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소방관 참사는 예고된 비극

지난 3월 4일 홍제동 화재 사고로 6명의 소방관들이 목숨을 잃었다. 또 3월 7일에는 부산에서 화재 진압을 하던 소방관 김영명 씨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더 분통터지는 것은 일련의 사고들이 "예나 지금이나 사고 이전에 이미 예고"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소방관들은 박봉과 장시간 근무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각종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왔다. 화재 진압은 물론 일상적인 소방 검열, 제설 작업, 수해 지역 물 청소와 식수 공급, 응급 환자 이송 등의 인명 구조 작업은 모두 소방관들의 몫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제대로 하기에는 소방관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의 소방 공무원은 22,932명으로 1인당 담당 인구가 자그마치 2,064명이나 된다. 미국의 소방 공무원 1인당 담당 인구 208명의 10배에 이른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일을 하다 보니 근무 조건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루 24시간씩 격일 근무를 하기 때문에 월 평균 15일 근무시간이 360시간이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는 셈이다. 일반 공무원의 근무시간인 월 192시간과 비교하면 168시간을 더 일하는 셈이다.

과중한 근무 때문에 지난해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앞두고 한 달여 동안 재난·사고 대비 훈련을 해온 한 소방관은 과로로 쓰러져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국가

한국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방공무원 수

23,000명

149,000명

1,274,000명

62,000명

236,000명

전체 공무원 수 대비

2.5%

3.4%

7.4%

2.1%

5.3%

소방공무원 1인당 국민 수

1980명

841명

208명

942명

247명

※ 국내 보유 소방 장비를 기준으로 할 때 필요한 소방 공무원 수는 32,133명으로 약 9,000명이 모자라는 상황

(자료 : 행정자치부 소방행정과)

예고된 사고

이번 홍제동 화재 사고에서 목숨을 잃은 6명의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의 기본 장비인 고글(적외선 투시경)도 산소 마스크도 없이 맨 얼굴로 불 속에 뛰어들었다. "고글을 썼으면 벽이 무너지는 것을 빨리 보고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동료 소방관들은 말했다.

지난해 말 현재 방수복 등 소방 공무원 1인당 13개 필수 장비 보유율은 62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불길 속에서 생명줄 노릇을 하는 무선통신 헬멧은 고작 4천 개, 연기투시기는 5천6백 개에 불과하다. 필수 장비는 모든 소방관에게는 고사하고 4∼5명당 한 개씩 돌아가는 셈이다. 정부가 지급률 100퍼센트라고 주장하는 방수복, 방수모, 방수화 한 세트는 22만원 짜리 싸구려다. 미국 소방관이 착용하는 방수복 세트 가격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이것을 입고 불길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분도 채 되지 않는다.

1998년 한 해 동안 화재 진압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순직한 소방 공무원은 12명이고, 225명이 부상을 당했다. 매달 한 명씩 죽는 셈이다. 이 중에서 화재 진압 및 구조 작업 중에 죽거나 다친 소방 공무원은 151명으로 1997년도에 비해 53.7퍼센트나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995년 이후 화재 진압 및 구조 작업 중에 죽거나 다친 소방관은 무려 773명에 이른다.

소방관들의 교육·훈련 부족도 사고를 부르는 요인이다. 미국의 경우 초임 소방관들은 의무적으로 6개월간의 훈련 기간을 거쳐 소방차 운전 80시간, 위험물 처리 기술 16시간, 구조 기술 40시간 등 필수 과정을 이수해야 화재 현장에 투입된다. 그러나 한국의 소방 공무원들은 현장에 들어가기 전 10주간의 소방 교육만 받으면 된다. 이조차 교육 시설이 부족해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국래 양천소방서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4∼8주 정도의 훈련으로 근근히 떼우는 우리의 실정에서는 교육·훈련 부족으로 인한 순직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는 인색한 정부

홍제동 사고 직후 김대중 정부는 일선 소방관들에게 선심쓰듯 몇 가지 조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위해 소방관의 방호활동비를 7만 원에서 17만 원으로 올리고 방열복 대신 방화복을 갖추게 하겠다는 것이다. 2005년까지 5천 명의 소방 공무원을 확충하고 4천 명 규모의 의무소방대를 창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사후약방문격이다.

지난 3년 동안 정부는 공무원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하위직 공무원 5만여 명을 감축했다. 소방 공무원의 수도 현행 정원의 72.1퍼센트로 대폭 줄어들었다. 1998년에는 자그마치 1443명의 소방 공무원들이 쫓겨나야 했다. 그 결과 119구조대의 구조 활동은 뒷걸음질쳤다. 1999년에 비해 2000년 출동 건수는 8.8퍼센트나 증가했지만 구조 인원은 오히려 -4.7퍼센트로 줄어들었다.

정부가 발표한 9천여 명이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충원된다고 해도 여전히 인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소방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투자는 거의 없다. 부족한 장비도 제대로 갖출지 의심스럽다.

의무소방대도 적절한 대안이 아니다. 소방 업무는 간단한 사무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무소방대 도입은 돈 안 들이고 생색내려는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소방 공무원들은 전문적으로 소방 업무를 전담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대중은 대선 공약에서 '소방청'을 설립하겠노라고 했지만 그가 집권한지 3년이 지나도록 설립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공무원의 사기진작을 위한다며 올초 경찰과 공무원들의 봉급을 인상했다. 그러나 소방공무원들의 처우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을 하다 화상을 입거나 다쳐도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해 사비로 치료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는 인색한 정부가 2001년 국방 예산은 작년보다 9,110억 원이나 더 늘려 15만 3884억 원을 책정했다. 인간보다 사장들의 이윤을 우선시하는 시장의 논리가 평범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소방관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