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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효과적 투쟁 전술

우리의 노후를 훔쳐가려는 박근혜 정부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 안으로 연금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한 플랜을 만들어 국민에게 설명드릴 것[입니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이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이 2월 25일 담화문을 통해 연금 개악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데에 대한 대답이다.

‘연금충당부채’ 논란은 연금 개악 시도에 가속도를 붙였다. 최근 정부는 국가 부채가 1천조 원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 중 절반이 연금충당부채라며 연금 개악을 부채질했다. 앞으로 수십년간 지급할 연금을 일시금으로 계산하고, 정부와 공무원이 내는 금액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숫자를 그대로 ‘부채’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 물가가 0.5퍼센트만 내려도 연금충당부채가 37퍼센트 줄어드는 것만 봐도 이 수치가 얼마나 허구인지 알 수 있다.

법적으로도 정부가 지급을 약속한 사실상 후불임금인 공무원연금이 부채라면 공무원의 임금도 모두 부채가 된다. 이 돈이 많다고 주지 않는다면 결국 정부가 공무원 임금을 떼어먹는 꼴이다.

그럼에도 모든 언론은 ‘국민 세금으로 퇴직 공무원 먹여 살린다’며 노동자끼리 분열을 부추기고, 그리스 등 사례를 거론하며 국가 부도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이 안 맞다며 ‘특혜’ 주장도 반복한다. 이런 기사들은 대통령의 강한 개악 의지를 뒷받침하려는 군불 지피기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달리 정부는 법 개정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2014년 정기국회 개정안 제출’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2월 25일 대통령 담화문 발표 직후에는 지방선거를 의식해 ‘내년 재정재계산, 2~3년 후 법 개정’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요컨대 박근혜 정부는 최악의 공무원연금 개악이라는 방향을 세웠지만 공무원노조 등 노동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구체적 추진 일정과 개악의 강도는 숨기고 있는 듯하다. 물론 여전히 논란 중인 기초연금과 지난해 잠시 미뤄둔 국민연금 문제도 고려 대상일 것이다.

구체적 일정과 개악의 강도를 감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박근혜 정부는 연금 개악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월 초, 정부는 훈령을 개정해 법 개정 과정에서 공무원노조 등 ‘당사자’를 완전히 배제했다. 지난번 개정 때 공무원노조가 개정 과정에 참여해 개악이 불충분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노조는 현재로서는 안갯속에 있는 법 개정 일정과 개악의 강도(결국 정부와의 힘 대결 과정에서 결정될)를 두고 고민하기보다는 연금 개악에 맞서 단호하게 저항할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강한 의지에 맞서 공무원노조도 단호하게 저지선을 그어야 한다.

광범한 단결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 연금 개악에 가장 큰 걸림돌은 노동자들의 저항이다. 지난 2008년 공무원연금 개악을 충분히 밀어붙이지 못했던 것도 공무원노조 등 노동자들이 저항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촛불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던 차에 노동자들이 개악 반대 투쟁을 하자 더는 밀어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공무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매우 악화되고 있었다. 2008년 5월 한 시사프로의 여론조사는 국가직 공무원 ‘77퍼센트가 [조직 개편 등 정책 때문에] 피로감이 높아졌고, 74.7퍼센트가 이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공직 사회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 ‘낮은 보수 체계’를 꼽은 비율이 37퍼센트로 1위였다. 공무원노조는 이런 불만을 모아 연금 투쟁을 조직했고 정부가 계획했던 대대적 개악을 막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연금은 2007년 대폭 개악됐다. 국민연금은 ‘당사자’가 더 많지만 공무원연금과 달리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개악 과정에서 국민연금 먼저, 공무원연금 먼저 서로 주고받다가 국민연금이 먼저 개악됐던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개악하자마자 ‘형평성’을 이유로 공무원연금 개악에 나섰다. 2008년 열렸던 공청회에서 당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이던 문형표(현 보건복지부 장관)는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이 … 약 3분의 1이 깎이는 … 대대적인 연금 개혁이 있[어] 공무원연금 개혁 건의안에서도 여기와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당시 대대적인 연금 개악은 막았지만 신규자와 재직자 간에 개악의 폭이 달리 적용됐다. 당시 개악안은 20년 이상 재직자는 5.82퍼센트 삭감, 신규임용자는 22.7퍼센트 삭감이었다. 이 때문에 신규자와 재직자 간 형평성 문제가 지금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개악론자인 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은 2008년 공청회에서 연금법 개정안이 “재직자를 지나치게 우대하는 성향의 제도 개정안”이라면서 “한 직종 내 공무원 사이에서 어떤 사람은 1년 먼저 들어왔다고 연금을 굉장히 많이 받고, 어떤 사람은 1년 늦게 들어왔다고 연금을 굉장히 적게 받[는다]”며 불평했다.

