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표 황우여는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는 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방어적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정당화한다.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정당을 헌법재판소 심판으로 해산시키는 게 [방어적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방어적 민주주의, 즉 전투적 민주주의는 1930년대 독일의 칼 뢰벤스타인, 칼 만하임 등이 주창한 사상이다.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는 없다’는 생각에 기반한 이 사상은 1949년 서독 기본법에서 처음 성문화됐다.

서독 헌법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 질서를 침해 또는 폐지하려는 정당은 위헌”이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공격하기 위해 이를 남용하는 자는 기본권의 효력을 상실”하며, “연방의 존립과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의 위협에 대해 방지”한다고 명시했다.

개념 원리

한국의 헌법에도 이와 유사한 조항이 있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헌법 8조 4항)

그런데 이때의 ‘민주적 기본질서’가 무엇인지는 매우 모호하다. 지배자들은 헌법을 그 기준으로 내세운다. 헌법에 충성하며 국가 체제를 존중하는 세력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은 특권 계급의 질서를 옹호한다. 이 때문에 전투적 민주주의는 지배자들이 좌파를 탄압하는 무기로 사용됐다.

특히, 정부만이 정당 해산 청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정부가 증오하는 정당은 사실상 언제든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진보당 강령의 이념이 헌법의 국민주권에 반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해산 청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투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적 권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반민주적 사상이라는 게 결정적인 문제점이다.

이 사상에 따르면, 당장의 가시적 위협이 없더라도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탄압할 수 있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미래의 위험성을 예측해 처벌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의 머리 속을 뒤져 사상을 단속하고 합법적으로 탄압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전투적 민주주의는 국가보안법의 존치 논리이기도 하다.

이런 논리에 따라 헌법 76조는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면 대통령이] 명령을 발할 수 있다”는 국가 탄압의 근거를 제시한다. 계엄 선포도 대통령의 권한으로 보장된다. 한국의 역대 독재 정권들은 이와 같은 헌법 조항들을 근거로 노동자·민중 운동을 탄압해 왔다.

정당 해산을 판단하는 헌법재판소도 결코 중립적 기구가 아니다. 헌재는 선출되지 않은 국가기구로 보수적 판사 일색이다. 헌재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박근혜는 공안검사 출신 박한철을 그 자리에 앉혔다. 실제로 헌재는 무수히 많은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1990년 국가보안법 합헌, 교사 정치 활동 금지, 사립학교 교사 노조 금지, 양심적 병역 거부 처벌, 군대 내 동성애 처벌 등 온갖 보수적 판결을 내렸다.

역사적 경험

서독의 역사적 경험은 전투적 민주주의의 진정한 목적을 분명히 보여 준다. 서독이 전투적 민주주의를 도입한 배경에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동·서 제국주의 간 경쟁인 냉전과 독일의 지정학적 조건이 있다.

냉전 초기인 1949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하고 서독을 거기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그에 따라 서독의 재무장이 필요해졌다. 그러자 1950년대 서독에서 재무장 반대 대중 운동이 벌어졌다. 독일공산당(이하 KPD)도 이 운동의 일부였다. 서독 정부는 1950년에 ‘반체제적 활동 감시’를 강화했고, 이듬해 재무장 반대 국민투표도 금지했다.

이윽고 신나치 정당인 사회주의제국당(SRP) 해산소송을 제기하고, 얼마 뒤에는 KPD 해산소송을 제기했다. ‘극우만이 아니라 극좌도 헌법의 적’이라는 것이다. KPD는 1949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15석을 얻은 정당이었는데도 서독 정부는 KPD가 ‘맑스·레닌주의를 따르고 폭력혁명으로 권력을 탈취하고자 한다’며 정당 해산소송을 청구했다. 1956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결국 KPD를 해산시켰다.

KPD가 강제 해산당하자 서독의 재무장에 반대한 세력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극심해졌다. 정부에 반대하는 주장과 유인물 배포 등 반정부 활동이 금지됐다. 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혐의만으로 언론사와 인쇄소들이 폐쇄되고, 활동가들은 수사 대상에 올랐다.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쫓겨났고 마르크스주의 토론도 금지됐다. 제국주의 질서 재편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요소들을 ‘체제 방어’를 명분 삼아 제거했던 것이다.

현실

지금 새누리당도 진보당에 이어 ‘종북’ 시민단체 해산까지 추진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한미FTA 반대 운동에 종북 딱지를 붙여 온 자들이니 진보적 시민단체도 해산시키겠다는 뜻이다.

이 나라에서 우익이야말로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해 온 세력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정적인 진보당을 강제 해산시키고 당수 조봉암을 사형시켰다. 박정희 역시 유신헌법으로 독재를 정당화하고 인혁당 ‘사법 살인’을 벌였다.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집권한 전두환도 민주주의를 밟고 올라서 권세를 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명박 정권 5년 내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하는 물음이 거리에서 터져나왔다.

맺으며

착취와 억압에 기반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피억압자들에게는 삶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들을 내릴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다수의 피억압자들에게는 4~5년에 한 번 잠깐 투표할 권리만 주어진다. 이렇게 뽑힌 자들은 대기업과 권력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지금 박근혜 정부와 우파가 전투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지키려는 것은 바로 이런 체제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정과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국정원 게이트가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런 피상적 수준의 민주주의에 머무르지 않아도 될 자격이 있다. 1987년 6~9월 대중투쟁은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 투쟁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자들을 물러서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한발짝 더 나아가게 하는 진정한 동력임을 보여 준다.

또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노동자 대중이 실질적 권력을 가지는 수준의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민주주의와 진보진영에 맞서 ‘전투’를 시도하는 자들에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