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라운드 투쟁으로 철도 민영화 반드시 막아냅시다”
〈노동자 연대〉 구독
이 글은 1월 21일 ‘노동자연대다함께’가 주최한 ‘연대의 밤 - 철도 파업 23일, 그리고 계속되는 투쟁’ 행사에서 하현아 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장이 연설한 내용이다. 이 행사는 철도 노동자 80명을 포함해 학생, 노동자, 청년들이 참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앞으로의 투쟁과 연대를 다짐하는 자리였다.
아시겠지만 용산경찰서에 지금도 우리 지도부 동지 다섯 분이 구속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엄길용 서울본부장님은 저희 서울차량지부 조합원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지만, 우리 지도부가 아직도 철창 안에 계시기 때문에 대단히 무거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전국에 철도노조 지부가 132개인데요, 저는 그 지부들 중 그냥 하나의 지부장일 뿐입니다. 사회자께서 저희 지부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는데, 그것은 제가 이룬 역사는 아닙니다. 물론 당연히 그렇게 투쟁해 왔던 역사가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리 선배들, 그리고 많은 서울차량지부의 기층 조합원 동지들이 이뤄 낸 성과기 때문에 제가 온전히 그 소개를 받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오늘 또 이런 평가를 제가 감히 한다는 것도 사실은 굉장히 많이 떨리고 부끄럽습니다.
아직 저희는 현장의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조합원 동지들 모두 다 이 파업 투쟁이 잠시 중단되었지만 철도 민영화 저지 싸움이 올 한 해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8일 집회를 조직하면서, 다시 현장 순회를 죽 하면서 조합원 동지들과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대단히 힘들고 피곤할 것이라고요. 파업이 끝나고 이제 12월, 1월 임금명세표를 받는데, 다들 참담한 심정입니다. 정말 반 토막 난 급여, 그래서 지부에서는 뭐 급한 대로 그동안 마련해 두었던 구호 기금도 풀고 있고, 또 심지어 대출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업의 손실을 함께 나누는 임금형평성 기금 마련 등의 작업들도 하고 있지만, 막상 임금명세표를 본 봉급 생활자들이, 대단히 힘들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여기 계신 참석하신 철도 조합원분들 다 아실 것입니다.
아직 파업이 진행중이어서 오늘 이 평가가 좀 우려스럽기도 하고, 맞지 않다는 생각도 중간에 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또 다음 싸움, 제2라운드 싸움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동지들의 소중한 의견도 듣고, 또 제가 23일 동안 조합원들이 생물 같이 역동적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 그리고 저 자신도 대단히 나약했던 지부장에서 하루하루 지나면서 파업의 현장 지도부로서 성장해 나간 과정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리는 것도 예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그동안 1백만 서명운동부터 지역대책위 동지들이 굉장히 정력적으로 활동을 해 주셨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어쨌든 제가 말씀드리려는 결론은 ‘철도 민영화 저지를 위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과정을 설명을 드리면, 지난해 5월 이전부터 이미 철도 민영화에 맞선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논란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파업 시기를 놓고도 그랬는데요, 철도산업위원회가 6월에 개최될 거라는 예상이 있었고, 그래서 현장에서 철도산업위원회 개최에 맞춰서 투쟁을 준비하고 파업을 실질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현장 조합원들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조합이 판단하기에는, 어쨌든 산업위원회 개최를 어떻게든 연기시키거나, 유실시키거나, 막아보자는 기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습적으로 6월에 산업위원회가 통과됐고 그걸 막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여름을 경과하면서 민영화 공세에 맞서 조합원들과 함께 계속 대국민 선전전 등 활동을 펼치고, 조합원 간담회, 마음의 준비 — 파업을 향한 전진이죠, 뭐 — 같은 준비 과정들을 겪으면서, 수서 KTX 법인이 설립되면 그 법인 설립 시기에 맞춰서
12월 9일이 임박해서, 철도공사와 국토부가 대단히 긴박하게 민영화를 추진했습니다. 이사회 날짜가 다가왔다는 게 전달이 됐고요, 11월 26일로 기억하는데
그런데 저는 그날의 그 토론이 대단히 유의미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장에서 전면파업을 준비해 왔던 기관차, 차량, 열차승무 지부 같은 집단사업장의 경우에는 11월 26일
그래서 실제 파업이 돌입했던 12월 9일, 집단사업장의 경우에는 원래도 주력 대오였고 완강하게 파업에 돌입했는데, 분산사업장들 같은 경우에는 파업에 많이 불참하거나 들어오지 못했고, 명단 작성에서부터 실패해서 파업에 어려움을 겪었던 지부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일들도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2월 9일 파업에 돌입합니다. 그 이유는 12월 10일이
어쨌든 12월 9일 파업에 돌입하는 것이 일단 1차적인 목표였습니다. 그 즈음 기관차승무지부에서 나왔던 문건이 있는데요, 어쨌든 필공파업으로 결정된 이후에는 완강하고 지속적으로 파업을 유지하고 1차의 분기점과 목표점, 파업의 전망을 조합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기조의 문서였습니다.
