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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통상임금, 이제는 되찾자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이해관계 대립이 첨예해지고 있다.

노동부는 최근 내놓은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에서 또다시 노골적으로 통상임금 축소를 획책했다. 정부는 국회 환노위 노사정 소위 논의조차 거추장스럽다며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이런 박근혜 정부의 노골적인 기업 편들기에 노동자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임금체계 개악안 발표에 즉각 반발하며 “올해 임단투는 더 고조·격화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금속노조는 3월 초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통상임금 정상화를 위한 7~8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본격적인 통상임금 ‘전쟁’을 앞두고 이번 투쟁의 의미를 되짚고 현재 제기되는 몇가지 물음들에 답한다.

통상임금 정상화를 위한 투쟁은 왜 중요한가?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의 통상임금 축소 공세에 많은 노동자들이 열불을 터뜨리고 있다. 한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출 갚고 애들 학비 대느라 휴일도, 주말도 없이 등골 빠지게 일했는데, 알고 보니 한 해에 거의 1천만 원 정도씩 떼먹혔더라고요. 그것도 기가 막힌데, 이 도둑놈들이 아예 장물을 내놓을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도둑질을 하겠답니다. 이런 파렴치한들이 어디 있습니까?”

노동자들이 그동안 도둑맞은 임금은 수십조 원에 이른다. 노동부 통계를 보면,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개인당 월평균 통상임금이 52만 원 이상 늘고, 이에 따라 야간·연장·휴일 수당 같은 각종 수당들이 늘게 된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빼앗긴 임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특히,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임금 인상은 매우 절실하고 중요하다. 임금은 노동자들에게 현재의 기본 생계, 양육,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킬 거의 유일한 수단이고, 미래의 흔들리는 노후를 지탱시켜 줄 일종의 보험이다.

통상임금 문제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낮은 기본급 때문에 잔업·특근에 시달려 왔다. 기업주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자들을 부리려고 전체 임금에서 기본급 비중을 대폭 낮춰 왔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백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총액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57.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제조업에선 이 수치가 절반도 안 되는 40퍼센트에 불과하다.

임금 벌충을 위해 잔업·특근에 시달리는 자동차 노동자들 국내 자동차 기업들의 임금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0퍼센트대다. ⓒ이윤선

그러니 통상임금이 정상화돼야 노동시간도 줄일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인간답고 건강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노동자들이 정치 활동에 참가하는 데도 필요하다.

셋째, 통상임금 정상화 투쟁이 강력하게 벌어진다면, 그것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든 노동자들을 헐값에 쥐어짜려는 지배자들의 공세에 맞선 중요한 반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상임금 정상화는 대기업 정규직의 이기적 요구인가?

지배자들은 통상임금 반환 요구를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로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첫째, 통상임금 반환을 바라는 이들은 대기업 정규직만이 아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2백여 건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 중에는 버스 노동자들, 환경미화원들도 포함돼 있다.

금속노조가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통상임금 캠페인이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광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지난 2월에는 캠페인의 결과로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서 노조가 결성되기도 했다.

둘째, 그럼에도 주로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이 투쟁의 주축인 게 사실이다. 이는 전혀 문제가 없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임금을 빼앗길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더구나 이들이 앞장서 투쟁을 벌인다면, 전체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고 자신감을 북돋을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정규직 노조가 통상임금을 되찾고 기본급을 대폭 인상시킨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통상임금을 산정하거나 임금 인상을 요구할 때도 유리하다.

통상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일각에선 벌써부터 ‘어차피 타협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제기가 나오고 있다.

우선, 대표적으로 이경훈 현대차지부장이 “통상임금을 당장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날조하는 것도 통상임금 투쟁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열망에 재를 뿌렸다.

그러나 현대차가 지난 몇 년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할 동안, 노동자들은 통상임금 일부를 떼먹혀 왔다. 노동자들이 이런 부당한 현실에 분개하며 떼먹은 돈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게 왜 무리한 것인가?

