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 준 23일간의 철도 파업이 막을 내렸다. 노동자들은 오랜만에 스스로의 힘과 잠재력을 느끼며 불통 우파 박근혜 정부에 맞서 그야말로 영웅적인 전투를 치렀다. 철도 파업은 박근혜의 온갖 악행에 분노하던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우리 모두의 투쟁’으로 인식됐다. ‘박근혜에 맞서 저항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던 광범한 노동자와 학생, 그리고 장애인과 여성, 성소수자 등 다양한 차별 받는 사회집단들에 희망을 안겨 준 것이다. 

철도 파업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더는 투쟁하지 않는 배부른 귀족’이라는 비난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례다. 이번 파업 때는 그 흔한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 비난도 일지 않았다. 오히려 철도 노동자들이 강력한 힘을 보여 주자, 박근혜에 대한 광범한 불만이 파업에 대한 지지와 연대로 결집됐다. 

지배계급의 정치조직인 정부에 맞서 철도 파업은 노동계급 전체의 응원으로 초기부터 ‘계급 대리전’이 됐다.

그러자, 정부와 지배자들은 전선의 확대를 부담스러워하며 다른 부문에서 공격을 연기하거나 일부 양보하기도 했다.

정부·여당은 12월 국회에서 가스 민영화 법안을 통과시키려던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고, 투쟁이 확대되고 전진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도 일부 성과를 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이 큰 성과를 거둔 것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능했다. 

이처럼, 파업 덕분에 철도 노동자들은 ‘인민의 호민관’ 구실을 했다.

이번 철도노조·민주노총 투쟁으로 대중의 의식에도 변화가 있다. 1월 1일 〈문화일보〉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공부문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1.7 퍼센트나 됐고, 특히 20대에선 그 수치가 80.6 퍼센트나 됐다!

이번에 불붙은 철도 민영화 반대 목소리는 의료 민영화 반대로도 옮겨가고 있다. 고무적이게도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철도에 이어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의 한 해를 만들자”며 1백만 서명운동과 총력 투쟁 등을 결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1년 만에 철도 파업이라는 가장 강력한 도전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야 했고 상처를 입었다. 박근혜 지지율은 30퍼센트대까지 떨어졌다! 특히 중도층 이탈이 두드러지고, 젊은층 지지율도 크게 하락했다. 

박근혜 정부는 철도 파업에 그토록 화력을 쏟아붓고도,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지 못했다. 철도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자신감과 조직력을 얻었고, 지금도 현장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번 파업에서 철도 노동자들이 보여 준 투지와 잠재력에 비춰 보면 아쉽게도, 민영화의 시발점이라는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막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마음 한편에 다소 불안감을 지니고 복귀해야 했다. 

그러나 철도 민영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자회사 설립은 결국 철도 민영화’라는 철도공사 내부 문서까지 폭로됐다. 그러나 민영화가 완전히 다 진행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싸움이 남아 있다.

이처럼, 비록 정부의 철도 민영화 정지 작업을 막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어도 훨씬 더 크게 봤을 때는 이번 파업은 큰 성과와 자양분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의 공세와 그 배경

이렇게 이번 파업의 파장은 상당했다. 언론들이 앞다퉈 대서특필했던 북한 정권의 장성택 처형 사건도 하루 만에 신문 1면에서 밀려났다. 박근혜가 즐겨 써먹는 매카시즘 카드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그럴수록 박근혜 정부는 무리수를 두며 더욱 강경하게 대처했다. 철도 파업이 우리 편에게 이렇게 큰 기대를 받은 만큼 박근혜 정부는 이 파업을 기어코 저지하고 분쇄하려 했다.

8천여 명 직위해제, 35명 체포영장 발부, 5백여 명 중징계 방침, 1백16억 원대의 가압류와 1백50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등 정부와 사측의 탄압 공세는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신속했다. 정부는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 본부 침탈이라는 만행까지 감행했다. 정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엄정 대처하겠다”, “협상은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노동자들의 저항을 꺾고 민영화의 발판을 닦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게 사활적이었다. 정부는 철도 민영화를 관철해 “강도 높은 공기업 개혁의 시금석”으로 삼고자 했다. 심화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 공공부문의 부채 감축을 위한 대대적인 개혁, 민영화를 시급히 추진해 나가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박근혜는 임금체계 개편, 시간제 일자리 등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정책을 확대해 노동계급 고통 전가로 경제 위기에 대처하려 한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점증하는 동아시아 제국주의 긴장 고조 상황에서 강경 우익 정권답게 안보 위기를 부채질하며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에 더 강경한 탄압을 가하는 통치 방향을 확고히 하려 한다. 

