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안녕’이란 일상의 인사조차 묻기가 참으로 난망한 오늘을 살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의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 우선, 세월호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꽃다운 아이들의 명복을 빈다. 또한 희생자 유족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을 함께 전한다.

세월호의 침몰은 곧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침몰이다. 이번 참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할 국가는 우리에게 없었다. 구난 업무조차 민영화됐다는 사실이 그저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민영화’ 암초에 걸려 침몰 중이다. 국민의 고귀한 생명조차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그런 국가권력을 마주한 지금, 우리는 당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국가는, 국가에게 우리는 당최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도 수많은 공공부문이, 교육이, 의료가, 철도가 민영화란 암초에 걸려 끝 모를 심연으로 빨려들고 있다. 공공성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평형수와 같다. 그러나 자본권력과 짬짜미한 국가권력에게 그 따위는 하등 중요치 않다. 1퍼센트의 천박하고 부정한 그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침몰하는 중이다. ‘낙수효과’란 감언의 선내방송만이 공허하게 선실 안을 메아리친다.

“가만히 있으라.”

우리는 믿었다. 그러나 배는 점점 기울었고, 이내 복원력을 상실했다. 우리를 이끌 선장도 승조원도 없었다. 아니, 그들은 처음부터 우리와 한 배에 있지 않았다. 애당초 1퍼센트를 위한 1퍼센트만의 배는 따로 있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유람선에서 그들만의 선상 호화파티를 즐길 뿐이다. 탐욕의 파티다. 광란의 파티다. 그들은 가끔 우리 쪽을 바라보기나 하는 걸까.

나는 철도노조 지부장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오늘의 민영화 문제를 바라본다. 2014년,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이 국민과 함께 전개할 ‘민영화 저지투쟁’의 성패가 곧 대한민국이란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 거라 믿는다. 승리의 관건은 ‘너는 곧 나’라는 믿음, 곧 ‘우리는 함께’라는 연대의 믿음에 달려 있다.

연대

자본은 돈만이 지상의 유일한 미덕인양 우리를 훈계한다. 돈은 ‘나는 나, 너는 너’라고 끝없이 우리를 세뇌시킨다. 시나브로 우리는 탐욕이란 악마의 속삭임에 취했고, 그 달콤함을 믿었다. 그렇게 우리는 끝없이 ‘나’만을 탐닉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처참하다. 나만의 안녕이 우리의 안녕인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나는 안녕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안녕은커녕, 종국에는 우리 모두의 안녕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나오는 네크라소프의 시구가 떠오른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옳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 열일곱 해 꽃봉오리가 말한다. 우리를 기억하라고. 우리를 잊지 말라고. 가만히 있지도 말라고!

그래, 기억하겠다. 더 이상 잊지 않겠다. 가만히 있지도 않겠다. 세월호의 참사를, 대한민국의 참사를 반드시 기억하자. 함께 슬퍼하자. 함께 분노하자. 그리고 우리의 슬픔과 노여움을 함께 토해내자. 고인 슬픔은 슬픔이 아니다. 고인 분노는 분노가 아니다. 우리의 슬픔을, 우리의 분노를 함께 토해내자.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소중한 생존권을, 함께 살아갈 우리의 공동체를 반드시 지켜내자!

대한민국은 목하 침몰 중이다. “대한민국, 안녕하실 수 있느냐?”고, 꽃봉오리 아이들이 묻는다. 늦지 않았다. 우리의 기억이, 우리의 연대가, 우리의 투쟁이 마냥 기울어가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것이다. 아이들의 물음에 응답하자. 우리의 오늘을, 아이들의 안녕을 우리 손으로 반드시 지켜내자!

꽃도 피우지 못할 봄이라면 차라리 아니 오느니만 못하다. 나이 먹어 어른인 게 참으로 부끄러운 오늘이다. 오늘을 바로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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