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의 거리에서 저항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이집트에서 펼쳐지고 있는 혁명과, 국가 탄압을 멈추기 위한 투쟁에 대한 이집트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이집트를 방문한 영국인 사회주의자 주디스 오어가 전한다.


11월 19일 군부 반대 거리 시위에 이집트 전역에서 수천 명이 참가했다. 이번 시위는 2년 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근처 무함마드 마흐무드 거리에서 40여 명이 군부에 학살당한 사건[본지 69호 ‘목숨을 걸고 반혁명에 맞서는 이집트 민중’ 참고]을 기리기 위해 열렸다.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이하 RS) 회원인 하템 탈리마도 카이로에서 행진했다. “눈물이 났습니다. 시위는 매우 열정적이었고, 사람들은 자신감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7월 3일 시위로 무슬림형제단의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가 실각하자 군부가 권력을 잡았다.

시위대는 군부 정권을 향해 2011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타도할 때 외쳤던 익숙한 구호를 외쳤다. 이날 가장 큰 시위는 카이로에서 있었지만, 포트 사이드, 알렉산드리아 등지의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시위에 나섰다.

이번 시위가 2011년 1월[이집트 혁명이 시작된 때] 이후 가장 큰 시위는 아니었지만, 반혁명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투사들에게 이번 시위는 중요한 돌파구였다. 

탈리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당[RS]이 자랑스럽습니다. 최근 몇 달간 우리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이번 시위의 성공은 우리 주장이 더 많은 청중을 얻게 됐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번 시위는 노동자 파업이 약간 늘어난 것과 관련 있습니다.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이번 시위는 ‘혁명전선’이라는 연대체가 조직했다. 탈리마가 혁명전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말했다. 

“우리는 무르시의 몰락 이후 양대 세력[군부와 무슬림형제단]만이 대결하는 구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혁명전선을 만들었습니다.

“한편에는 완전히 군부를 지지하고 무슬림형제단 탄압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이 있었습니다.”

“혁명전선은 군부에 반대하지만 무르시가 대통령으로 복귀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한데 모으기 위한 방안이었습니다. RS와 함께 ‘4월 6일 청년운동’, 그리고 유명한 작가 아흐다프 수에이프 같은 많은 무소속 좌파 활동가들이 혁명전선에 참여했습니다.”

군부가 임명한 정부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방장관 압둘 파타 엘 시시는 내년 열릴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아래서 오랫동안 탄압받았던 무슬림형제단은 또다시 불법화돼 탄압받고 있다. 군부는 7월 이후 1천 명이 넘는 무슬림형제단 시위대를 학살했다.

무슬림형제단 탄압은 혁명에 대한 더 광범한 탄압의 일부다. 탈리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네 달 동안 많은 혁명 세력이 사라졌습니다.

“한때는 오직 무슬림형제단만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노동자 파업 건수가 줄었습니다. 모든 언론이 군부를 지지했고, RS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연일 받았습니다.”

집회를 허가제화하는 새 법이 11월 안으로 통과될 예정이다.[그 법은 통과됐고, 이 기사는 법 통과 전에 쓰였다.] 11월 말에는 경찰이 대학교 안으로까지 들어갈 수 있게 허용하려 해서 학생들의 분노를 샀다. 

카이로대학교 학생이자 혁명전선의 회원인 오마르 사헤르는 “들어올 테면 어디 들어와 보라. 경찰이 들어오려면 우리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하고 말했다.

국가

이집트 상황은 혁명가들이 기존 국가를 장악하고 활용해서는 새로운 사회를 결코 만들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국가의 궁극 목표는 현 지배계급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집권 후, 한때 자신을 탄압했던 국가 기구를 이용해 반대 세력을 탄압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가 무슬림형제단의 통제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들을 탄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바라크의 오랜 동맹이었던 서방 열강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려 한 무르시와 기꺼이 함께하려 했다. 서방 언론은 무르시 퇴진을 [아래로부터의 대중 항쟁의 효과라기보다는] 그저 군부 쿠데타에 의한 것으로만 묘사했다.

최근에 미국은 새 정권과 협력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는 군부가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케리는 심지어 무슬림형제단이 “타흐리르 광장의 아이들”로부터 “[혁명을] 훔쳤다”며 무르시를 끌어내린 군부를 옹호했다.

