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 국가가 조직하는 살인

현재 우리 나라에서 집행 대기중인 사형수는 58명이다. 최근 유영철 살인 사건 등으로 1998년 이후 사실상 집행이 중단됐던 사형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앞으로의 동향이 이 58명의 목숨을 좌우할 것이다.
사형제도는 그 잔인함과 불공정성으로 인해 이미 많은 사형 폐지 운동가들과 인권단체, 종교계의 반대를 받아 왔다. 모든 반자본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캠페인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
최근에 출판된 《극단의 형벌》은 우리가 왜 사형제도를 반대해야 하는지 생생하게 고발하는 훌륭한 책이다. 지은이 스콧 터로는 검사 출신으로 미국 일리노이주 사형위원회에서 2년 동안 조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2000년에 미국 내에서 벌어진 광범한 사형 폐지 운동과 사회적 분위기의 산물이다. 2000년 미국 일리노이주의 사형수 앤써니 포터는 사형 집행 불과 48시간 전에 극적으로 임시 유예를 받아 사형을 면했다. 나중에 그는 무죄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일리노이 주민의 70퍼센트 이상이 사형 선고 중지를 요구했고 미국 전역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졌다. 
미국 사형정보센터에 따르면, 2003년 5월 현재 미국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죄를 인정받은 사람이 1백8명이나 된다. 그러나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는 소수 피의자들에게만 한정돼 있다.
또한, 실제로 사형되는 사람들은 계급적·인종적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다. 
2004년 6월 미국 사형수들의 인종별 통계를 보면 흑인이 42퍼센트, 백인이 46퍼센트, 그리고 라틴아메리카계가 10퍼센트를 차지한다. 미국 인구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2퍼센트임을 고려할 때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흑인의 비율은 엄청나다. 이들은 대부분 실업자나 저임금 노동자 출신이다.

범죄 억제?

한국에서는 1948년 이후 지금까지 902명이 사형당했다.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연평균 12.62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국은 사형 존치국 83개국 중 최고 집행국인 13개국 중 하나이다.
1987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 사형자의 직업별 현황을 보면 전체 101명 중 무직이 전체 사형집행자의 62.37퍼센트에 달한다. 그 외에는 대부분 소위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다. 범죄 동기를 보면 전체 1백1건 가운데 33건이 “금전, 생활비” 등 생활고와 연관돼 있다. 한국의 사형수 실태도 스콧 터로의 책이 예로 든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핵심 논거는 범죄를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스콧 터로에 따르면, 사형제도와 범죄율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도 발견하기 어렵다. 윌리엄 베일리와 루스 피터슨은 1994년에 이렇게 인정했다. “억제책과 사형에 관한 연구에서는 사형이 범죄 억제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당히 일관된 패턴이 나타났다.”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근원은 개인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경험하는 빈곤과 소수의 부가 공존하는 이 사회는 우리 모두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거짓된 환상에 기초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무언가 나아질 희망도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이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막상 가장 끔찍한 범죄는 지배계급이 저지른다. 조지 부시는 사형제도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범죄 억제 효과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그 자신이 이라크에서 1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바로 이런 자들이 강력한 범죄 처벌과 경찰력 강화를 선호했고, 이것은 자본주의의 탄생 이후 계속돼 왔다. 미국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피터 라인보우는 《목 매달린 런던》(London Hanged)에서 자본주의가 사형제도를 이용하는 방식에 대한 탁월한 실증적 연구를 보여 줬다.
그는 공개 처형이 1780년대 자본주의 성장기 영국의 빈곤과 폐해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기 위해 어떻게 이용됐는가를 분석했다. 당시 영국에서 번창하던 직물업의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배계급이 사회적 공포와 권력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훈육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공개 사형은 이러한 목적에 아주 적절히 들어맞았다.
사형제도는 예나 지금이나 지배계급이 가장 궁핍하고 소외된 계층을 억압해 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끔찍한 수단 중 하나이다. 
사형은 폐지돼야 한다. 그것은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계를 바라는 우리 운동이 옹호하는 중요한 요구로서 성취돼야 한다.  

이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