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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일어난 반신자유주의 시위와 반핵 운동

올해 상반기 대만에서는 연달아 정치적인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대만의 집권 여당인 국민당이 밀실 합의로 중국과의 양안(兩岸) 서비스 협정(CCSTA)을 체결하려고 하는 한편 1999년 착공 이후 수십 년 동안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만 신베이 시 제4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밀어붙이려고 하자, 수십만 명이 넘는 대만의 시민들이 대만의 주요 도시에서 들고 일어난 것이다.

중국 국공 내전에서 패배해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피신한 장제스와 국민당 정권은 대만을 점거한 다음 2.28사건을 빌미로 정치적 반대파를 대규모로 학살하고 38년 동안이나 계엄령을 유지하면서 일당 군사독재체제를 유지했다.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 현재 대만에서는 형식적인 의회 민주제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해도, 우파 정당이자 군사독재정권의 후예인 국민당이 여전히 정치적인 패권을 쥐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 사회운동과 좌파세력이 미약한 대만에서, 이처럼 대규모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일은 이례적이다.

올해 초 국민당 마잉주 총통이 집권하고 있는 대만 정부는 중국과 서비스 협정을 맺어 의료·금융 등 총 64개에 이르는 서비스 산업 분야를 전면 개방하고 중국과 자유무역을 구축하려고 했다. 더욱이 이번 협정 비준안은 의회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의회에서 단 1분 만에 졸속 가결됐다.

높은 실업률로 고통 받는데다, 국민당의 패권적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대만의 청년들과 대학생들은 이에 분노해 대만의 의회인 입법원과 행정부인 행정원을 점거하는 등 급진적인 행동을 벌였다. 대만의 대학생들은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에 모여 “민주주의 수호”, “마잉주는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한편 타이페이에서는 5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정부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다.

특히 주목할 일은 신베이 시 제4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반핵 운동과 시민들의 반핵 시위이다. 제4원전을 저지하려는 반핵 운동이 이처럼 폭발한 이유는 이 원전이 활단층 위에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활단층은 아직까지는 뚜렷한 지진 활동이 감지되지 않지만 향후에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단층을 일컫는다. 실제로 신베이 시의 근교에서는 역사적으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으며, 지금도 수차례 중진급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대만의 주요 도시이자 직할시(한국의 광역시)인 신베이 시에서 지진 때문에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엄청난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무척 높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달리 신베이 시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노심용융 때문에 나오는 오염수가 북상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한·중·일 해안가를 바로 직격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 또한 엄청난 방사능 피해를 입는다. 이번 제4원전을 둘러 싼 정치적인 이슈가 비단 대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것이다.

후쿠시마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만에서는 지속적으로 원전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2012년 3월에는 2천 명의 시위대가 타이페이에 모여 제4원전의 가동 중지와 대만 란위 섬의 핵폐기물 저장소의 폐쇄를 요구했다. 이후 반핵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 2013년 3월에는 7만 명 넘는 시위대가 제4원전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고, 2013년 5월에는 20만 명의 시위대가 반핵 시위에 참가했다. 이러한 반핵 운동은 야당인 민주진보당과, 대만에서 20년간 반핵 운동을 이끈 대만환경보호연맹 등 많은 시민 단체가 주도했다.

이번 제4원전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핵 시위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3주기를 맞아 일어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3주기를 앞둔 3월 8일 대만 전국에서는 약 13만 명의 시민들이 제4원전 가동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대만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올해 8월 제4원전을 시운전하려고 하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4월 27일 타이페이에서만 약 5만 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연좌농성을 하는 한편, 총통부(대만의 청와대 격) 점거를 시도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인 것이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고 강제 연행을 일삼는 등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했지만, 시민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시민들의 분노에 밀린 대만 정부는 완공 직전인 제4원전의 건설을 즉시 중지시켜 전면 봉쇄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 가동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사회운동이 미약한 대만에서 시민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늘리려는 정부에 맞서 급진적으로 투쟁을 벌여 정부의 의지를 꺾은 것이다. 또한 제4원전의 원자로들의 핵심 부품과 공정은 모두 일본의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즉 일본의 원자로 수출 정책에도 제동을 건 셈이다. 다만 대만 법제상 국민투표는 투표율이 50퍼센트가 넘어야 효력을 발휘하는데, 지금까지 대만에서는 국민투표의 투표율이 50퍼센트가 넘은 적이 없어 아직 여지가 남아 있다.

이번 반핵운동의 기세를 이어 대만노총(TCTU)이 주도한 노동절 시위도 지난해보다 더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1만 명이 넘는 대만의 노동자들은 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 확대를 저지하자는 구호를 담아 타이페이를 행진했다.

비록 대만의 사회운동과 진보세력이 아직까지는 자유주의와 의회 민주주의의 틀에 머물러 있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번 대만의 반핵운동은 대만의 사회운동이 우파 정권에 맞서 대만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인 원전 정책을 꺾은 분명한 쾌거다. 여전히 문제와 과제는 남아 있지만, 대만의 시민들과 진보세력은 진정한 탈원전을 위해 계속 싸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주의자들 또한 동아시아 여기저기서 고양되고 있는 노동계급 투쟁의 일부인 대만의 반핵운동과 사회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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