따라서 정부는 애초부터 자신의 공약인 “국민과의 합의”에 따를 생각이 없었다. 정부가 이렇게 강경하고 노동자들의 투쟁도 굳건한 상황에서 모종의 타협이나 야당 중재가 잘 먹힐 리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노조 지도부가 그토록 중재 역할을 해 주기 바랐던 민주당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민주당이 제출한 철도사업법 개정안도 비록 철도공사나 수서발 KTX의 민간 매각을 금지하기는 해도 수서발 KTX를 포함해 철도공사 분할 자체는 막을 수 없는 내용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이 콧방귀도 뀌지 않아 이 개정안은 부각도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사무총장 박기춘은 “파업을 위한 싸움은 안 된다”며 도리어 노조 설득에나 나섰다. 

이런 일들을 두고 민주당이 스스로 “민주당의 중재와 국회 합의를 바탕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자신의 브로커 구실을 (헛되이) 자화자찬하는 것은 꼴사납다. 

“이것이 정치”라는 〈경향신문〉이나, 파국을 막았다며 별로 얻은 것도 없는 합의를 반기기는 통합진보당 논평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의 태세와 세력관계

철도 노동자들은 민영화 문제가 매우 절박한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 파업에서 밀리면 어떤 후과를 감당해야 할지를, 즉 향후 자신들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분노도 분노지만, 투쟁이 실제로 일어나는 데엔 자신감이 중요하다. 특히, 작은 싸움들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난해 상반기 동안에 기관사 1인 승무 확대, 열차승무 순환 전보, 전기직 외주화 등에 맞선 투쟁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철도 파업은 형식상으로는 개별 기업에서의 투쟁이었지만, 이미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맞선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격을 띠었고, “제발 철도노조가 박근혜를 막아 달라”는 뜨거운 응원을 받았을 만큼 전체 노동계급의 분노를 대변한 ‘계급 대리전’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도 정치적이었다.

다행히도,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무렵에 이미 철도 민영화에 한정해서 말하면 사회적 세력관계는 노동계급 편에 유리했다. 특히 여론이 상당히 좋았다. 부분적으로 이는 거의 1년 반 가까이 전국 곳곳에서 철도노조와 지역·권역 대책위들이 쌓아 온 성과이기도 했다. 

철도노조가 단호하게 파업에 돌입하면서부터는 민영화 반대와 파업 지지 여론은 더 뜨거워졌다. 이 투쟁은 단 이틀 만에 전국적인 초점으로 떠올랐다. 

파업 대오는 점점 더 늘어났고, 2009년엔 파업에 동참하지 못한 일부 지부들도 기꺼이 파업 대오에 함께했다. 필공 조합원들도 집회·홍보전 등에 참가하며 자발적으로 투쟁 기금을 걷어 파업하는 동료 조합원들을 지원했다.

무엇보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대체 수송을 거부하며 노동자 연대의 모범을 보였다. 해외 철도 노동자들의 연대와 시위도 계속 이어졌다.

파업 지속에도 정부가 물러서지 않을 것이 분명하자 투쟁 수위를 전면 파업으로 높여 투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심지어 필공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위원장이 지침을 내리면 파업에 동참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박근혜 정부는 무리수를 두며 더욱 강경하게 대처했다. 22일,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 본부 침탈은 그 절정이었다 

그러나 이는 당연히 더 큰 분노와 반발을 샀고, 이제 투쟁의 판돈은 더 커졌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본부 침탈을 규탄하며 “전체 노동자와 민주노조에 대한 전쟁 선포”라고 규정하고는 “12월 28일 총파업”(사실상 파업이 아니라 항의 집회)을 선언했다.

민주노총 침탈은 많은 노동자들을 격분케 했다. 침탈 당일과 다음날까지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기층의 분위기 때문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1월 9일 파업 등의 추가 계획도 내놓아야 했고, 금속노조도 9일 2시간 파업 계획을 제출했다. 물론 이는 너무 늦고 부족한 것이었지만, 적어도 기층의 압력이 상당하다는 점은 보여 줬다. 만약 철도노조 지도부가 민주노총에게 파업 시기를 당겨 달라고 공개적으로 호소하고 나섰다면, 민주노총 지도부들은 더욱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노총도 민주노총 침탈을 규탄하며 노사정위 불참과 민주노총과의 연대 투쟁을 선언했다. 

12월 28일 노동자 수만 명이 집결한 데서 보듯, 민주노총이 투쟁에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고 투쟁은 더한층 정치적이 돼 갔다. 계급 간 세력관계는 우리 쪽에 불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투쟁은 여기서 더 전진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조합원들조차 ‘나올 게 없다’고 보는 국회 국토위 소위를 손에 쥐고는 일방적으로 복귀를 선언했다. 최소한의 ‘징계 최소화’ 약속조차 손에 쥐지 못한 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투쟁은 승리했다고 자기 만족을 한다면, 이는 그저 여야 간 교섭을 기대하는 노조 지도부의 협상 지상주의적 평가일 뿐이다. 

