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자가 2013년 9월경, 이듬해 정세를 전망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대침체”)가 즉각 광범한 대중 반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2011년은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반란이 터져나왔는데 그 규모와 국제적 파장은 흡사 1848년, 1917~23년, 1968년의 국제적 반란과 혁명을 재현하는 듯했다. 그리스에서는 총파업이 반복됐고,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사람들’ 운동이 광장을 점거했고, [미국의]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 무엇보다도 아랍 혁명이 일어나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독재자를 차례로 무너뜨렸고 이후 리비아·시리아·바레인·예멘으로 확산됐다.

영국도 이런 분위기와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 2010년에 대규모 학생 반란이 일어났고 뒤이어 노동조합이 이끄는 대규모 시위와 반란이 여러 도시들에서 벌어졌고, [2011년] 11월에는 공공부문 노동자 2백50만 명이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2년 남짓 지난 지금, 2011년의 반란이 고무한 희망은 마치 그릇된 것이었던 양 비쳐진다. 유로존과 영국에서 긴축 정책이 계속되고, 중동에서는 반혁명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비관론”이 좌파 일부에서 생겨났고 SWP(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내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등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적으로 급진화와 저항이 후퇴기에 접어들었다고 결론짓는 것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위기와 저항의 관계는 단순하거나 직접적이지 않다. 우리가 목도하는 정치 상황은 각종 모순과 불안정, 급격한 전환이 특징이다. 우리 편이 줄곧 잇달아 승리만 거두거나, 반대로 끝없이 패배만 겪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1928년에 트로츠키는 제1차세계대전 개전 이전 시기와 종전 무렵 이후 시기를 다음과 같이 대조했다. “(개전 전에는) 모순이 유기적으로 축적되고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유럽 내 계급 투쟁은 대부분 합법의 틀을 넘어서지 않았다.”

반면에 종전 무렵 이후의 시기는 “폭발력이 그 특징”이었고, “정치의 밀물과 썰물이 순식간에 바뀌었”으며 “돌발적인 계급투쟁이 끊이지 않았고”, “정치 상황이 좌와 우 사이를 미친 듯이 왔다갔다했다.”

오늘날 트로츠키가 지목한 둘째 시기의 특징들을 일부 찾을 수 있다. 당시 트로츠키가 이끌어낸 핵심 결론은 그처럼 빠르게 정세와 국면이 바뀌는 상황일수록 정치적 리더십과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의 구실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 더딘 진전

정치적 휘발성이 커지고, 투쟁과 급진화를 일으킬 잠재적 요인들이 끊임없이 새로 나타나는 핵심 이유는 바로 세계경제가 뿌리 깊게 위기 상태인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비록 선진국 경제가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성장한다는 징후 때문에 최근 경제 회복에 대한 논의가 많아졌지만 말이다. 심지어 미국 중앙은행(연준)은 매달 8백50억 달러어치의 채권 구입 프로그램[양적완화]을 서서히 거둘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이후 2013년 말 실제로 양적완화를 감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일본, 유로존에서 경제가 지속적으로 회복할 것이라는 말들은 틀린 것이다.

비록 미국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과거 어떤 경기 후퇴 때보다도 느리게 회복하고 있다. 8월에 실업률이 7.3퍼센트로 살짝 떨어졌는데 핵심적으로 30만 명 이상이 구직을 포기하고 노동시장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경제정책연구소(EPI)는 2008년 대침체 때문에 노동인구에서 이탈했거나 노동인구로 유입되지 못한 “실종 노동자”가 3백8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유로존은 2011년 후반에 시작된 긴 경기 후퇴 시기를 18개월 동안 겪은 후 2013년 중반에 빠져나왔다. 그러나 회복은 여전히 불균등하고 언제든 뒤집어지기 쉬운 상태다. 단적으로 7월에 유로존 제조업 생산량이 줄었고, 남유럽 상황은 여전히 깊은 위기를 겪고 있는데,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깊은 침체 상황이다.