요컨대 정부는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신규자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연금을 ‘하향평준화’하려 한다. 강조점은 ‘평준화’가 아니라 ‘하향’에 있다. 그래야만 전반적인 연금 수준을 낮출 수 있고 국가 책임을 줄이면서 민간보험 시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퇴를 막으려면 정부가 지금 추진하는 공무원연금 삭감 시도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또, ‘국민 정서’ 운운하며 하향평준화를 정당화하지만 대다수 노동자의 진정한 국민 정서는 정부가 안정적 노후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끼리 ‘바닥을 향해 경쟁’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수준의 복지를 도입하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이런 요구를 내세워 투쟁에 나선다면 충분히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충재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최근 지부장단 토론회에서 지난번 연금 투쟁 때 ‘국민연금 개악 문제를 외면했던 한계가 있었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반성은 올바른 투쟁 전술 수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조직된 공무원 노동자들이 기초·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 전반의 문제를 함께 제기하며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것은 정부의 이간질 시도에 맞서는 효과적인 투쟁 전술이 될 수 있다.

단결을 위한 요구

최대한 광범한 단결을 이룰 수 있는 요구가 필요하다. 운동 일부에서는 ‘고액 연금 수급자’ 문제를 제기하며 수급액을 제한하자고 주장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은 “공무원 노조 스스로의 연금 개혁 방안 - 예컨대, 공무원연금의 소득 상한선 축소 … - 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공노총 소식지 14년 4월호)

물론 그가 했던 다른 주장, “공무원만의 이익을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국민의 삶과 사회 보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을 정상화하는 싸움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연금 수급액을 낮추는 방식으로는 이 요구를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모두의 노후를 하향평준화시키려 하는데 우리가 먼저 ‘연금을 이만큼 낮출 수 있다’고 한다면 정부는 더 강한 개악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가 ‘양보’하겠다는데 정부가 망설일 까닭이 없잖은가.

공무원연금 대상자 간의 단결에도 도움이 안된다. 예를 들어 일반직 공무원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교사 노동자들은 연금 수급액도 많다. 만약 공무원노조가 고액 연금 수급자 문제를 앞세운다면 전교조와의 단결은 어려울 수 있다. 강조컨대,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연금 개악 시도에 분명히 반대하고 광범한 단결을 통해 단호하게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한편, 선양보 주장은 소위 ‘사회적 연대’가 중요하다는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사회적 연대’를 위해 어느 정도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연대’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연대의 방식은 있는지도 모를 ‘기득권’을 내려 놓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노후 보장을 위해 기초·국민연금의 상향평준화를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그럴 때 진정한 ‘사회적 연대’는 가능하고 모든 노동자의 안정적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

파업

일부 현장조합원들은 이전 어느 정권보다 강성 우파인 박근혜 정부에 맞서 연금을 지킬 수 있을까 하고 묻기도 한다. 이런 불안감에 명예퇴직 등 개인적 선택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반면 더 강력한 투쟁으로 통해 연금 개악을 막아야 한다는 정서도 크다.

최근 공무원노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0퍼센트에 이르는 공무원 노동자들이 정부의 연금 개악을 막기 위해 ‘총파업 또는 연가파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면 참가하겠다는 노동자들도 60퍼센트가 넘었다. 2004년 연가파업으로 많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해고됐고, 지금도 파업권이 없는 공무원 노동자들 안에서 파업 참가 의사 비율이 60퍼센트가 넘는 것은 놀라운 것이다. 상당수 공무원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부에 맞서 노후를 지키기 위해서는 집회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조합원들의 이런 생각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공무원노조 내 투사들의 구실이 중요하다. 파업 참가가 해고 등 중징계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에서 실제 파업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공무원 노동자들과 대화조차 거부한 정부에 맞서 어떻게 연금을 지킬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의 여러 조건 속에서 파업이 ‘가능한가’라고 묻기보다 정부의 강력한 연금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야 한다.

정부가 연금 개악의 구체적 일정과 내용조차 쉽사리 내놓지 못하면서 말 바꾸기하는 것은 우리 편이 얼마나 강력하게 저항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공무원노조 내 투사들은 우리가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구체적 상황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전망을 갖고 현장조합원들과 함께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