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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제국주의 갈등과 반자본주의자의 과제

지금 동아시아에서 미국‍·‍일본과 중국이 공공연하게 무력 시위를 벌이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동아시아 불안정의 원인을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논리가 낳은 제국주의 간 경쟁으로 지적해 온 본지(本紙)의 주장이 옳았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국내 진보운동 내에서는 현재의 갈등을 제국주의 문제로 보지 않는 견해가 많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다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잉여가치 획득을 둘러싸고 개별 자본들이 벌이는 경제적 경쟁과 국민국가들의 지정학적 경쟁이 갖는 유기적 연관성을 부정한다.

그래서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가 더 깊어지면, 국가 간의 지정학적 긴장을 적어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더 나아가 상호 호혜적 경제 관계를 바탕으로, 국가들의 이성적 합의에 따라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는 게 동아시아 불안정을 해결할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레프트21

그러나 시장 경쟁이 낳는 모순이야말로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토록 전쟁과 야만이 증대한 근본 원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은 “서로 싸우는 형제들”이라고 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해 잉여가치를 획득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바로 잉여가치를 누가 더 많이 얻느냐를 두고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운다. 자본가들은 다른 국가의 경쟁자를 누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래서 국가의 군사력에 의존한다.

세계화

따라서 그동안 “세계화”의 효과를 굳게 믿어 온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자본의 이동이 더 자유로워지고 자유 시장이 확산된 한편 전쟁이 빈번히 발생하고 각국의 군비 지출도 계속 늘어났다.

심각한 경제 위기로 자본 간 경쟁이 매우 치열해지고 이것이 지정학적 갈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현상을 유지한 채 안정적이고 호혜적인 국가 관계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 지적했듯이, 설사 국가들의 연합체가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한두 열강이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주도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 연합체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실제로 박명림 연세대 교수처럼 ‘동아시아에 나토(NATO) 같은 다자주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진보운동의 일각에는 미국만을 제국주의로 보고 중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여겨, 지금의 동아시아 불안정을 제국주의 갈등으로 보지 않는 관점도 있다. 중국은 미국 제국주의와 달리 덜 침략적이며, 중국의 부상 덕분에 외교‍·‍경제적으로 세계 질서의 경쟁적 성격이 약해지고 좀 더 공정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은 명백히 노동계급을 착취해 축적을 이루는 자본주의 나라이며, 세계 자본주의의 위계 서열에서 상층부에 자리 잡고 있다. 국유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중국의 대자본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자원‍·‍시장‍·‍이윤 등을 놓고 서방 다국적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경쟁에서 자국 자본을 뒷받침하려고 중국 국가는 세계 곳곳에 군사력을 투사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애써 왔다. 이런 국가를 제국주의 국가로 보지 않는다면, 대체 미국은 어떤 근거로 제국주의로 볼 수 있을까.

중국은 국내에서 티베트, 신장 지역을 내부 식민지로 지배하며 소수민족을 억압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인도‍·‍베트남 등과 군사 충돌을 벌이는 등 중국 지배자들도 미국 지배자들 못지 않게 호전적이다. 따라서 중국 제국주의에 대해서 착각하고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커지면, 이는 한반도에 바로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사실 냉전 해체 이후 한반도에서 거듭 긴장이 일어나는 것은 한반도가 아직도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어서가 아니다. 미국이 중국 같은 잠재적 경쟁국들을 견제하려고 북한 ‘위협’론을 이용해 왔기에 한반도에서 첨예한 갈등이 터져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 핵 문제와 이에 대한 미국의 위협은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갈등이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올해 초의 한반도 긴장은 진보운동 일부가 생각한 것과 달리 실질적인 전쟁 위기는 아니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공공연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몇몇 친자본주의 전문가들의 눈에도 미국이 북한 ‘위협’론을 부풀려서 써 먹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는 듯하다. 예컨대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은 2010년 한 토론회에서 “북한 핵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본다면 미국이 그걸 해결하는 건 어렵지 않다”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이 좀 더 계속되는 게 미국의 국익이라는 판단에 토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묻고 싶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진보운동 일각에서는 한반도 긴장을 중미 갈등의 맥락 속에서 보지 않는다. 진보운동 내에는 한반도 긴장의 근본 원인이 북한과 미국의 군사 대결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는 거의 상시적인 전쟁 위기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긴장의 정도를 실제보다 과장하면서, 평화협정 체결처럼 지배자들의 합의를 강조하는 경향도 커졌다. 실제로 올해 초 한반도 긴장이 불거지자, 진보운동 내에서 ‘박근혜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일관되게 추구하면 적극 돕겠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양자 회담이나 다자 회담을 통해 지배자들 간에 모종의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는 어디까지나 불안한 평화일 수밖에 없다. 작고한 리영희 교수가 여러 차례 힘주어 말했듯이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북한과의 합의를 번번이 깨뜨려 왔다.

