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23일에 시작된 남아공 백금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이 5달 만에 승리로 끝났다. 그들은 세계 최대의 백금 생산 업체인 임팔라·앰플란츠·론민이 소유한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7만 명이 참가한 이 파업은 2012년 마리카나 학살* 이후 급성장한 광원건설노조(AMCU)*가 이끈 최초의 공인 파업이었다.

노동자들은 월급을 1만 2천5백 랜드(약 1백20만 원)로 인상하라고 요구했다. 1만 2천5백 랜드는 수년째 남아공 노동자들이 생활임금으로 요구하는 금액이다. 일부 노동자에게는 현재 임금의 2배에 이르는 금액으로, 공세적인 요구였다. 물론 매우 위험한 갱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월급이 60만 원 남짓이라는 사실이 더 충격이기는 하다.

노동자들은 애초의 요구를 완전히 따내지는 못했지만 결과에 만족하고 자신감도 높다. “매우 만족합니다. 앞으로 1만 2천5백 랜드도 쟁취할 수 있어요.”

승리 비결은 단호함과 광범한 연대

5달의 파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측과 정부는 강경하게 탄압했다. 파업 기간에 2백36명이 해고됐다. 경찰이 총을 쏴 사망자가 발생했다. 기층의 전투적 직장위원들은 날조된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앰플란츠는 노조를 상대로 5억 9천1백만 랜드(약 5백67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파업이 길어지며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도 매우 어려워졌다. 5달 동안 파업 참가자 7만 명이 받지 못한 임금이 10억 달러에 이른다.

파업 노동자들은 정기적으로 대중 집회를 열었다. 대중 집회를 통해 사기와 대오를 유지했다. 이 대중 집회는 지도부가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을 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데서도 중요했다.

국내외에서 보낸 연대의 손길도 큰 도움이 됐다. 담요·음식·의류 등 연대 물품 덕분에 노동자들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광산 노동자들보다 처지가 더 열악한 농업 노동자들도 모금을 해 투쟁 기금을 보냈다.

계급 대리전에서 승리를 쟁취하다 ⓒ출처 jaycaboz (플리커)

이 투쟁은 다른 남아공 노동자들이 모두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본 계급 대리전이었다.

광업은 남아공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 광물 수출은 남아공 전체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 파업으로 남아공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백금 생산이 24퍼센트 감소했다. 1967년 이래 최대 하락폭이었다. 그 여파로 국민총생산(GDP)이 2009년 이래 처음으로 감소했다. 파업 손실액이 20억 달러에 이르렀다.

사측은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마리카나 학살 이후 시작된 새로운 급진화 물결의 한 부분

이번 승리가 갖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남아공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1994년 위대한 투쟁으로 지독한 인종 격리 정책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졌다. 분명 큰 변화였지만, 보통 흑인 노동자들의 경제적 처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남아공 인구 15퍼센트인 1백90만 명이 판자집에서 산다. 48퍼센트는 한 달 소득이 3백22랜드(약 30만 원)밖에 안 된다. 남아공 아동 1백40만 명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한다. 흑인 청년의 절반이 일자리가 없다.

남아공금속노조(NUMSA)* 사무총장의 말대로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은 노동계급을 해방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기업주와 엘리트들은 막대한 부를 쌓았다. 상장 기업 임원들의 최고 연봉은 노동자 평균 임금의 1천7백28배다.

그래서 남아공은 시위가 연평균 7천 건이 일어나는 나라가 됐다. 2010년 이후에는 파업도 급증했다. 2012년 마리카나 광산 노동자들의 비공인 파업도 이런 현실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노동자들을 학살한 사건은 이른바 ‘흑인의 민주 정부’가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이었다. 규모 면에서도 아파르트헤이트 해체 전에 일어난 학살에 버금갔다.

백인 자본가 계급에서 흑인 중간계급으로 정권이 바뀌었어도 노동자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광원노조(NUM)*의 대응은 한심했다. NUM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노동자는 작업에 복귀해야 하고, 법 집행 기관들은 폭력과 살인의 주범들을 강경 단속해야 한다.”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동맹 관계인 남아공노동조합연합(COSATU, 코사투)*과 남아공공산당(SACP)*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노조 중에는 NUMSA와 AMCU만이 당시 마리카나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했다.

마리카나 학살은 아래로부터 커다란 반란이 일어나 개혁된 사회에서도 자본주의의 논리가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 줬다.

그럼에도 마리카나 광산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22퍼센트를 따내며 승리했다. 이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도 투쟁에 나섰고 승리했다. 이웃 나라로도 영향이 있었다.

이번 백금 광산 파업은 마리카나 학살 뒤에 일어난 새로운 급진화 흐름을 잇는 투쟁이었다.

흔들리는 ANC-공산당-코사투 삼각동맹

마리카나 학살 뒤 남아공 정치는 아파르트헤이트 해체 이래 가장 중요한 국면을 맞이했다. 바로 20여 년 동안 남아공 정치를 쥐락펴락한 ANC-공산당-코사투 삼각동맹이 흔들리는 것이다.

물론 올해 5월 총선에서 ANC는 여유 있게 승리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과 만만찮은 도전이 있다.

2013년 12월 NUMSA는 특별대의원대회를 열어 ANC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새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기로 했다. NUMSA는 조합원이 34만 명인 대형 노조로 영향력이 크다.

한편, 경제자유투사당(EFF)*이라는 좌파 정당도 성장하고 있다. EFF는 창당한 지 9달밖에 안 되는 신생 정당이다. 올해 5월 총선에 출마해 1백만 표 넘게 득표하고 국회의원 25명을 확보했다.

이런 흐름은 지난 20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부패를 일삼아 온 삼각동맹에 대한 광범한 분노를 반영한다.

1994년 ANC가 집권 뒤 맨 처음 한 일이 IMF한테서 차관을 받은 것이었다. 당연히 신자유주의 정책이 조건으로 붙었다. 그 뒤로도 ANC 정부는 계속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다.

그 과정에서 흑인 중간계급의 일부가 민영화 대상 기업을 불하받는 등의 방식으로 신흥 자본가로 상승할 수 있었다.

대표 사례가 시릴 라마포사다. 라마포사는 NUM의 초대 사무총장이었던 전투적 노조 지도자였다. 그러나 ANC의 집권 이후 그는 재빨리 사업가로 변신했다. 현재 그는 론민의 비상임 이사이자 주요 주주다. 이런 자가 2012년 말에 ANC 부대표로 당선했다.

곧,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후 지난 20년은 ANC의 기반인 흑인 중간계급에게는 그 일부가 자본가로 상승할 기회가 생겨난 기간이었다.

따라서 삼각 동맹에 맞선 대안을 창출하려는 움직임은 남아공 노동운동의 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