그리스는 5년째 경기 후퇴를 겪고 있는데 GDP가 2008년보다 20퍼센트 이상 줄었고, 실업률은 28퍼센트에 달한다.(충격적이게도 15~24세 인구 3분의 2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의 파괴적인 “내적 평가절하”[통화가치가 아니라 노동력 비용을 낮춰서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정책]로 공공부문 부채를 줄인 것도 아니다. 공공부문 부채는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가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하기 전보다 더 커졌다.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그리스에 3차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그 대가로 더 많은 긴축을 요구했다. 스페인에서는 전체 인구 4천7백만 명 중에 6백만 명이 실업 상태다. 유로존에서 셋째로 경제 규모가 큰 이탈리아는 비록 경제 수축 속도는 줄었지만 2년 넘게 여전히 경기 후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공공부문 부채 수준도 유로존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지난해 유럽중앙은행장 마리오 드라기가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나서면서[무제한으로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함] 돈을 빌리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던 남유럽 정부들은 더 싼 비용으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유럽 은행들은 여전히 만성적으로 취약하고, 막대한 악성 부채에 눌려 있다. 경제학자 배리 아이켄그린이 말했듯 “유로존이 붕괴하는 것을 간신히 막는 조처를 취하는 것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세계 2위 경제국인 중국은 미국, 유로존, 일본이 꿈조차 꾸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적 위기 와중에 결정적인 성장 엔진 구실을 해 왔지만, 지금 그 엔진은 서서히 식고 있다. 중국 국가는 위기에 대처하려고 2008~09년에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썼고 그 결과 사회 기반 시설, 부동산, 공장에 투자 붐이 일었다.

덕분에 성장세를 계속 뒷받침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자산 거품 형태로 심각한 문제를 누적해 왔다. 조선소부터 태양광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산업에서 막대한 과잉투자가 발생했고, 악성 부채가 늘어 금융 시스템을 압박한다. 

인도, 인도네시아, 남한, 브라질, 터키,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지난 몇 달 동안 환율과 주식 시장에서 혼란이 벌어졌다. 이 나라들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서구 중앙 은행들이 만들어 낸 신용(상당 부분 신흥 시장에 투기 거품으로 흘러 들어간)에 의존해 경제를 성장시켜 왔기 때문이다. IMF는 인도나 브라질 같은 나라가, 2007~08년 서구를 강타한 “신용 경색”[은행이 기업이나 다른 은행에 돈을 빌려주기를 거부하는 상황]과 비슷한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나타냈다.

마르크스는 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본질로 내재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 때문에 경제 침체가 영원히 계속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자본주의는 위기 해결 수단도 갖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은 위기 자체 때문에 실업률이 치솟고, 임금과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취약하고 수익성 낮은 자본들이 파산하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일들이 진행됐는데, 특히 긴축과 임금 압박으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수익성 낮은] 자본이 파산한 규모가, 체제의 중심부에서 건실한 회복과 안정적 축적 재개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그 때문에 각종 낮은 수익성과 유동성, 심지어 사실상 파산 상태인데도 파산하지 않는 “좀비” 은행과 회사에 대한 말들이 많은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세계경제가 “느리게 기어가는” 시기를 맞이했다고 묘사하면서 1932~37년 대불황이나 1880년대 장기 불황 기간 중 첨예한 공황과 공황 사이의 저성장 시기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노동계급 생활조건과 각종 “사회적 임금”[복지 등 공공부문에서 받는 혜택]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고, 이 때문에 과거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사회·정치 구조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긴축과, 그에 맞선 폭발적 대응 둘 다 보게 될 것이다.