무엇보다 국가 간 외교와 이를 통한 화해를 가장 중시하는 관점으로는 대중을 수동화시켜, 반제국주의 운동을 아래로부터 건설하기 어렵다.

좀 더 철저한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한반도 긴장을 중미 갈등의 맥락 속에서 보는 것을 거부하는 입장도 있다. 이 입장은 한반도 긴장은 그 자체의 불안정 요인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이 사람들이 ‘핵무기 문제’ 자체를 매우 중시하는 것과 연결돼 있다. 즉, 세계에 핵무기가 등장하면서 전쟁의 성격이 인류 모두가 공멸할 “절멸주의적” 전쟁으로 바뀌었으므로 오늘날의 전쟁을 “불의의 전쟁(제국주의 전쟁)”이냐 “정의의 전쟁(혁명적 내전)”이냐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핵무기 보유가 큰 문제이지만 북한의 핵무기 보유도 “주요한 비판의 대상”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다.

이런 입장은 북한 핵무기를 옹호하는 입장보다 좀 더 나은 면이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약점이 있다. 우선, “절멸주의”를 강조하다 보면 공멸을 우려하는 모든 합리적 대중은 계급을 초월해 운동을 주도할 수 있다는 포퓰리즘적 사고로 연결되기 쉽다. 실제로 절멸주의의 관점에서 1970~80년대 ‘핵무장 해제 운동(CND)’을 주도했던 신좌파 지식인 EP 톰슨은 핵폭탄이 계급 문제와 관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관점으로는 전쟁과 제국주의의 위협을 없애는 데서 노동계급 투쟁이 갖는 핵심적 구실을 놓치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런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운동의 요구로 채택하자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 긴장의 구체적 맥락에서 볼 때 미국과 북한 모두 문제라는 양비론에 뒷문을 열어 주는 셈이 된다.

반자본주의자의 과제

오늘날 동아시아를 휘감은 지정학적 위기는 관련 기사들에서 봤듯이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이 낳은 근본적 모순의 결과다. 그리고 세계경제 위기가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체제 수호에 부심하는 〈조선일보〉 같은 언론에서도 경제와 지정학적 위기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복합 위기”가 왔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가 결코 단기간에 해결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이 10년 넘게 전 세계에 미친 파장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동아시아 불안정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에게 영향을 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위기가 단시일 내에 파국적 사태(제국주의 간 전쟁)로 곧장 나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조금 긴 호흡을 갖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단순히 제국주의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낳는 문제들을 폭로하는 것을 넘어서, 노동자들한테 제국주의의 최근 단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전망‍·‍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과제다. 전쟁과 제국주의 문제에 관한 개혁주의적‍·‍평화주의적 주장들과 예리하게 논쟁하지 않으면, 반자본주의자들은 강력한 반제국주의 운동의 토대를 건설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모두 끝장낼 수 있는 진정한 수단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복합 위기”나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위기”의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이 중요하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생산관계 속에서 갖고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할 때만 우리는 제2차세계대전과 같은 살육전이 21세기에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노동계급 속에서 근본적 변혁 대안을 주장하는 반자본주의자들의 조직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반발하며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투쟁에 나선 지금, 반자본주의자들은 바로 이 과제에서 전진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