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3백72쪽 분량의 인권조사보고서를 내놓고 북한 정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 책임자를 제재하라고 권고했다.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미국 백악관은 즉각 환영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북한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온갖 가능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보고서를 북한을 압박하는 데 이용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 간 긴장과 갈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특히, 지난해부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계속해서 긴장을 빚고, 두 국가의 관계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은 미국에 큰 골칫거리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간 공조를 추진하는 데 ‘북한 문제’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 북한 악마화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을 추진하는 데도 유용하다. 며칠 전 방한한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는 다시금 북한핵 문제를 언급하며 한일 간 공조를 강조했다.

즉, 미국의 북한 인권 운운은 대북 압박과 이를 통한 패권 유지의 수단일 뿐이다.

게다가 이 보고서를 낸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구성을 보면, 이 기구가 ‘인권’을 운운할 자격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에는 세계 제1의 사형국인 중국과 동성애 탄압법을 제정한 러시아, 친미 독재정권이 지배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수시로 국가보안법을 통한 마녀사냥으로 속죄양이 양산되는 한국이 포함돼 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보리 국가들은 지난 몇십 년간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을 더한층 굶주림으로 내몬 장본인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에는 인권 유린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은 외부 제국주의 세력의 압력으로 개선될 수 없다. 제국주의 국가의 위협은 오히려 북한 지배자들에게 인권 억압을 강화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

위선적이기는 남한 지배자들도 마찬가지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정부와 새누리당, 보수언론이 하루빨리 북한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난리다. 그러나 정부와 새누리당에도 북한 인권 문제는 대북 압박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새누리당과 우익들은 인권 개선 운운하면서,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도주의 지원을 반대·삭감해 왔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식량 지원은 그 전에 견줘 크게 줄었는데, 심지어 취임 첫해에 박근혜 정부는(2백 억 원) 이명박 정부 때보다도(1천1백63억 원) 못하다.

정부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을 지원하는 데도 매우 인색하다. 탈북민들은 가뜩이나 높은 실업률과 고용 불안정, 저임금으로 고통받는데, 이명박 정부 때 탈북민 정착금의 지원 기간과 대상은 대폭 축소됐다.

심지어 정부는 탈북민들을 ‘잠재적 간첩’ 취급하면서 이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검찰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남의 나라 공문서를 위조하고, 여동생을 협박하고 고문해 거짓 진술 받아내어, 한 탈북민을 간첩으로 몰고가려 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북한 인권 ‘띄우기’를 국내 마녀사냥에도 이용하고 있다. 2월 19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최경환은 북한인권법과 함께 이석기 제명안을 언급하며 두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그런데 이런 마녀사냥은 전혀 친북적이지 않은 사회주의자들도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제정 시기만을 문제삼을 뿐 북한인권법 제정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민주당도 문제다.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북한이 진정한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 없고 남한과 꼭 마찬가지로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임을 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유엔인권이사회의 모순과 한국 정부의 위선을 폭로하며 제국주의적 압력 행사와 개입을 반대해야 한다.

북한 인민의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는 심각하다. 수많은 평범한 주민들이 극심한 생존 위기에 처해 있고, 국경을 넘어 수만 명이나 탈출했다는 사실은 북한 체제의 문제를 드러낸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며 주민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사회는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 점에서 얼마전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한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과 장석택 처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한 것은 아쉽다. 진보 인사가 북한 인권 문제를 미국과 남한의 냉전 우익들이 부풀린 거짓으로 치부하며 침묵하는 것은 진보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들로 말하면, 그들은 북한 인권을 빌미로 한 제국주의적 압력 행사와 개입, 그리고 북한인권법 제정에 반대하면서도, 탈북민의 자유 왕래, 한국 정착 탈북민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 등을 요구해야 하고, 무엇보다 북한 노동자·민중 자신이 북한 지배자들에 맞서 싸움에 나서기를 바라야 한다.

남한의 노동자·민중이 그랬듯, 북한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쟁취는 오로지 북한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 자기 해방 투쟁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은 북한 지배자들이 내부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명분(“외세의 개입”)을 주기 때문에 결코 지지해선 안 된다.

최근 중국의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노동계급의 파업과 저항은 꾸준히 성장하며 의식과 조직을 키우고 있는데, 중국에서의 격변은 북한 노동자·민중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국제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에 서서 북한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을 바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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