저도 그 문서를 받아서 조합원들한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첫째는 2009년보다
서울차량지부의 경우에는 연말이 되면 해돋이 열차가 있어요. 관광객들이 이 열차를 타고 나가서 새해맞이를 합니다. 두 번째
즉, 12월 19일을 넘겨서 더 지속적으로 완강하게 가면 연말까지도 파업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것이 조합원들과 저 개인적인 약속이고, 지부의 방침이었죠.
다만 이 와중에 12월 10일 공사 이사회
이사회가 끝나고 나서부터 국토부나 공사는 이 파업을 조기에 종료시키기 위해서는 파업 3일차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아시겠지만 3일차부터 직위해제가 시작되죠. 그런데 2009년에도 저희가 직위해제를 받았고, 2006년에도 직위해제를 받았는데, 이 문제에서는 대법원 판례 등이 있기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오히려 조합원들이 ‘야, 이거 너무 부당하다’, ‘우리 동료들이 직위해제됐는데 필수 조합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더 하게 되면서, 직위해제가 역효과를 낳게 됩니다. 파업 대오가 이미 직위해제되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된 이후, 국민 여론이 그때부터 공사를 비난하기 시작하고, 여론이 열렬하게 폭발
여기 앞에 청량리 전기지부 홍영희 전 지부장 동지 와 계시는데, 본인 스스로 ‘추노꾼’이라고 하셨습니다. 파업 대오는 대오대로 유지되고, 파업에 돌입하지 못한 비필수 조합원들을
그렇게 되면서 저희 지부 같은 집단사업장은 당연히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전체 결의가 있기 때문에 분산사업장들도 계속 파업 대오가 늘어나는 상황이 돼 오히려 파업의 힘이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14일 집회가 정점이었던 것 같아요. 초기에, 14일 집회 때 정말 많은 대오가 상경 투쟁을 했고, 그때 감격이나 소름도 많이 느꼈어요. 저도 그날 단상에 올라가서 그 “어머니의 마음으로” 직위해제한 최연혜 사장, — 지금 그 바람난 계모가 명품 쇼핑하러 지금 다니고 있죠? 지역구 구걸하면서요 — 그런 “어머니”를 비판하고, 또 이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 전 더 길게 가면 사실 힘들다 하는 생각을 초반에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 빠르게 결정해서, 저들이 지도부를 침탈하거나, 수배를 내리는 것이 예상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전면파업으로 나가자는 주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그런데 이기적이진 않아요.
어쨌든 12월 14일 집회를 경과하면서 조합원들도 아침에 나와서 밤 촛불 집회까지 결합하는, 그런 놀라운 변화된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1월 18일 집회 때 보니까 2시 집회 끝나고 또 집에 가더라고요. 파업 끝나니까 다시 철도 노동자로 돌아왔습니다.
원래 앞에
체포영장 발부된 뒤로는 이데올로기전이 벌어졌던 거 같습니다. ‘민영화가 아니다’ 하는 정부의 발표, 이제 대통령도 입을 열기 시작하고, 국무총리도 입을 열고, 현오석 부총리는 헛소리, 개소리를 남발하고, 서승환도 ‘민영화 아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이때부터 우리 철도노조에 굉장히 유리한 시기가 된 거죠.
여론전을 봤을 때, 저들은 그 전에는 민영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어요. 파업 전에는 ‘경쟁체제 도입’ 같은 표현을 썼거든요. 그런데 민영화 논란 안에 들어오면 우리하고 같이 토론이 이루어지잖아요. 그러면 그들도 이제 그 프레임에 갇히게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우리가 2008년 광우병 촛불의 수혜자이기도 한데요, 촛불 이후에 국민들에게 어쨌든 ‘민영화는 나쁜 것’이라고 이미 규정이 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국토부나 정부를 그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때부터 민영화 논란이 폭발적으로 일어납니다.