휘발성, 반란 그리고 정치

갑자기 대중 반란과 격동이 분출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 가지 최근 사례가 두드러진다. 터키에서는 이스탄불 게지 공원 개발을 둘러싼 초여름의 투쟁이 에르도안 총리의 이슬람주의 정부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변했다. 77개 도시에서 1백만 명 정도가 거리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거의 동시에 브라질에서도 버스와 기차 요금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악한 대중교통과 갈수록 심화하는 불평등에 항의하는 대중 반란으로 나아갔다. 터키와 브라질은 둘 다 지난 십 년간 경제 성장으로 성공한 사례로 꼽히던 나라들이었고, 경제 성장 덕분에 사회가 비교적 평온했다. 그런데 그처럼 대규모로 시위가 터져나온 것은, 외관상 차분하고 정치적으로 안정됐어도 기저에는 쓰라린 감정이 깊게 누적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브라질과 터키에서 일어난 일들은 대중 반란이 정치, 지도, 조직의 문제를 가볍게 제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줬다. 두 곳 모두 다양한 세력들(터키에서 [1990년대까지 장기 집권한] 케말 민족주의, 브라질에서는 이전까지 사기저하됐던 우파 등)이 운동에 개입해 운동을 자신들 뜻대로 이끌려 했다. 〈가디언〉의 시무스 밀르는 이를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지배 엘리트들이 민주주의를 속 빈 강정으로 만들고 누구를 선출하든 결과는 같을 것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심어놓은 상황 속에서, 정치적으로 미숙한 운동이 번창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중대한 힘을 갖고 있어서 분위기를 바꾸고, 정책을 폐기시키고, 정부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조직이나 뚜렷한 정치 강령 없이는 활활 타오른 뒤 사그라들거나, 더 강력하고 뿌리내린 세력에 납치 또는 전용될 위험에 취약하다.”

정치 문제는 아랍 혁명에서도 날카롭게 전면에 등장했는데, 특히 이집트에서 그렇다. 군부가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을 대규모로 살해한 것은 반혁명이 성큼 전진한 위험성을 보여 준다.

반혁명 세력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개혁주의 정치가 이중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집권한 무슬림형제단이 혁명의 염원을 현실화하지 못한 것이다. 그 대신 무슬림형제단은 신자유주의 정책, 권위주의적 대응, 군부 특권 수호에 나섰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결집한 것을 군부가 악용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구국전선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좌파 야권의 구실이 중요했다. 이들은 군부의 행동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구실을 했다. 

아직 혁명이 끝난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 힘을 맛봤고, 혁명이 요구한 “빵, 자유, 사회 정의”는 하나도 성취되지 않았고 쉽사리 성취될 것도 아니다. 특히, 노동자 운동이 지난 18개월 동안 크게 전진했고, 이집트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의 쟁의 행위에 참가했다. 장군들이 정부를 장악한 뒤에 쟁의 행위 수는 급감했지만 이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실제로 11~12월에 다시 급증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을 향한 군부 탄압과 갈수록 파업 노동자와 혁명가를 향한 탄압이 거세지는 것은 실질적인 위험이다. 이는 혁명이 굴곡 없이 전진하지 않는다는 것과, 후퇴와 좌절을 겪지 않으려면 중대한 정치적 도전을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유럽의 양극화

유럽 정치는 계속 양극화돼 왔다. 한편으로는 급진 좌파 세력이 성장했는데 그리스의 시리자뿐 아니라 프랑스의 좌파전선이 그랬고, 네덜란드 사회당과 덴마크의 적녹동맹도 지지 기반이 넓어졌다. 동시에 극우도 성장했는데 이들은 프랑스 국민전선(FN)처럼 ‘유럽식 파시즘’의 탈을 쓰기도 하고, 그리스 황금새벽당처럼 노골적으로 나치를 표방하기도 한다.[유럽식 파시즘은 의회 선거를 위한 점잔 빼기에 주력하는 반면 노골적 나치들은 공포감 주는 거리 행진도 똑같이 중시한다.]

유럽 노동자 투쟁은 24시간 대중 파업(종종 48시간)이 간간이 벌어지는 모양새를 유지하는 가운데 일부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갈수록 두드러진다. 예컨대 포르투갈의 양대 주요 노총은 6월 말 24시간 총파업을 벌였고, 같은 달 스페인에서는 대규모 교육 노동자 파업이 있었고, 그리스는 48시간 총파업을 9월 중순에 진행할 예정이다.[이 총파업은 반파시즘 활동가 살해 항의 시위와 결합돼 황금새벽당을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빠뜨렸다.] 덴마크에서도 지난 봄 교사들이 대규모로 나서 학교를 폐쇄시켰다. 

비록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아직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투쟁의 시대”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노조 지도자들이 파업을 선언해야 한다는 압박을 [아래로부터] 꾸준히 받는 가운데, 지도부의 공식적인 투쟁 선언을 현장조합원들의 능동성과 결합시키면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높이고 현장조합원 조직을 재건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그리스에서 이 과정이 가장 진척됐다.


※ [ ] 안의 말은 옮긴이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첨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