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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왜 실패하는가?

북한의 관료적 지령 경제의 위기를 시장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과연 시장경제는 효율적일까? 또, 시장경제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줄 수 있을까?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체제의 작동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하는 점을 먼저 살펴보지 말고 시장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면, 자본주의의 실패에 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시장 옹호자들은 시장이야말로 소비자의 욕구와 수요에 따라 알맞게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가격은 사람들의 구매욕에 따라 변한다. 따라서 경쟁하는 생산자들은 가장 수요가 큰 재화를 생산하는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렇게 생산은 언제나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정된다.

여기에서 첫 번째 문제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보내는 “가격 신호”와 실제 상품 생산 사이에는 시차(時差)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무엇을 생산할지는 상품이 생산되기 아주 오래 전에 결정된다. 소비자가 지금 구매하는 자동차는 끽해야 10년 전에 사람들이 원한 바에 맞춰 설계되고 제작됐을 것이다.

이렇게 시차(時差)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시장의 원리를 완전히 뒤엎는다.

브라질에서 한 해에 커피 수확이 안 좋았다고 치자. 그러면 세계 시장에서 커피 가격이 급등할 것이다. 전 세계의 농부는 되도록 많은 커피를 재배할 것이고 수확이 늘어난 이듬해에는 “과잉생산”이 될 것이다. 그 결과 가격은 폭락하고 많은 농민들이 농장에서 쫓겨날 것이다.

시장의 신호, 곧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가 공급과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다. 그 둘은 종종 서로 엇갈리게 움직이곤 한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식량 생산과 분배가 뒤죽박죽된다.

1970년대에 농민들은 가격을 올리려고 자기들이 생산한 식량을 이윤이 더 남는 듯한 해외 시장으로 돌렸다. 그 결과 가격이 폭락하자 부국들의 농민은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파는 것보다 그 일부를 창고에 보관하거나 버리는 편이 오히려 이윤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기근이 번지고 가격이 폭락하는데도, 1980년대 창고에는 팔릴 수 없는 식량이 쌓여 있었다. 그 사이에 낮은 시장 가격은 제3세계 나라들의 곡물 생산을 망쳐놓았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시장이 생산하지 못하는 것, 곧 생산의 무질서는 대기업들의 득세로 말미암아 더욱 심화됐다.

대다수 산업에서 생산의 준비 단계는 판매 시점보다 여러 해 앞서 시작된다. 공장이나 기계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무능

그런데 세계화 시대에 흔히 자본가들은 상호 조율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정 산업부문의 가격이 뛰면 상당수 자본가들이 그 부문에 동시 투자하게 될 것이다.

자본가들은 생산 착수에 필요한 원료·기계설비·노동자를 확보하려고 서로 앞다퉈 경쟁한다. 이것은 물가 상승을 압박하고, 더 많은 기업들이 투자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일단 생산 라인이 돌아가면 팔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된다.

과잉생산 자본주의에서 과잉생산은 피하기 어렵다. ⓒ이미진

이러한 “과잉생산”으로 경제는 위기로 향한다. 이런 위기는 자본주의에서 우연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작동에 근본적인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이 시장을 초과하는 내재적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과잉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지 못하는 것을 과잉생산한다. 체제는 옷과 밀을 “과잉생산”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살 수 없어 여전히 춥고 배고프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지적했듯이, “생활수단은 기존 인구보다 과잉으로 생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즉, 생활수단은 대다수 인구에게 충분히 그리고 인간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지나치게 적게 생산된다.” 이것을 운명처럼 만드는 게 바로 시장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경제를 대규모로 정리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수익성 있는 기업을 살리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죽이는 이런 청산은 기업들의 규모가 커지면 어려워져, 자본주의는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다.

민주적 계획경제

그런데 시장경제를 의심하는 사람들 중에도 계획경제를 불신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옛 소련권의 관료적 지령 경제가 드러낸 어마어마한 낭비와 비효율을 지적한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낭비와 비효율성도 그 못지 않다. 쓸모없는 광고로 낭비되는 돈이 연 10조 원 가까이 된다. 이명박 정부는 30조 원 가까운 예산이 드는 4대강 삽질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 수는 점점 줄어드는 동시에 몸집은 점점 비대해진다.

그러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투자를 수반하는 혁신의 동기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또, 대기업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확고한 지배력은 상품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쓰레기 만두’, ‘납꽃게’, ‘숯가루 냉면’, ‘석회 두부’ 등 식품 산업의 유해 식품 파동은 이들이 위생과 상품 질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 준다. 이것이 시장 경제 하에서 “소비자의 선택”이다.

그리고 시장의 무질서는 체제를 이루는 각 부문들의 조화를 어렵게 한다. 가령, 산업 설계와 도시 전체를 포괄하는 주택 계획 없이는 서울시의 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옛 소련과 현 북한의 경제 체제는 상명하달에 의한 계획경제다. 하지만 팻 드바인과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대중의 민주적 참여에 의한 계획경제가 가능함을 설득력 있게 논증했다. 이 논증을 실제 경험으로 실증하는 것이 가능하다. 바로 노동계급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를 관리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지령 경제의 대안은 시장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