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때문에 탈북자 입국을 반대해야 하는가

정병호
지난 7월 26일 정부가 4백68명의 탈북자 입국을 추진한 것을 두고, 좌파 민족주의 단체들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역력하다.
특히 7월 22일 미국 하원에서 탈북 지원을 주된 내용으로 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된 직후에 탈북자 입국이 진행된 정황 때문에, 일부 단체들의 비판 강도는 거세다.
탈북자 수용이 “북의 체제를 뒤흔들어서 북을 고립시키기 위한 책동”(한총련)이자, “미국의 한반도 지배 간섭에 편승한 반민족적 범죄행위”(윤경회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추진하는 북한인권법안을 지지할 수는 없다. 지금껏 미국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북한 압박 구실로만 이용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북한인권법안과 대북 압박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탈북자 입국을 반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탈북자 입국을 반대하는 데에는 탈북자 문제의 발생 원인에 대한 그릇된 판단이 내재돼 있다. 이들은 최근 탈북자 입국이 주로 미국 CIA의 후원을 받는 우익 탈북 지원 단체의 ‘기획’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 양 말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탈북자가 대거 늘어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북한 체제의 위기, 즉 1990년대 중반 이후 발생한 대규모 식량난과 관련돼 있다.
탈북 지원 단체 ‘좋은벗들’은 북한의 가족구성원 10명 당 3명 가량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해 총 사망자가 3백5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탈북자 입국을 반대하는 더 주된 이유는 남북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8·15 민족통일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이번 탈북자 수용이 “통일의 당사자이자, 한 민족인 북을 자극하고, 심지어 부정”(한총련)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경색 국면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심각한 모순이 존재한다. “한 민족”의 일부인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것이 “한 민족”의 다른 일부인 북한 정권의 이해관계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다.
북한 체제 자체도 단일한 이해관계로 구성돼 있지 않다. 대규모 식량난 때도 전혀 굶주리지 않는 당 관료들과 군 장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북한 당국은 평범한 북한 민중을 억압하고 있다.

인터폴

그러나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을 계급보다 우선시하다 보니, 민족적 과제(통일) 실현의 주체인 남북한 정권에 정치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환상 때문에 북한 체제의 위기와 내부 모순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을 체제부적응자나 민족반역자로 취급하며 극심한 처벌을 가하는 것조차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일부 친북 좌파 논객들은 “국제적으로 불법 체제 이탈자는 인터폴까지 동원해서 외교적으로 처리”된다는 ‘관행’을 들먹이기까지 한다.
현재 대다수 탈북자들은 피 말리는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며 초착취당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탈북자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노예처럼 일하고 성적으로도 유린당하고 있다. 이런 처지에 놓인 탈북자가 중국에만 30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남한 정부도 탈북자들을 수용하기에 인색하다. 올해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탈북자는 고작 1천2백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 또한 정부의 인색한 지원과 사회적 냉대로 인해 “2등 국민” 취급을 받고 있다. 차라리 교도소가 낫다며 범죄를 저지른 탈북자도 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4백여 명 탈북자 입국에 즈음하여 오히려 개별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금 삭감 계획을 내놓았다.
그 동안 탈북자 문제가 북한을 압박하고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익들에게 이용됐기 때문에, 탈북자 지원은 생색내기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진보 진영은 탈북자 입국을 반대하기보다, 오히려 정부가 더 많은 탈북자를 수용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것을 촉구해야 한다. 탈북자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노동자 민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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