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우익의 마녀사냥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일부 진보 인사들은 헌법의 틀 안에서만 변화를 추구하겠다며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사코 헌법 준수를 외쳤으나 결국 군사 쿠데타로 쫓겨난 1973년 칠레 아옌데 정부의 실패가 그런 태도가 왜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 준다.


1970년 칠레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한 사회당 지도자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했다. 노동조합에서 영향력이 컸던 공산당이 아옌데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노동자들도 기대가 컸다.

당시 칠레는 최악의 빈곤과 오랜 불황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극심한 위기 때문에 이미 우익 기독교민주당이 “자유민주주의 안에서의 혁명”을 얘기하며 한 차례 집권한 뒤였다. 기민당 정부가 개혁 염원을 배신하자, 칠레 노동자들은 진짜 개혁을 기대하며 아옌데를 선출한 것이었다.

집권 후 첫 1년 동안 아옌데는 미국 기업 소유의 광산과 일부 칠레 기업을 국유화하고 대지주의 땅을 농민들에게 나눠 주는 등 실질적 개혁을 제공했다. 그러나 칠레 자본가 대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극구 피했고, 따라서 아옌데의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다. 

칠레는 이내 생필품 부족과 초인플레에 직면했고, 자본가들은 자본 해외 유출 등으로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였고, 공장과 은행을 점거했다. 농민들도 토지를 점거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옌데는 자본가들의 반대에 맞서며 기층의 활동을 더한층 고무할 수도 있었다. 아옌데와 그의 민중연합 정부가 누린 광범한 지지를 고려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옌데는 그러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노동자와 농민 들의 ‘불법 행위’에 정부가 엄중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위헌 정부”로 간주하고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옌데는 이에 순응해 헌법이 보장하는 수단만 사용하려 했다. ‘토지와 사유재산을 불법적으로 점거해서는 안 된다’며 투쟁 중인 노동자와 농민을 비난했다.

한번은 중간계급의 일부인 화물차주들이 아옌데의 개혁에 반대해 영업을 거부해 경제 활동에 지장을 줬다. 칠레 노총은 이에 함께 대응하자고 아옌데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아옌데는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헌법을 어길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는 대신에 군대를 투입해 그 “사용자 파업”을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군대는 차일피일 미루며 나서지 않았다.

이처럼 우익은 헌법을 내세워 노동자와 농민의 급진적 행동을 비난했다. 아옌데는 헌법을 중립적인 것으로 여기며 사실상 이에 순응했고, 노동자와 농민을 단속했다. 그러나 헌법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원활히 운영하는 데 필요한 규칙들을 체계화해 놓은 것이다. 

게다가 계급 간 충돌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헌법을 강조하는 논리는 국가의 억압 기구를 강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특히 군부가 아옌데의 이런 약점을 노리고 힘을 키웠다. 

군부는 이미 아옌데 취임식 때 장성들의 권력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헌법 수정 조항을 수용하도록 강요했었다. 이후 아옌데는 사회적 위기가 심해지자 군 장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더 많은 국방예산을 배당하고 그들의 봉급을 올렸다. 노동자들에게는 “국익”을 위해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아옌데의 이런 타협적 행보가 거듭되자 우익은 아옌데 집권 초에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했다. 우익이 다시금 기세를 떨치자 앞서 나아가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자기 방어를 위해 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이미 우익은 많은 무기를 밀수하고 있었다.

헌법 수정 조항

그러나 아옌데는 다시 한번 헌법을 지켜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자위 차원의 무장을 반대했다: “헌법이 규정하는 세력(육군·해군·공군) 말고는 그 어떤 세력도 무장해서는 안 된다.” “파시스트의 준동에 맞설 민중의 놀라운 힘은 바로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라며 노동자들의 양보를 거듭 요구했다.

이 틈을 노리고 군부는 “불법 무장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무기 보유 여부와 무관하게 좌파 단체들을 압수수색하며 탄압했다. 물론 우익은 거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한편 공산당도, 헌법의 틀을 절대 벗어나면 안 된다는 아옌데의 노선을 한결같이 지지했다. 좌파가 급진적 행동을 호소하는 것이 우익한테 명분을 제공한다며 좌우를 싸잡아 비난하면서 그랬다: “극우는 무기를 밀수해 내전을 일으키려고 한다. … 동시에, 스스로 좌파라고 부르는 초좌파 세력도 같은 길을 걸으며 극우와 광란의 왈츠를 함께 추고 있다.” 

또한 우익 정당이 벌이는 파괴 행위를 해결하는 것도 “검찰과 안보 기관이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군부 내 전문가들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도 했다.

아옌데가 쿠데타로 전복되기 한 달 전, 수병 일부가 우익 장교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옌데와 공산당은 해군이 그들을 처벌하는 것을 방치했고, 심지어 아옌데는 그 장군들을 정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아옌데 정부가 더는 실질적 개혁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노동자들은 아옌데를 위해 싸울 자신감을 잃었다. 승리를 확신한 군부는 결국 피노체트 지휘 하에 1973년 9월 11일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와 그를 지지한 노동자와 공산당원을 무수히 살해했다. 

아옌데가 피살된 지 나흘 뒤, 1973년 9월 15일자 〈이코노미스트〉는 적반하장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쿠데타로] 칠레의 민주주의는 일시적으로 정지됐고 이는 개탄할 일이지만, 명백한 것은 헌법을 지속적으로 위반한 아옌데 박사와 그 지지자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칠레 아옌데의 사례는 헌법의 틀 안에서 변화를 추구한다는 전략이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 운동을 단속하고, 지배계급이 반격에 나설 기회를 열어 준다는 것을 보여 준다. 모호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일부 추상적인 조항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헌법은 기존의 시장과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진정한 사회 변화를 이루려면 진보가 스스로를 헌법의 틀 안에 가두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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