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는 최근 호에서 영국 반파시즘 운동이 직면했던 시험대와 그 운동의 전략을 정리한다. 다음은 그 투쟁을 이끄는 활동가 웨이먼 베넷의 글이다. [ ] 안의 말은 역자나 〈레프트21〉 편집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보충한 말이다.


영국의 파시스트 거리운동 조직 영국수호동맹(이하 EDL)의 설립자인 토미 로빈슨과 그의 사촌 케빈 캐롤이 EDL을 탈퇴하겠다고 선언[2013년 10월]한 것은 영국 반파시즘 투쟁에 한 획을 긋는 중대 사건이었다. 로빈슨이 지도한 EDL은 1970년대에 활동한 국민전선 이래로 가장 성공적인 파시스트 거리운동 조직의 하나로, 유럽 전역에 EDL을 본따 생긴 “수호동맹”이 여럿 있다. 로빈슨의 탈퇴는 EDL의 종말을 뜻하는 사건이었는데, 이 일에 앞서 영국의 파시스트 정당 영국국민당(이하 BNP)이 선거에서 참패를 겪었다.[EDL과 BNP는 각각 거리운동과 제도권 정치 참여를 맡는 역할 분담 관계라 할 수 있다.]

영국 파시스트의 선거 조직과 거리운동 조직을 꺾은 세력은 단체명이 ‘파시즘에 맞서 단결하라’라는 반파시즘 연합(이하 UAF)다. UAF는 BNP가 선거에서 약진한 것에 대응해 2003년에 창립됐다. UAF 창립의 배경에는 파시스트들의 전략 변화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UAF에 앞서 매우 성공적으로 활동한 반파시즘 운동 단체 반나치동맹(이하 ANL)은 파시스트에 도전하고자 1970년대에 결성됐고 이후 1990년대에 재결성된 단체로, 당시의 파시스트 운동 상황을 반영했다. 1999년에 BNP의 지도자가 된 닉 그리핀은 프랑스의 장 마리 르펜이 이끈 국민전선(이하 FN)의 성공을 모방해 BNP를 유러파시즘 정당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르펜은 FN의 깡패 이미지를 버리고 공당으로서의 책임을 수용해, FN을 프랑스 공식 정치에 안착시켜 선거에서 여러 차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유럽 다른 나라에 있는 파시스트 단체들은 르펜이 거둔 성공을 오랜 정치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 봤다.

그리핀은 영국에서도 프랑스처럼 돌파구를 만들려면 “3H”를 버려야 한다고 자기 지지자들에게 강조했다. 그는 “3H”를 “호비이즘(Hobbyism), 거친 언사(Hard talk), 히틀러” ─ 즉, 사제폭탄 제조, 인종차별적 언사, 히틀러 숭배 ─ 라고 규정하며, 과거의 스킨헤드[이민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과격한 인종차별주의자] 깡패 이미지와 거리를 두려 했다. 

그리핀의 변화는 영국의 파시스트 운동이 좌파에게 패배했다는 점뿐 아니라, 인종차별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망명 신청자에 대한 편견과 이슬람 혐오가 인종차별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고, “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인종차별은 점점 외면당했다.

인종차별

1930년대와 1960년대에 주류를 이룬 유대인 차별과 흑인 차별은 더는 용인되지 않았다. 심지어 극우파들도 더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정치를 공개적으로 옹호할 배짱이 없었다. “통속적 인종차별”을 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태도는 이전과 상전벽해라 할 만큼 완전히 달라졌는데, 특히 미국의 공민권 운동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격리 정책에 맞선 투쟁을 거치면서 그렇게 됐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국민 정체성” 운운하는 새로운 담론이었다. 즉, “외래” 문화가 영국 문화를 집어삼킨다는 것이었다. 언론이 이 새로운 인종차별을 그럴듯한 것으로 보이게 했고, 정치인들도 여기에 영합했다. 이로써 그리핀과 파시스트들은 재평가를 받았다. BNP는 자신들이 인종차별적 정당도 아니고, 백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믿지도 않으며, 그저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 영국·기독교·북유럽 문화의 독자성을 수호하고자 할 뿐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BNP는 유럽연합 의회 선거와 런던광역시 선거를 정치적 돌파구로 봤다. 비례대표제 덕에 소수 정당도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핀과 그의 동맹자 앤드류 브론즈는 유럽연합 의회와 시의회 의석을 얻어 공식 정치로 진입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BNP는 자신들이 취약하다고 판단한 잉글랜드 북서부지방, 요크셔, 런던 동부지구 같은 지역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 지역들은 실업, 심각한 주택 부족, 점증하는 빈곤으로 고통받는 곳이었고, 소수자들이 눈에 띄는 곳이기도 했다.