투사들의 구실과 과제

이렇게 노조 지도자들이 자기 제한적이 되려 할 때, 이에 비판과 압력을 가하고 독립적으로 투쟁을 건설할 다른 가능성은 과연 없었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 봐야 한다. 

분명 가능성은 있었다. 적잖은 지부장들과 활동가들은 이미 파업 돌입 직전 확대쟁대위에서 필공 파업으로 투쟁 수위를 낮추려는 집행부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옳게도 “박근혜에 맞서 승리하려면 전면 파업 전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쉽게도 이런 주장이 수용되지 않은 채 필공 파업에 돌입한 뒤에도, 가능성은 있었다. 

철도 파업이 초기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일부 지부장과 투사 들은 다시 한 번 전면 파업의 기회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한 지부장은 서울지방본부 확대쟁대위에서 전면 파업을 호소하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다소 늦은 시도였지만 수서발 KTX 면허 발부 이후에 몇몇 차량지부들 사이에서 전면 파업을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이런 시도들은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물론 각 지부들이 산개해 파업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것이 만만찮은 과제였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런 필요성을 제기한 투사들이 전부터 네트워크를 형성해 전면 파업 촉구를 꾸준히 그리고 공개적으로 추진해 나갔더라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국면 때마다 전면 파업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여러 지부의 필공 노동자들 사이에서 파업에 동참할 수 있다는 목소리들이 나온 점도 주목할 만했다. 

일부 지부들에서는 심지어 대체인력을 저지하려는 과감한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구로차량지부에서 시작된 이 항의는 몇몇 차량 지부들로 확대됐다. 이런 투쟁은 필공 노동자들의 동조 속에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고, 이들 다수를 연대 투쟁 대열로 끌어들이는 계기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전면 파업으로 이끄는 좋은 통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투사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결코 파업 대열에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 아니라, 진지하게 투쟁 방법을 고민하는 노동자들에게 대안을 내놓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징계 반대 등 2라운드 투쟁을 돌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투사들의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 특히, 다시 정면으로 정부에 맞서 강력한 투쟁을 벌여야 할 때 기회를 움켜 잡기 위해 이는 미뤄둬서는 안 되는 과제일 것이다.

앞으로 남은 라운드들에서는 정치도 매우 중요하다. 이때 정치는 국회 등 제도권에서의 정당 간 게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직장에서, 노동현장에서 노동자 연대를 이룰 수 있는 정치적 주장과 활동을 펴는 것이다. 특히, 각개격파를 노린 이간질에 맞서야 한다.

한편, 투사들의 네트워크가 구축되려면 십중팔구 사회주의자들의 응집력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이 노조 내에 실질적으로 존재할 때, 노동조합의 태생적 한계인 부문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고 일관되게 현장 노동자들의 전투성에 기반해 투쟁을 이끌 수 있다. 

또, 이런 조직이 있어야만 노조 지도부가 싸우려 할 때 앞장서 투쟁을 지지하고, 노조 지도부가 우유부단하고 자기 제한적 방법으로 투쟁을 유야무야시킬 때 노동자들이 벽에 부딪혀 좌절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투쟁할 수 있도록 투사들의 네트워크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갈 수도 있었던 투쟁

철도 파업은 상당한 파장을 낳고 정부를 위협했지만, 물리적 파업 효과라는 면에선 부족했다. 수도권 전동차와 KTX는 운행에 큰 차질을 빚지 않았던 것만 봐도 필공 파업(게다가 대체인력이 허용되는)의 파괴력은 미약했다. 

철도노조 집행부가 전면 파업으로 수위를 높여 정부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려 했다면 투쟁을 좀 더 밀고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노조 지도부가 명령했다면 노동자들은 더 강력하게 싸울 태세가 돼 있었다. 사측의 집중 회유와 압박을 받는 수도권 전동차와 서울발 KTX 기관사들의 파업 대열도 굳건했다. 

특히, 투쟁이 확대돼 계급 대리전이 되고, 정부가 무리수를 두면서 더욱 정치화하고, 끝내 면허가 발부되는 등의 사태 전개를 돌이켜 봤을 때, 투쟁을 더 강력하게 전진시킬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노동자들은 산개 전술 때문에 흩어져 있어, 중대한 고비마다 투쟁의 방향이나 전술에 대해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던 점도 아쉬운 일이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정부가 완강할수록 담대하게 맞서기보다 어떻게든 대화의 창구를 여는 데 힘을 쏟았다. 12월 28일 10만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직후에, 철도노조 지도부가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요구하지 말자”는 민주당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매우 안타깝다. 사태가 ‘대정부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듯하다. 

