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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신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에 뒤이은 경찰 피살 사건은 범죄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부르주아 언론은 일제히 “묻지마 살인”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도 “상대적 박탈감과 여성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을 품은 남성들이 여성들을 겨냥해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강력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며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가 ‘반사회적' 개인들의 화풀이에 희생당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은 명백한 과장이다. 정부의 범죄 통계에서 범죄는 전체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살인 범죄 증가율은 미미하다.

대검찰청의 범죄 통계인 《범죄분석》을 보면, 2002년 인구 10만 명 당 살인범죄 발생건수는 2.1건이다. 이것은 범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4년의 1.8건, 1965년 2.0건에 비해 거의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살인 사건은 부르주아 언론이 가장 빈번하게 보도하는 범죄이지만,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편이다. 살인이 형법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18퍼센트에 불과하다. 살인, 강간, 강도, 방화, 폭행 등 강력범죄는 재산범죄보다 더 적게 일어난다(36.7퍼센트 대 52.1퍼센트, 《범죄분석》, 2003).

그런데 공식 범죄 통계는 폭력성 범죄 비중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공식 통계는 실제 일어난 범죄가 아니라 경찰에 신고된 범죄만을 집계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벼운 범죄보다 ‘강력 범죄'를 더 자주 신고하는 경향이 있다. 경찰에 신고된 범죄가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집계하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범죄피해조사(《한국의 범죄피해에 대한 조사연구(Ⅳ)》, 2003)를 보면, 절도 사건의 비중이 강도 사건보다 훨씬 높다.

한 해에 살인 사건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는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 수(인구 10만 명 당 16.9명)나 자살자 수(19.1명)보다 적다(2002년 통계청). 더욱이 연쇄살인 사건은 그야말로 희귀하다.(바로 이런 희소성 때문에 연쇄살인 사건이 그토록 언론에게 ‘보도 가치'가 큰 것이다.)

우리 나라 범죄의 주된 양상이 ‘선진국형' “묻지마 살인”(무동기 살인)으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부풀리기다. 선진국이든 우리 나라든 살인 사건의 대다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 친척, 애인, 친구, 이웃 등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

속임수

지난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펴낸 보고서 《살인범죄의 실태에 관한 연구(Ⅱ)》를 보면, 살인 사건 피해자 가운데 우연히 만난 모르는 사람에 의해 희생된 경우는 9.8퍼센트에 불과했다. 살인 사건의 70퍼센트 이상이 부모, 배우자, 형제, 자녀, 친척, 애인, 친구, 이웃 등이 저지른 것이었다.

강간 사건 역시 대부분 잘 아는 가까운 관계에서 저질러진다. 이런 양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의 특징이다. 폭력성 범죄가 주로 낯선 자에 의해 일어난다는 얘기는 범죄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신화일 뿐이다.

경찰은 “치밀한 범죄”, “범죄의 지능화” 운운 하지만, 살인 사건을 포함한 폭력성 범죄의 대부분은 절망에 빠진 개인들이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서 저지르는 ‘우발적'인 것이다. 살인 범죄의 검거율이 다른 범죄보다 검거율이 월등히 높고 검거 기간도 짧은(75퍼센트가 하루 이내에 체포) 것은 이 때문이다.

부르주아 언론의 범죄 보도는 언제나 사건의 원인보다 범죄 행위 자체와 범인의 행적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 열을 올린다. “쇠망치 살인의 충격” “엽기적” “한니발 렉터를 꿈꿨다” 따위의 자극적 문구를 표제로 뽑는가 하면, ‘전문가'들을 등장시켜 범죄자들의 ‘이상 심리'를 분석하기도 한다.

이런 선정적 보도 행태가 단지 돈벌이에 유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의 행위나 심리에 초점을 두는 부르주아 언론의 보도 방식은 범죄의 사회적 근원을 감추는 데 이바지한다.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범죄 ‘전문가들'이 하는 구실도 이것이다.

근래에는 범죄의 원인을 범죄자의 뇌 구조에서 찾는 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온갖 전문 과학 용어를 써가며 “살인을 부르는 유전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범죄자의 ‘유전적 취약성'을 제기하는 신경과학연구자의 글을 실었고, 《시사저널》은 범죄의 원인을 유전자에서 찾는 서구 연구들을 소개했다. 《시사저널》은 서구의 실험 결과들을 인용해 “뇌파 검사를 해 보면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은 정상인보다 비정상적 전기 신호가 더 많이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범죄를 유전자 탓으로 돌리는 ‘과학' 연구는 죄다 속임수다. 폭력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았다는 실험 결과를 믿는 것은 신을 봤다는 얘기를 믿는 것과 같다. 무엇이 범죄인가 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들 과학자들이 대량 학살을 저지르는 부시 일당들의 뇌파를 검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파업 노동자들을 두들겨패는 경찰들과 이들을 지휘하는 지배자들의 뇌파도 검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유전자를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가?

범죄의 근원은 개인의 심리나 유전자 따위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사회적 원인을 갖고 있다. 많은 연구는 인명과 재산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정도의 온갖 범죄가 결국 경제 상태와 관련돼 있음을 보여 준다. 1971년에 유엔 사회보호연구소(Social Defense Research Institute)는 경제 불황이 모든 형태의 재산범죄와 다른 형태의 “사회적” 범죄를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서도 범죄의 뚜렷한 증가는 IMF 공황 이후부터다. 실업과 빈곤은 범죄를 낳는 주요 원인이다. 가난은 대중의 삶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들의 인간관계는 무너지고, 대중이 느끼는 소외감은 깊어진다. 빈곤과 소외에 따른 절망과 좌절감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범죄로 내몰린다.

따라서 주류 언론들이 주문하는 범죄에 대한 경찰의 강경 대처와 인력 확충 따위는 결코 범죄 예방책이 될 수 없다. 실업이 넘쳐나고 해고와 임금 삭감, 복지 축소가 자행되는 상황에서 ‘범죄 근절'은 연막탄일 뿐이다. 경찰 인력과 장비 등 범죄 통제 예산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왜 범죄는 갈수록 증가한다는 말인가.

범죄 신화에 가려진 범죄의 사회적 근원 ― 실업·빈곤·억압·소외 등 ― 에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범죄 예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