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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란 반올림 상임 활동가 인터뷰:
“삼성의 사과와 직접 교섭 인정은 끈질긴 투쟁과 세월호 참사 분노 때문”

5월 14일 삼성전자 대표이사 권오현이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 반도체 산재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한 삼성의 공개ㆍ공식 사과는 처음이다. 이후 5월 28일 5개월 만에 삼성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간의 교섭이 재개됐다.

반올림 교섭단은 가슴에 검은 리본과 노란 리본을 달고 교섭에 들어갔다. 반올림 교섭단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고통은 노동조합 탄압, 간접고용에 억눌린 노동자들의 고통과 세월호 참사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같다” 하고 말했다. 반올림의 상임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는 이번 삼성과의 교섭에서 반올림 교섭단 중 한 명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노무사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주인공 모델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함께 하고 있는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 ⓒ이윤선

“지난해 초부터 삼성이 반도체 산재 피해자 가족과 교섭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내용으로 협상할지 정하는 데만 8개월이 걸렸습니다.

본격적으로 협상하기로 한 게 지난해 12월이었어요. 그리고 현재까지 교섭이 열리지 않다가, 이번에 5개월 만에 다시 교섭을 시작한 것입니다.

삼성은 그동안 반올림을 교섭 주체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면서 ‘제3자 중재기구’를 고집해 왔습니다. 그러나 ‘제3자 중재기구’가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삼성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3자’를 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 교섭에서 삼성은 반올림을 사실상 협상 주체로 인정했습니다. 일단 양 당사자가 성실하게 협상하자고 합의를 봤습니다. 직접 교섭을 이끌어 낸 의미가 있죠.

다만, 우리가 5개월 전에 사과·보상·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구체적 요구안을 보냈는데, 이에 대해 삼성이 안을 내놓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음 협상에 우리 요구안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가져오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문의 쇄도

삼성이 직접 사과하고 교섭에 나선 것은, 7년 동안 한마음으로 [삼성과] 싸우고 이 문제를 외부에 알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던 산재 피해자, 가족, 반올림의 활동 덕분입니다.

저희가 7년간 끈질기게 싸워서, 이제 국내 언론뿐 아니라 외신에서도 취재가 정말 많이 와요.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덕분에 이 문제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했고요. 이런 점이 삼성에게 압력으로 작용했던 듯합니다.

또 무엇보다 실제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삼성도 이 문제를 이대로 두면 더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는 듯합니다. 마냥 책임 회피만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게다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이윤을 위해 생명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어요. 이미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삼성이 이런 사람들의 정서도 고려했을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공식적인 사과 이후에 직업병 제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직업병으로 의심하지 못했거나, 의심하더라도 보상 가능성에 대해 절망적이었던 피해자들이 연락을 해 오고 있습니다. 백혈병, 뇌종양, 심부전증, 각종 희귀질환에 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어요.”

“우리는 노동자 안전과 노조 설립 인정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번 교섭에서 그동안 삼성이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를 소홀히 한 것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과하고, 화학물질 정보 공개, 독립적인 연구진의 종합진단 실시 등 구체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 가고 젊은 나이에 암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와 가족에게 삼성이 충분하고 합당한 보상을 하게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삼성뿐 아니라 반도체 전자 산업의 많은 직업병 피해자들이 좀 더 쉽게 산재를 인정받도록 하는 싸움도 필요합니다. 또 우리는 산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보건 조처를 강화하고, 기업을 규제하는 싸움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삼성이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을 방해하지 말라는 요구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을 처음 시작한 황유미 씨의 아버님이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내 딸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말하면서 노동자들을 소모품이나 기계처럼 취급해 왔고, 그것이 오늘날 수많은 직업병 피해자를 낳았습니다.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삼성에서 처음으로 대중적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삼성은 지금 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엄청나게 탄압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이 승리하고 노동조합을 인정받는다면, 삼성의 전체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줄 것입니다. 삼성에서도 노동조합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 투쟁이 중요합니다.

지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정말 고마운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올림의 싸움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긴밀히 연결돼 있고, 따라서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이 승리하도록 우리도 열심히 연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