌의 경험을 보고 “노동계급은 단순히 기존의 국가기구를 그대로 장악하여 그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없다. 기존의 국가는 파괴되고 분쇄돼야 하며 노동자 국가로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뮌은 옛 국가 권력의 물질적 도구였던 상비군과 경찰을 해체했고, 모든 공직자에 대한 완전한 선거제와 소환제를 도입했다. 고위 공직자와 더불어 그들의 모든 특권을 없애고, 공직자들의 보수를 보통의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낮췄다.

이런 노동자 국가는 “부자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처음으로 빈자를 위한 민주주의,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가 되는 그런 민주주의를 엄청나게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억압자, 착취자, 자본가 들의 자유에 대해서는 일련의 제한을 가한다.”

나아가 자본가들이 소멸하고 더는 어떠한 계급도 없는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사회는 자유롭고 동등한 생산자들의 결합의 토대 위에서 생산을 재조직할 것이며, 전체 국가기구를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즉 박물관에 물레 및 청동도끼와 나란히 놓을 것”이라는 엥겔스의 전망이 현실화될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 국가조차 점차 소멸해야 한다는 게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레닌의 공통된 견해였다.

레닌이 이끈 노동자 국가는 내전과 외세의 군사적 개입, 산업의 파괴와 노동계급의 해체, 혁명의 고립 등으로 결국 10년 만에 스탈린주의라는 괴물로 변질됐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은 평범한 대중이 개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해 사회를 스스로 운영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힐끗 보여 줬다.

“자본주의적 착취의 무수한 참상·야만성·불합리·추악”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