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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의 배심제 헐뜯기:
배심제 재판을 받는 것은 권리다

최근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박근혜와 그 측근에 대한 ‘허위 사실 공표’, ‘비방’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과 ‘나꼼수’ 진행자들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들이 국민참여재판을 ‘감성 재판’, ‘정치 재판’, ‘여론 재판’이라며 물어뜯고 나섰다.

새누리당 김학용은 안도현 시인의 재판이 “문재인 후보가 몰표를 받았던 전주”에서 진행된 것을 문제 삼으며 “정치 재판”이라고 비난했다. 새누리당 권성동도 “정치색을 띠고 있는 사건은 절대 국민참여재판으로 해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법리가 복잡해 법률 전문가도 유무죄를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아 일반인들은 평결할 능력이 없고, “참가한 배심원단의 심정적 상태와 법원의 소재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져, 국민참여재판은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법무장관 황교안도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우파의 헐뜯기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직업 법관은 과연 정치에서 ‘독립’해 있는 집단인가? 2009년 대법관 신영철은 촛불 집회에 참석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 재판을 ‘법대로 빨리 처리하라’고 판사들에게 압력을 넣어 논란이 됐다.

당시 대법관 박시환은 “재판 개입은 유신과 5공 때부터 계속돼 왔던 것”이라며 사법부와 집권 핵심 세력의 오랜 유착 관계를 폭로한 바 있다.

사실 최고 법원의 법관(대법관) 임명권 자체가 대통령에게 있다. 그래서 대개 대법관은 보수적이고 친정부적인 인사 일색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법부는 위계 구조로 짜여 있어서 “피라미드 속에서 승진을 신경 써야 하는 직업 법관이야말로 외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문성을 이유로 배심원제를 비난하는 것도 엘리트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재판은 단지 기계적으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므로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노동계급의 삶을 잘 아는 사람들이 훨씬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정치적’ 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사건일수록 평범한 사람들의 “감성”과 상식을 반영해야 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정치적 사건은 참여 재판을 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민주적 권리

배심제는 1215년 영국에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로 확정된 뒤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인정받았다. 그 후 배심제는 부르주아 혁명을 거치면서 전 유럽으로 확대됐다. 이전 재판은 민중에게 가혹하고 불리하기 일쑤였으므로 혁명 이후 ‘시민에 의한 법 지배’를 확립했던 것이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민주주의 수레의 두 바퀴”는 “보통선거와 배심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혁명 패배 시기나 나치가 권력을 잡았을 때 배심제가 후퇴·폐지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형태를 달리해서 대다수 나라에 정착됐다.

물론 배심제가 최상의 사법 제도는 아니다. 배심제를 채택하는 미국의 사법 제도 역사를 보면, 백인이 흑인에게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 받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자체가 부자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권력과 돈이 없는 사람들이 피고인이 되고, 작은 잘못을 해도 큰 벌을 받는다. 자본주의에서 사법부는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고, 엄격한 위계제로 짜여져 상층부의 통제를 받는다.

그럼에도 배심제가 더 나은 제도임은 분명하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법원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칠 기회가 조금이라도 더 있고, 판사 1인이 모든 것을 판단·결정하는 것보다 노동계급의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배심원들이 평결을 내리는 게 더 민주적이다.

직업 법관은 자본가와도 얽히고설켜 있다. 삼성·현대·LG·SK 등 재벌들은 웬만한 국내 대형 로펌보다 많은 법조인을 고용하고 있고, 여기엔 판·검사 출신들이 넘쳐난다. 인사청문회에서 법무장관 황교안도 검찰을 떠난 뒤 대형 로펌에 들어가 한 달에 평균 1억 원 이상의 돈을 벌었음이 드러났다.

현재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영·미의 배심제에 견줘도 한참 못 미치는 제도다. 배심원 숫자도 더 적고, 평결을 해도 구속력이 없어서 판사가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지금 우파는 사법개혁의 일부로 시작된 이 쥐꼬리만한 개혁 조처마저 되돌리고 싶은 것이다.

오히려 배심원 평결에 구속력을 부여하고, 배심원 수 증원, 배심 재판 기간 임금 지급 의무화 등 현재의 국민참여재판에 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권한을 갖도록 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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