대단했던 것은 어느 국민들이든 SNS 등을 통해서 저희보다 더 자세하게 수서발 KTX
그리고 더 결정적이었던 건 22일 지도부를 체포한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으니 죽죽 넘어갑니다. 5백 명 기관사 대체 인력을 채용 공고했던 것도, 가슴 아프지만, 조합원들에게는 크게 위협은 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철도 노동의 특성상, 기술을 습득하고 교육받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다만 첫 번째 위기가 이사회 때라면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것은 27일 저녁입니다. 일명 저희는 ‘문자 전쟁’이라고 부르는 날인데요, 그 날 정말 대단했어요. 27일 야밤에 정부가 기습적으로 면허를 발급합니다. 그 날 밤에 공사가 준비했던, 면허 발급에 맞춰 전체 조합원들에게 발송하는 문자가 있어요. 본부장, 사장, 상임이사, 처장들, 소장들, 전부 다 조합원들에게 문자를 밤 12시 넘어서까지 막 쏴요. 그렇게
그 다음날인 28일 대규모 집회, 3차 상경 투쟁 잡혀 있었어요. 그때 확인하기로 약속했죠. 28일 아침 총회 때 조합원들이 한 분 한 분 들어오시는데요, 그때는 정말 눈물이 나올 거 같았어요. 한 분도 빠짐없이
28일 이후로는, 제가 그때부터 수배가 떨어져서 사실은 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어쨌든
제가 앞에서 전면 파업을 둘러싼 논의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파업 기간 동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거였어요. 자기 조합원들을 챙기고, 관리하고 조직하고, 아까 말했던 ‘추노꾼’은
그리고 소통은 골간이라고 할 수 있는 위원장과도 잘 안 됐습니다. 철도노조의 특성상 파업에 돌입하면 거의 위원장이 전권을 갖게 되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사실 복귀 과정에서 어떤 논의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복귀 선언이 됐어요. 특히 청와대가 그것을 재가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신기할 수도 있지만, 여야 간에 새누리당과의 합의 하에서 들어왔다는 것, 특히 그 주체가 김무성이라는 건 정말 기분 나쁘고 치욕스러운 상황이었죠.
어쨌든 30일에 복귀하게 되고, 조합원들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더 싸울 수 있는 지부들 같은 경우엔 더욱이요. 물론 28일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28일 정도 되면 위원장이 연말연초 투쟁 전망을 제시했어야 해요. 근데
지금
또,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처음 느꼈던 파업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소도시, 영주나 동해 등에서도 고등학생들도 다 우리 유인물에 열광했어요.
특히 민주노총이 몇 년 동안 굉장히 답답했잖아요.
무엇보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 사실 파업 전에도 많은
2008년에는 시민들이 광우병 촛불을 들고 그 수혜로 우리가 철도 민영화를 막았습니다. 그때 저희가 총투표까지 했거든요, 그때는
철도노조 같이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투쟁이 즉각적이고 사회·정치적 파장을 만든 것이죠. 노동자 계급 투쟁의 사회·정치적 주도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이후에 필공 파업과 전면 파업에 대해서 동지들이 더 물어보신다면 더 많은 얘기들 토론할 수 있을 거 같고요.
이후 전망에 대해서 짧게 얘기하겠습니다. 전망과 관련해서는 지금 파업은 중단됐지만
1월 말부터 지부 간부들을 시작으로 2월에는 파업 참여 전 조합원에 대한 징계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물론 조합원들은 징계에서 감봉 정도는 다 이미 마음먹고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거 가지고 쫄진 않을 거 같아요. 그러나 다만 이렇게 계속 당하는 것에 대해서나, 철도 민영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이후에 물류자회사, 차량자회사로
특히 2월 25일 민주노총이 국민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데, 그 파업에 정말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전국의 금속 사업장들이, 의료 민영화 앞두고 있는 동지들이 다 참가할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철도노조가 그 안에서 하루 파업이든 어떤 파업이든 정말 제구실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특히 강제전보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영주, 동해, 제천 등의 지역이 한 본부가 되면, 생활권 자체가 바뀌어 버려요. 지금 저희 철도노조 단협에 비연고지 전보 제한이나 인사이동을 할 때 노사 협의·합의를 거치는 것 등 제약이 있어요. 이런 조항들을 무력화시키려고 지금 공사가 준비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조합에서 빠르게 투쟁 계획이 나와야 합니다.
국회의 국토 소위 관련해서 한계를 이미 노정하고 있는 거 다 아실 거구요, 조합원들도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만 강제해서 어떤 근거나 실마리로 삼아야 하는 부분들도 있고요, 여전히 수서발 KTX 문제를 놓으면 안 됩니다. 이거 놓는 순간 투쟁이 힘들어지겠죠.
저는 없었지만, 파업 복귀 과정에서 서울차 조합원들이 보여 줬던 그 역동성은 정말 끝내주는 것이었다고 자부합니다. 복귀가
이렇게 철도 노동자들이 잘 싸웠고 잘 돌아왔는데, 이제 정말로 시작된 2라운드 투쟁을 어떻게 맞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저희들의 몫이기도 하고, 그동안 수배돼 있지만 새로운 직무대리가 함께 담당해야 할 그런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후에 회의 일정을 통해서 그렇게 가져갈 것 같습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동지들 23일 동안 그리고 그 전부터 보여 주셨던 의리, 연대 잊지 않고 현장에서 더 열심히 투쟁해서 철도 민영화를 반드시 막을 수 있도록 함께 전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