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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
영리 자회사 추진, 부대사업 확대 중단하라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에 빠져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박근혜는 의료 민영화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24일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위한 실무회의를 열고 병원의 부대사업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려 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의 절규에는 세월아 네월아 하며 우왕좌왕하던 자들이 재벌과 보험사들의 배를 불려 줄 의료 민영화 정책은 일사천리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처음 밝힌 계획을 보면 박근혜 정부는 현재 주차장, 장례식장 등으로 제한돼 있는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를 의료기기·의약품·건강식품 제조·판매, 운동시설, 여행업·건물임대업·호텔숙박업·해외환자유치업 등으로 대폭 확대하려 한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병원이 부대사업 등으로 ‘진료 외 수입’을 얻는 것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의학 지식과 정보가 부족해 치료뿐 아니라 건강 관리, 생활 습관 등 폭넓은 분야에서 병원과 의료진의 권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병원이 이를 조금만 악용해도 환자와 보호자들에게서 폭리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병원에서 노인들에게 특정 전기장판을 권한다면 그 전기장판 제조사는 땅 짚고 헤엄치듯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업과 병원 사이에는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더라도 거래가 이뤄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병원에서 특정 약품을 꾸준히 사용하면 제약회사들이 그 병원에 각종 혜택과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약효가 좋다면 환자에게도 좋고, 병원과 제약회사에도 좋은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약회사도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제약회사가 병원에 건네는 돈은 약값에 포함돼 환자들에게 떠넘겨진다.

결국 병원이 환자들에게 약을 판매한 것과 마찬가지인데 약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용 외에 병원 경영진과 의사들을 위한 접대비, 여행비, 골프장 비용 등이 약값에 포함된 셈이다. 제약회사의 경영진과 대주주들에게 지급되는 ‘정상적인’ 이윤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검은 돈

모든 의료진이 이런 검은 돈을 노리고 약을 선택하지는 않더라도 그 품목이 대폭 늘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하다. 병원의 부대사업 종류를 법으로 제한하는 이유다.

물론 병원이 돈벌이를 하는 방법이 ‘진료 외 수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간 의료기관이 대부분인 한국에서는 진료 자체도 돈벌이 수단이 되곤 한다.

의료기관의 영리 행위를 금지하는 법 조항이 있지만 이윤 추구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상 ‘민간’ 병원이 수익을 내는 것을 법으로 막지는 않는다. 특히 개인병원의 경우 건강보험에서 진료비를 정하는 것 외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 불필요한 수술과 과잉진료가 벌어지는 이유다.

‘영리 행위 금지’ 조항은 법인의 경우 ‘비영리법인’(의료법인, 학교법인, 재단법인, 사회복지법인 등)만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의료법인을 포함해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은 병원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병원 운영 이외의 목적에 사용할 수 없다. 또, 지출에 비해 수입이 지나치게 많으면 세금을 많이 거두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제한한다.

한국의 의료체계가 아직은 미국처럼 끔찍한 수준으로 망가지지 않은 것은 이런 규제와 건강보험제도 덕분이다. 영리병원이 허용된 미국의 경우 영리병원은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지급하기 위해 매사 수익성을 좇고, 의료진도 의학적 판단보다 실적을 앞세우는 경영진 입맛에 맞추기 위해 환자들을 쥐어짜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런 제한 조처들, 즉 규제들을 ‘암덩어리’, ‘원수’라고 부르며 없애자고 한다.

일사천리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에 대한 광범한 대중의 반감을 의식해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고 잡아떼는 한편 국회를 거치지 않고 이를 추진하려 한다. 부대사업 범위 확대는 의료법 시행규칙(보건복지부령) 개정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병원이 영리 행위를 할 수 없다면 자회사를 만들어 이 자회사가 돈 되는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면 된다고 한다. 자회사 설립을 금지한 법 조항이 없으니 정부 가이드라인 발표만으로 이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민간 의료기관이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규제를 완화해 공적 통제를 약화시키면 의료비가 크게 오를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의뢰한 연구에서조차 ‘자본조달형’ 영리법인을 도입하면 연간 국민의료비가 7천억~2조 2천억 원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의료비가 크게 오르면 건강보험료가 오르거나 병원비에서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부분(보장률)이 줄 것이다. 자회사가 수익을 많이 올릴수록 병원 경영도 ‘영리’자회사의 경영 방향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를 두고 민영화라 불러 마땅하다. 공공병원을 민간에 매각하거나 영리병원을 허용할 때 벌어지는 일과 똑같기 때문이다.

둘째, 병원을 운영하는 법인들이 자회사를 세우고 그 자회사가 부대사업으로 영리 행위를 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법을 고칠 필요도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눈가리고 아웅 하기 식이다.

김용익 의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의뢰한 법률 자문에서도 다섯 명 중 두 명은 의료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했고, 나머지 셋도 부대사업의 범위를 지금보다 확대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국회 입법조사처가 의뢰한 자문에서도 네 명 중 세 명은 현행법 하에서 영리 목적 자회사 설립이 불법이라고 지적했고, 부대사업 확대는 네 명 모두 그 범위에 따라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도 지난 3월 28일 영리 자법인 설립과 부대사업 확대, 원격의료 등의 규제 완화 조처가 현행 의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의견서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자문 결과도 왜곡하며 의료 민영화를 강행하려 한다.

따라서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거나 시행규칙을 입법예고 하기 전부터 이에 대한 항의를 시작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1백만 서명 운동에 더한층 박차를 가해 박근혜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의 본질을 폭로하고 운동의 사기와 자신감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의료 민영화 저지 범국본’과 지역 대책위를 활성화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고 6월로 예고된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