BNP는 이처럼 전통적으로 노동계급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지만 산업이 쇠퇴하는 곳에서 성과를 얻었고, 노조가 약화하고 노동당 득표가 하락한 지역을 주의 깊게 표적으로 삼았다. UAF를 결성한 것은 변하는 상황에서 반파시즘 투표를 조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BNP의 성장

2001년 총선 이후 BNP는 계속해서 인기를 얻고 강력해졌다. 2009년 그리핀과 브론즈가 유럽연합 의회 의원이 되고, 2008년 리처드 반브룩이 런던광역시 의회 의원이 되고, BNP가 영국 전역에서 지방의회 의원을 배출하면서 그 기세가 절정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눈부신 성장이었다. BNP는 공식 정치의 일원이 됐고, “점잖은” 정당을 자처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BNP를 막을 수 없게 됐다거나, BNP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BNP 지지층 일부를 되찾아오려면 “[영국인의] 정체성 개념을 더 발전시켜 파시스트가 내세우는 것보다 더 영국적인 정체성을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UAF는 이런 주장에 반대해 대중적 ‘인종차별 반대 투표’를 조직해야 하고, 이것이 성공하려면 노동계급이라는 대부대를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UAF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ANL과 [1970년대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음악 축제인] ‘록 어게인스트 레이시즘’이 활동하던 시기에 성장한 노조 지도자층이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우편노동조합(CWU)의 빌리 헤이스, 소방수노동조합(FBU)의 앤디 길크리스트와 믹 쇼 등 1970년대와 1990년대에 지도적인 직장위원이었고, 그때 이래로 저명한 노동운동가로 떠오른 인물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공무원노조(PCS)의 마크 서워트카, 교사노조(NUT)의 크리스틴 블로우어와 케빈 코트니 등 크고 작은 노조의 지도자들이 UAF를 지지했다. 운송일반노조(TGWU) 지도자와 스페인 내전 참전 재향군인 잭 존스 등이 UAF 창립총회에서 연설했다. 노동조합은 반파시즘 운동의 일부였고, 파시즘에 맞선다는 매우 중요하고도 오랜 전통을 대표한다.

노조 지도자들과 동맹을 맺은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 수백만 명을 대표하는 인물들이고, 노조의 재정 지원 덕분에 UAF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선거 유인물 수백만 부를 반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슬람교 사원, 교회, 지역운동 단체 등과도 관계를 맺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런 단체들과 연계가 없다면 접근할 수도 없었을 지역·사람들과 매우 광범하게 접촉할 수 있었다. 우리는 국회의원들과 지방의회 의원 등 파시즘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단체와 활동가들의 지지도 받았다.

UAF의 활동가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반파시즘 주장을 알리고 지역 곳곳에서 운동을 벌이는 등 중요한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스톡, 번리, 맨체스터를 비롯한 수백여 곳에서 UAF 지역 단체들은 체계적으로 유인물을 반포하고 그 지역의 파시스트가 누군지 찾아내 폭로했다.

BNP가 소규모로 지역 유세를 하든 ‘질의 시간’이라는 전국적 TV 프로그램에 그리핀이 출연하든, UAF는 BNP가 나타나는 곳마다 공개적 항의 행동을 벌였다. 우리는 그들을 파시스트라고 짚어 주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BNP가 점잖은 정당이라는 인식을 어떻게 깨뜨리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우리의 두 번째 전략적 강점은 반파시즘 운동의 문화적 날개인 ‘러브 뮤직 헤이트 레이시즘’(LMHR)에서 나왔다. 유명 연예인들이 언론과 음악 관련 출판물에서 BNP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술집과 대학 캠퍼스에서 음악 공연을 수백 차례 열었다. BNP가 강력한 스토크온트렌트 시 같은 곳에서 반파시즘 축제를 열고,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분출한 적 있는 런던 동부의 빅토리아 파크에서 대규모 축제를 개최했다. 파시스트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단지 거리에서만 반대에 부딪힌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마음속에서도 밀리게 됐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형세가 BNP에 불리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원칙

우리 운동 안에는 파시스트들과 논쟁하는 것이 그들을 폭로하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우리는 이런 주장에 반대해, 파시스트들이 사상을 전파하거나 자기 주장을 설명할 기회를 결코 줘서는 안 된다는 “[파시스트를 위한] 연단은 없다”는 정책을 주장했다. 우리는 나치가 그저 독특한 생각을 하는 일부 주류 정치인들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민자 문제에서는 양보해서 BNP의 기반을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파시즘 운동 안에 있었다. 예컨대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은 파시스트들과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주장에 반대해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이 무슬림 탓이 아니고, 영국에 “이민자가 득실대는” 것도 아니며, 에섹스에 지어지는 새 집들을 아프리카인들이 죄다 차지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주장은 BNP가 제기한 수많은 터무니없는 주장들 중 하나다.)

