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천안문) 광장에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신의 위구르인 가족 3명이 탄 지프차가 톈안먼 입구로 돌진했다. 그 직후 지프차가 폭발했고, 이 폭발로 안타깝게도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이슬람주의 테러 조직의 소행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중앙정법위원회 서기 멍젠주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다수 포함된 상하이협력기구(이하 SCO) 회의에서 “이번 테러 사건의 배후는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이하 ETIM)”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알카에다와 연결된 테러 조직이며, “테러리즘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적”이고, “대테러 활동을 위해 [SCO 소속 국가 간] 공조를 강화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이슬람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섞는 것이다. 이 사건의 진정한 원인은 중국의 제국주의적 신장 지배가 낳은 억압과 빈곤에서 찾아야 한다.

중국 지배자들의 제국주의적 억압과 식민화 정책으로 신장 지역에서 위구르인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은 그동안 끔찍한 고통을 당했다. 1949년 중국 공산당 정부는 중국 서북쪽에 위치한 신장 지역을 현지 소수민족들의 의사와 상관 없이 강제로 점령했다. 이 지역을 주변국에 대한 완충 지대로 삼기 위해서였다.

온갖 차별과 멸시에 시달리는 위구르족 중국 정부의 억압과 천대는 불만과 저항을 키우고 있다. ⓒTodenhoff(플리커)

중국 정부는 민족자결을 요구하는 위구르인의 목소리를 철저히 묵살했다. 그리고 한족을 이주시켜 소수민족의 저항을 억누르려 했다. 1949년 신장 지역 인구에서 한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6퍼센트에 불과했는데, 점령 이후 중국 정부의 대규모 이주 정책으로 이제는 40퍼센트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중국 지배자들은 위구르인의 종교인 이슬람도 탄압했다. 1960년대 문화혁명 때는 이슬람 상징물과 모스크가 ‘봉건 악습’으로 여겨져 파괴되기도 했다. 지금도 쿠란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이슬람 성직자들을 구금하거나, 학교·병원·관공서 등지에서 라마단 금식을 금지하는 등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신장 지역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등장한 건 바로 이러한 중국의 민족 억압 때문인 것이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며 잠시 완화되는 듯하던 중국 정부의 억압은 1980년대 말부터 다시 강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1989년 톈안먼 항쟁의 영향이 소수민족에 미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대규모 한족 이주 정책이 재개됐고, 신장 지역의 중심 도시인 우루무치는 인구의 95퍼센트가 한족이 됐다.

그리고 곧 옛 소련이 붕괴하면서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잇달아 독립했다. 중국 지배자들은 이런 사태가 이 신생 독립국가들과 국경을 마주한 신장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했다.

천대

이후 점점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위상이 변한 점도 중국 지배자들이 신장에서 억압을 강화하는 배경이 됐다. 서방과의 제국주의 간 경쟁에서 그 지역이 중요해졌고, 거기에 국경을 마주한 신장 지역은 중국의 중요한 군사 요충지로 간주됐다.

게다가 현지의 석유 자원은 중국 지배자들한테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을 뚫고 중동과 카스피해 등지에서 석유를 (바다로 운반하지 않고) 송유관을 통해 중국 본토로 가져오려면 반드시 신장 지역을 통과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한 서부대개발 같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는 현지 위구르인들의 불만을 더욱 키웠다. 우루무치 같은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도로, 가스관 등의 사회기반시설 건설과 자원 개발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발의 수혜는 주로 한족한테 가고 있다.

자연히 위구르인 사이에서는 개발에서 소외되고 온갖 차별과 멸시를 당하는 것에 불만이 커져 왔다. 도시에서 위구르인은 교육, 고용, 공공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배제되고 있다. 농촌에서는 토지와 수자원 사용에서 한족에 견줘 온갖 차별을 받는다.

이런 상황이니, 위구르인이 중국 정부의 식민주의 억압에 반대해 항의와 저항에 나서 왔던 것이다. 중국 정부는 언제나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학살해 왔다.

근래 들어 티베트·네이멍구 자치구 등에서 소수민족들의 저항이 다시 크게 일어나는 조짐이 있다. 신장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6월 투루판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 35명이 사망한 데 이어, 신장 남부 지역에서 현지 공안과 주민 간 유혈 충돌로 1백 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톈안먼 차량 폭발 사건은 최근에 일어난 저항과 학살의 연장선 상에서 봐야 한다.

중국 지배자들은 이참에 신장 지역에서 본때를 보여 주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동아시아에서 대외지정학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도 그들이 강경한 태세를 보이는 원인일 것이다.

이번 차량 폭발 사고로 이미 신장 위구르 자치구 현지에서는 탄압이 강화되고 있다. 위구르인 53명이 종교 간행물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중국 경찰에 체포됐다. 중국 당국은 신장 지역에서 베이징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자동 감청하고, 위구르인 호적의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군이 신장 지역에서 대대적인 반테러 작전을 벌이려 준비한다는 얘기도 있다.

저항

중국 지배자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이번 사건을 이용할 것이다. SCO 회의에서 중국 정부가 국제 공조를 강조한 것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더 깊게 하고 그쪽으로의 진출을 강화하고자 이번 사건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신장의 소수민족들을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랬다면 60년 전에 이 저항은 끝났을 것이다. 오히려 위구르인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은 더 깊은 원한을 새기며 더 큰 반발과 저항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할 최종적 대안은, 무엇보다 중국 노동계급이 중국의 체제를 전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런 혁명이 일어난다면, 티베트와 신장 등에 있는 중국 내 소수민족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자결권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서방 지배자들의 위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다른 한 가지 점은 바로 미국과 서방 지배자들의 위선이다. 미국 지배자들은 언제나 기회가 되면 중국 내부의 인권 문제를 들먹였다.

그러나 미국 지배자들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중국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자, 중국 지배자들과 기꺼이 거래에 나섰다. 그 거래로 미국과 유엔은 ETIM을 포함한 위구르인의 저항단체들을 테러 조직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일 때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최소한 20명 이상의 위구르인들이 갇혀 있었다.

미국이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나 인권 문제를 놓고 중국 지배자들을 비난하는 건, 말 그대로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