더구나 지금 정부와 사측은 우리 쪽에 눈곱만치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온갖 야비한 꼼수와 비난을 퍼붓고, 임금체계 개악까지 밀어붙이려 한다. 현대차 부회장 윤여철은 최근 노골적으로 통상임금 삭감을 선언하고 노조의 파업에 ‘법대로’ 대응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노조 집행부의 수세적 대응은 사측의 이런 기만 살려 줄 뿐이다.

다른 한편에선, ‘임금보다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며 임금은 좀 양보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은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이 둘은 모두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노동운동의 중요한 요구였다.

게다가 임금이 낮으면 노동시간이 줄어도 그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없다. 노동자들은 부족한 임금을 벌충하려고 또다시 잔업·특근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에서 주간연속2교대제가 실시된 것은 한 발 진전이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낮은 기본급 때문에 주말 특근이나 휴일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주6일 근무가 고착화된 것이다. 이런 점들을 볼 때, 기본급이 대폭 오르고 월급제 시행 등으로 안정적으로 지급돼야 장시간 노동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제 힘을 발휘해 강력히 싸움에 나서야 한다.

대법원이 판결했으니, 이제 체불임금은 찾기 어려워진 것인가?

지난해 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의칙을 들어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길 경우, 대법원 판결 날짜까지의 체불임금 청구 소송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이제 대법원 판결일인 지난해 12월 18일까지의 체불임금은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대법원은 스스로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한의 보호 규정(강행규정*)까지 위반하며 기업주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우리 쪽엔 정당성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주들에게 떼먹힌 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싸워 볼 수 있다.

게다가 대법원이 신의칙 적용의 기준으로 삼은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그래서 최근 민주노총은 ‘통상임금 대응 지침’에서 “회사의 지급 능력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해 대응하라고 권하고 있다.

물론 대법원 판결로 우리 쪽에 불리한 조건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체불임금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 없는냐는 계급세력의 힘 관계뿐 아니라 현장 투사들의 정치적 준비에 달려 있을 것이다.

투쟁의 전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앞서 지적했듯 우리 쪽의 수세적 태도나 양보·타협 시도는 투쟁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게다가 정부는 장시간·교대근무 업종들(자동차 생산직·간호사·은행 사무직 등)에서 주요 노조들을 겨냥해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악하겠다고 밝혔다.(관련기사: 박근혜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 노동계급 전체의 임금 하락을 노린 꼼수) 사측은 이를 활용해 최대한 통상임금을 줄이자고 노조들을 압박할 것이고, 노동자들이 여기서 밀리면 한 발 더 나아가 연공급제를 허물고 임금체계 개악까지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이 통상임금 확대를 가로막을 장애물을 하나둘씩 만들며 착착 대응을 쌓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비롯한 조직노동자 운동도 발 빠르게 투쟁을 건설해 나아가야 한다. 기업주들은 이미 임단협 대응 준비를 진척시켰을 뿐 아니라, 일부에선 통상임금 확대에 대비해 손해를 안 보려고 미리 노동강도를 높이거나 저항을 무디게 하려고 현장 통제를 강화하는 등의 공격도 시작했다.

노동운동은 사측의 이간질 시도에도 단호히 맞서야 한다. 즉, 노조가 다수 조합원들의 임금·노동조건을 지키겠다고 일부의 희생을 수용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최근 현대차 사측이 통상임금 확대 가능성에 대응해 “이중임금제를 반드시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현대차 측은 이미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고, “업무 분야에 따라 임금을 차별 적용하는 제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중임금제도를 야금야금 수용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전미자동차노조가 잘 보여 줬다. 이 노조가 미국 자동차 기업들에게 합의해 준 이중임금제도는 처음엔 신규사원 임금 삭감으로 시작됐는데, 불과 몇 년 만에 기존 직원 대부분이 작업장을 떠나면서 전 공장에 임금 하락을 강제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투사들은 이런 사측의 이간질 시도에 맞서 전체 노동자들의 이익을 적극 방어하면서 현장에서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