무슬림 악마화에 말려들어, 테러 행위에 책임이 있는 무슬림들은 나치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거나, “이슬람적 사고”나 “이슬람 문화”에 파시즘과 유사한 것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파시즘 운동에] 커다란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모두 거부했다. 테러를 저지르는 개인(이유가 무엇이든)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노동계급 조직을 분쇄하고 홀로코스트 같은 참상을 불러일으키려 하는 운동은 서로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파시즘 운동의 일부가 되는 데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는 점도 매우 중요했다.(물론 여러 쟁점을 놓고 생각과 의견이 다르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민 등의 문제에서는 근본적 차이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 동맹을 유지하는 데서 이 원칙은 사활적으로 중요했다. 우리의 목표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정서를 조성하고, 파시즘에 맞서는 데 필요한 주장으로 운동을 무장시키는 것이었다.

전술

우리는 나치 조직을 부수려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했다. 《파시즘은 무엇이고 어떻게 맞설 것인가》라는 저서에서 트로츠키는 도축당할 처지에 놓인 소의 비유를 들었다. 도축업자가 칼을 갈고 있는 와중에 어떤 소들은 자기 운명이 이렇게 된 책임이 일부 소들에게 있다고 탓했다. 그때 소 한 마리가 외쳤다. “우리 함께 힘을 합쳐 이 도축업자를 뿔로 받아 버리자.” 이것이 공동전선의 정신이다.

파시스트 조직은 그 본성상 두 가지 전술을 구사한다. 가능한 수단을 무엇이든 동원해 자신들의 견해를 대중에 퍼뜨리고 정치적 의제를 제기하는 것이 첫 번째 전술이다. 두 번째이자 더 중요한 [전술] 목표는 노동계급 운동에 맞서 그것을 분쇄할 수 있는 거리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파시스트 운동이 다른 극우 정당과 다른 점이다. 지금이야 BNP와 FN이 점잖은 세력으로 보이려고 “정장 입은 나치” 행세를 하지만, 때가 되면 거리를 장악하려 들 것이다.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거리로 돌아가기 위한 전 단계 전략으로 지지자 수를 늘리고 대중에게 존경을 받으려는 행동이다. FN을 막아 내지 못하면, 어느 순간에 FN은 프랑스 거리를 장악할 것이다. 헝가리의 신나치인 조빅당은 ‘헝가리 수호단’을 건설하고 있는데, 거리를 장악하고 헝가리에 사는 로마인들을 공격하는 데서 대중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다.

이것이 2009년 EDL이 결성되면서 영국에서도 개발하기 시작한 전술이다. BNP의 선거 출마 전략이 반파시즘 운동에 꽉 틀어막히면서, 파시스트의 일부가 거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처음에 EDL은 아무도 EDL이 뭔지 몰랐다는 점 때문에 득을 봤다. EDL은 훌리건, 조직된 인종차별주의자, BNP 당원인 로빈슨 같은 나치 일부가 느슨하게 묶인 단체였다.

EDL은 이슬람 혐오가 먹히는 상황, 즉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재앙적인 전쟁이 일어난 이후 무슬림에 대한 악독한 인종차별이 판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EDL은 소규모 난동을 피우며 루턴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마스크를 쓴 깡패 5백여 명이 몰려다니며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다. 경찰은 확실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고, EDL 지도자들은 체포되지 않았다. 깡패들의 난동이 “용납되는” 듯 보였다. 루턴 사태 이후 경찰은 전국을 돌며 지방 의회에 EDL이 “인권 단체”라는 조언을 하고 다녔다.

