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국장급 협의에서 북한과 일본은 납치 문제를 재조사하고 대북 제재를 일부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이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3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는 대북 압박을 위한 한·미·일 공조를 약속했다. 그런데 겨우 2달 만에 북한과 양자 합의를 이룬 것이다. 그것도 일본에서 대북 강경책을 대표해 온 아베가 말이다.

북·일 합의에 나선 일본의 계산은 복잡하다. 우선, 일본 국내에서 납치 문제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쟁점이다. 그래서 아베 내각은 과거 북한이 저지른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핵심 과제로 여겨 왔다. 아베 자신이 고이즈미 내각 시절에 이 문제에 앞장서 총리로 가는 길을 닦은 자다.

그러나 아베의 의도는 더 근본적인 이해관계와 연결돼 있다. 아베는 이번 합의를 통해 중국에 견제구를 던지려는 듯하다.

일본은 미국의 지지 속에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치열한 제국주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 강도는 점차 높아져, 동중국해 일대에서 중국과 일본이 국지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은 현실적인 위험이 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의 외교전도 치열해졌다. 예컨대 일본은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적극 접근하고 있다. 중국도 이에 맞서 해당 국가들에 강경하게 맞대응하곤 한다.

외교전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아베 내각은 입지가 다소 좁아진 상태였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 등으로 한국 정부와 관계가 소원해졌다. 지난 3월 한·미·일 정상회담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아베는 박근혜와 정상회담을 하지 못했다. 반면 중국의 시진핑은 박근혜와 4차례나 정상회담을 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존하면서, 최근 수년 동안 중국의 대북 영향력도 커져 왔다. 중국이 북한 나진항에 진출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중국은 나진항을 통해 동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나아갈 출구를 확보하는 데 꾸준히 관심을 보여 왔다.(비슷한 목적으로, 러시아도 나진항에 관심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는 한반도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단 중의 하나로 북·일 대화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처형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북한 지배자들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커지는 데 불만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본지 118호 ‘장성택 처형 – 지배 관료 핵심부의 위기와 체제의 모순을 드러낸 사건’을 참조하시오.) 일본이 북한을 중국의 지정학적 확장을 저지할 지렛대로 쓰는 데 관심을 가질 법도 한 상황이다.

북·일 합의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해 줄까?

일본의 대외 정책이 미국 제국주의에 일방적으로 “종속”돼 있다고 여겨 온 사람들은 이번 합의에 많이 놀랄 법하다. 그러나 비록 냉전 때부터 일본이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 구실을 해 왔지만, 일본 또한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독자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일본을 자신의 헤게모니 아래에 두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해 왔기 때문에, 그만큼 일본이 대외 정책에서 미국과 다른 행보를 할 여지도 커졌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는 2002년과 2008년의 북·일 합의처럼 얼마 안 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우선, 일본의 대북 정책이 일관되게 전개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전이 전개되는 양상에 따라, 일본의 대북 정책은 얼마든지 급변할 수 있다. 일례로 2002년 당시 일본 총리 고이즈미가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일 대화가 진전됐다가, 미국이 북한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는 바람에 중단된 바 있다.

미일 동맹

또한 지금 아베 내각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이 밖에도 군사 대국화를 향한 외교·안보적 과제들이 산적하다. 이를 관철하는 데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론은 여전히 유용한 명분이다.

무엇보다 일본 지배자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일 동맹 강화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지위를 유지하는 한, 일본은 미일 동맹의 날개를 근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 지배자들은 북·일 대화를 마뜩잖게 생각하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 대변인 젠 사키는 일본이 “투명한 방식”으로 납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이 너무 독자적으로 북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북·일 대화가 한반도 긴장 완화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 합의는 북·일 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경색된 한반도 정세를 바꿀 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 계기로 6자회담 재개 및 남북 관계 진전 노력이 강화되길 기대한다.”(〈한겨레〉 5월 31일자 사설)

그러나 이 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아베와 김정은 모두 평화와 인권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는 자들이다. 북한 지배자들은 미국의 대북 제재로 인한 오랜 고립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뿐이다. 북한이 군사 대국화를 향해 폭주하는 아베와 대화에 나선 것은 북한의 ‘반제국주의’가 어디까지나 미사여구임을 보여 준다.

북·일 합의는 점차 다극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 동아시아에서 국가 간의 상호작용이 유동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안정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그림이다. 오히려 불안정 속에 장기적으로 제국주의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 치열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