현 정권이 탄생할 수 있었던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6월 30일 반정부 연합 ‘반란’이 무르시 퇴진을 요구하자 이집트 전역에서 1천7백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무르시가 쫓겨나고 군부는 신속히 새 정부를 임명했다. 이제 국가 기관들이 무르시 퇴진 전부터 대중운동을 ‘납치’해 권력을 되찾으려 수작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옛 정권의 잔당들이 무르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이용해 권력을 되찾으려 시위에 힘을 보탰다는 것도 드러났다. 

무바라크 시절 장관 몇 명이 현 정부를 구성했고, 이집트 국가기구는 온전하게 유지됐다.

지금까지 군부는 대중의 거대한 힘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해 대중이 무르시 퇴진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하도록 했다.

RS가 성명서에서 밝혔듯이, “군부의 주된 목적은 거리를 장악한 수백만 명을 최대한 빨리 귀가시키는 것이었다. 운동이 정권의 수장[당시 대통령 무르시]을 타도하고 제거하는 선에서 멈추게 하려는 것이었다.”

탈리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무르시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것은 무르시의 우파적 정책들 때문이었습니다. 무르시가 노동계급과 빈곤층에게 어떠한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반감

무르시 정부에 대한 환멸이 어찌나 컸는지 [무르시 퇴진] 이후 일어난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에 대한 끔찍한 탄압에 거의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과 심지어 일부 좌파도 군부와 군부의 탄압을 지지했다. 무슬림형제단의 시위에 대한 공격[8월 14일 하루 만에 수백 명을 살해한 일] 직후, 자유주의자들의 연합체인 구국전선은 “오늘 우리는 이집트가 매우 자랑스럽다. … 구국전선은 경찰과 군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걸프 지역의 독재자들은 새 정부의 등장을 옛 체제의 복귀로 보아, 자금을 지원했다.

RS 회원 사메 나기브는 자유주의자들이 군부를 지지하는 데서 더 나아가 군부를 지지하는 [걸프 지역] 독재자들을 지지하기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이집트대중경향의 지도자 함딘 사바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찬양했습니다.

“사바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위대 학살을 후원한 것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집트 혁명의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영웅으로 떠받든 것입니다.”

‘반란’의 지도부는 지금 군부와 함께하고 있다. ‘반란’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무함마드 압둘 아지즈는 자신이 참여한 위원회에서 군부가 민간인을 체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을 정당화했다.

아지즈는 “오랜 시간 토론한 결과 우리는, 더는 민간인을 군사법정에 회부하지 말라는 혁명의 요구와, 군부를 겨냥한 테러리즘을 물리치고자 하는 대중의 뜻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었다”고 썼다.

군부는 혁명의 일부를 정부에 끌어들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혁명 이후 급성장한] 독립노조의 지도자 카말 아부 아이타를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군부는 조직 노동계급이 혁명에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는 점을 알고 있고, 이를 억제하고 싶어 한다. 아부 아이타는 군부의 뜻에 따라 “국가 재건”을 위해 파업에 반대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탈리마는 노동자와 빈민 수백만 명이 저임금과 치솟는 물가로 혹독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군부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점차 다가오고 있고 사람들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고급 납-크리스탈 생산업체인 크리스탈 아스포의 노동자들이 벌인 투쟁도 최근 일어난 노동자 투쟁의 한 사례다.

크리스탈 아스포 노동자들은 2주 동안 파업을 벌이며 임금을 인상하고 계약직 노동자 1만 8천 명 중 1만 1천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탈리마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내년 1월에 최저임금을 보장받기로 돼 있습니다. 그러자 다른 많은 노동자들이 우리는 왜 안 되냐며 최저임금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도입은 이집트 혁명 시작부터 주요한 요구였다.]

그러나 이집트 경제가 허약하므로 정부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탈리마는 말했다.

정부는 대중의 요구에 따라 부자들의 소득을 제한하는 임금상한제[고용주·정치인 등의 소득을 최저임금의 몇 배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자본가들이 법 적용 면제를 받아 “이집트 전체에서 이 법을 적용받는 사람은 고작 30명밖에 안 될 것”이라고 탈리마는 말했다. 

군부는 자신이 혁명의 진정한 대변자이고 이집트 대중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혁명의 과정은 복잡합니다. 승리할 때도 있겠지만 패배할 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투쟁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위한 교훈을 배우고 있습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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