이런 점에서 진보당이나 정의당이 철도 파업에 열의 있게 연대했음에도 강력한 투쟁 건설보다 사회적 대화나 국회를 통한 해결을 더 강조하며 민주당과 변별력을 보여 주지 못한 것은 그들 정치의 개혁주의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철도노조 지도자들이 보여 준 자기제한적 전술 구사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에도 해당된다. 박근혜 정부가 민주노총 본부를 침탈해 그야말로 ‘전쟁’을 선포했는데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그에 걸맞은 투쟁 수위로 대응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그저 대규모 항의 집회를 호소하고 1월 9일로 멀찌감치 파업을 잡아 파상공세에 직면한 철도 노동자들이 ‘열흘 동안 홀로 싸우며 버텨야 하냐’며 초조하게 만들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이 파업을 통한 (진정한) 힘의 과시가 아니라 ‘시민의 힘과 1백만 시위’를 강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박근혜에게 결정타를 날려야 하는 대결에서 주저한 것이다.

연대의 확산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 철회도 돌아볼 만하다. 서울지하철노조 지도부가 예고했던 파업을 철회해, 철도 노동자들에 연대할 기회를 저버린 것은 크게 아쉬운 일이었다. 이때 서울지하철노조가 과감하게 파업에 들어갔다면 결정적 파급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아직 기층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지도부를 뛰어넘어 투쟁을 밀고 나갈 만큼은 올라가지 않았지만, 투쟁을 명령하면 이에 응답해 투쟁에 나설 만큼의 투지는 있었다.

일각의 변호처럼, “노동자 0.1퍼센트를 앞세워 박근혜를 끌어내게야 하겠는가”라며 민주노총에게 총파업을 선언하라고 말하는 것이 모험주의적 선동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소심한 태도다. 박근혜 퇴진 요구를 내걸고 ‘정치 총파업’을 벌이지 않아도, 광범한 노동자들이 자신들 고유의 요구를 각각 내놓고 시기를 맞춰 전국적으로 파업을 벌이는 것도 정치적인 파업이다. 

맺으며

이번 철도 파업이 일으킨 정치적 파장은 그야말로 심대했다. 철도 파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자신감과 충격을 줬다. 

이것은 올해 더 커다란 투쟁이 벌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벌써부터 “최근 10년 새 가장 격렬한 춘투”를 예측하는 보도들도 나오고 있다.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보건의료노조의 투쟁,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이 낳을 갈등, 통상임금 조정에 따른 임단협 투쟁 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노동자 운동은 불충분하지만 조금씩 꿈틀거리며 자신감을 회복해 왔다. 그간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며 성과를 내 온 것은 하나의 징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투쟁, 현대차 노조의 임금 인상 투쟁과 울산 공장 노동자들의 특근 거부 투쟁 등도 가능성을 보여 줬다. 특히 전교조 노동자들은 총투표에서 당당히 정부의 규약시정 명령을 거부해 전체 운동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구실을 했다. 

요컨대, 박근혜 당선으로 좌절을 겪고 잠시 움츠렸던 노동자 운동은 자신감을 회복하며 가능성을 보여 줬다.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은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상징이다. 

철도 노동자들이 말하듯, 2라운드 투쟁을 준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올해 물류 분리에서 시작해 분할 민영화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대규모 징계와 전환 배치, 외주화 등 만만치 않은 투쟁 과제들도 눈앞에 놓여 있다. 이번 파업은 앞으로의 투쟁에서 좋은 발판 구실을 할 것이다.

새로 나온 소책자

22일간의 철도 파업, 그 성과와 교훈

노동자연대다함께 | 30쪽 | 500원

구입 문의 : mail@workerssolidarity.org | 02-2271-2395, 010-8908-7912

연대의 밤

철도 파업 23일, 그리고 계속되는 투쟁

일시 : 1월 21일 (화) 오후 7시 30분

장소 :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2층

주최 : 노동자연대다함께

문의 : 02-2271-2395, 010-8908-7912, 이메일 : mail@workerssolidarity.org


1부 토론회 | 저녁 7시 30분 ~ 9시

23일간의 철도 파업과 2라운드 투쟁

연사 : 하현아 (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장), 이정원 (노동자연대다함께 운영위원)

참가비 : 5천 원 (장소대여료로 사용됩니다)


2부 연대가 어우러지는 밤 | 9시 ~11시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경험과 현장투쟁 소식 등 생생한 발언을 듣고, 연대한 노동자·학생들의 경험도 나누는 자리, 흥겨운 음악과 음식도 준비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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