EDL은 스토크, 더들리, 버밍엄 같은 곳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EDL의 시위는 수백 규모가 아니라 수천 규모였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수적으로 밀렸다. 스토크온트렌트 시에서 EDL이 일으킨 폭동은 경찰도 압도했다. 이런 폭동에는 군복 입은 군인도 몇 명 동참했다. “우리는 원하면 어디든 간다”가 EDL의 구호였다. 크고 작은 모든 도시가 그들의 목표였다. 정부는 EDL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도시 전체를 폐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우리는 도시를 개방하려고, 또 도심에 많은 사람들을 모으려고 투쟁했다. EDL은 “시위”를 벌일 지역에서 미리 “인종 청소”를 벌였다. 한나절 정도라 할지라도 말이다. 무슬림과 흑인 등 EDL이 보기에 “영국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모두 집 안에 꼭꼭 숨어 있으라는 것이었다.

정부는 무슬림들이 EDL에 맞서는 시위를 일절 조직하지 못하게 하려고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을 겨냥해 만든 ‘예방 대책’을 이용했다. 아시아계 청년들은 반파시즘 시위에 참가하지 말라는 정부의 명령서를 받았고, UAF의 활동가들은 체포 위협을 받았다. 나도 셀 수도 없이 많이 체포당했다. 우리는 온갖 비난을 들었고, 우리를 막기 위해 여러 꼼수가 동원됐다. 그러나 우리는 굴복하지 않았다. EDL의 행진이 도전받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들이 통과하게 놔두지 말자”를 구호로 삼았다.

히틀러는 파시스트 거리 운동이 “보잘것없는 인간”에게 “강력한 용”의 일부라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토미 로빈슨이 말한 것처럼, EDL 시위는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EDL은 처음에는 “소수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에만 반대한다고 했지만, 그들이 모든 무슬림을 노린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EDL이 인기를 얻을수록 인종차별이 전반적으로 되살아났다.

EDL은 점점 더 많은 것을 노렸다. EDL은 노조 사무실과 좌파 서점을 공격했고, 파업 대열에 가서 행패를 부렸다. ‘점거하라’ 운동을 공격했고, 학생운동에 반대했고, [2011년] 여름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 청년이 사망하면서 소요사태가 발생한] 런던 북부 지역에 가서도 [흑인 청년들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데올로기

EDL이라는 거리 운동이 전통적 파시스트 조직으로 새로 태어나고 있음은 명백했다. 그리고 EDL이 정치 이데올로기와 선거 전략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는 점도 명백했다. EDL에 맞서는 것은 UAF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2010년 총선에서 BNP가 참패해 바킹과 대거넘 지역에서 그리핀이 굴욕을 겪고 지방의회 의석 다수를 잃어버린 이후로는 특히 그랬다. 

지금까지 UAF는 EDL에 맞서 맞불 시위를 2백50회 넘게 조직했다. 더들리, 블랙풀, 프레스턴 같은 곳에서 벌인 시위는 흔히 고립된 소수 무슬림들을 지지하기 위해 개최됐다. 우리는 EDL이 시위를 벌일 때마다 그들을 방해해 고립시킬 수 있었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으로는 [맞불 시위 조직을 통해] EDL이 떠난 이후에도 계속 활동할 강력한 지역 조직을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전투가 지구전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전장을 신중하게 골랐다. 그러자 EDL 지도부는 자기들의 힘을 과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타워햄리츠에서, 특히 화이트채플 가에 있는 런던 무슬림 센터를 향해 행진하려 했다. 

우리는 타워햄리츠에서 맞불 시위를 조직하며 두 가지를 목표로 삼았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목표는 EDL이 그 지역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시위가 엄청나게 대규모로 열려서 우리는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시위의 둘째 목표는 파시스트들에게 역사적 상징성이 특별한 런던의 동부지역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1936년 오스월드 모슬리의 검은셔츠단이 패배한 바로 그 지역이다. 타워햄리츠의 훌륭한 거리 시위, 월섬포레스트 거리에서 우리가 거둔 대규모 승리는 EDL의 패배를 결정지었다. EDL은 이 패배를 극복하지 못했다.

UAF가 지난 몇 년에 걸쳐 이룬 성과는 공동전선 전술이 옳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 트로츠키가 썼듯이 “대중운동으로서 파시즘은 반혁명적 절망의 당이다.” 우리는 긴축, 삭감, 점증하는 절망의 시대에 살고 있다. 파시즘 정당이 재건돼 다시 부상하기 좋은 시대라는 것이다. 우리 운동도 방심하지 말고 강력하게 유지돼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트로츠키의 반파시즘 투쟁

레온 트로츠키 지음, 풀무질, 286쪽, 10,000원

구입 문의 : 02-2271-2395, mail@workerssolidarity.org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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