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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제국주의 질서의 불안정성이 드러난 이라크

최근 이라크에서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 또는 ISIS)가 정부군을 무너뜨리고 빠르게 진격하며 내전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다음은 이라크 위기에 대해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알렉스 캘리니코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파노스 가르가나스 등 국제사회주의 활동가들이 나눈 대화를 김종환 기자가 정리한 것이다.

오늘날 이라크 상황은 두 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벌어진 것이다.

첫째, 미국이 이라크 점령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으려고 취한 정책이 낳은 역효과다.

2003년 침공할 때만 해도,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만 무너뜨리면 이라크인들이 자신을 환영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라크인들의 저항 때문에 점령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저항을 분열시키려고 수년에 걸쳐 수니-시아파, 아랍-쿠르드족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고 종파적 시아파 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지금 수니파가 정권에 반기를 들었고 지금의 위기를 낳았다. ISIL이 반정부 무장투쟁을 이끌고 있지만, 다른 많은 세력도 함께하고 있다.

둘째, 이런 이라크 상황에 시리아 내전이 맞물렸다. 애초 작은 조직이었던 ISIL은 시리아에서 성장했다. 아사드 정부군에게서 탈취한 무기로 무장을 강화하고, 시리아 유전지대를 장악하며 자금을 모았다. 이렇게 성장한 뒤 지금 이라크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번 이라크 위기가 보여 준 국제적 불안정성

이라크 위기는 오늘날 국제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고 유동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미국 제국주의가 세계 곳곳에 개입하는 능력이 약해졌다. 그동안 일부 좌파는 미국 제국주의가 자신의 뜻대로 세계 구석구석을 통제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이라크 상황은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도 미국은 이라크 공습을 검토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라크에 다시금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키는 상황으로 돌아가기를 꺼린다.

둘째, 아랍 혁명 때문에 중동의 정권들이 약해졌다. 많은 이들이 이 점을 보지 못한다.

그동안 일부 좌파, 특히 스탈린주의 경향 좌파들은 아랍 혁명이 동유럽의 ‘오렌지 혁명’처럼 서방 앞잡이들의 활동일 뿐이라며 멸시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모든 아랍 정권들이 나름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ISIL의 관계가 한 사례다. 사우디아라비아 지배계급의 일부는 초기에 ISIL을 지원한 듯하다. 그러나 사우디는 과거 빈 라덴의 경우처럼 중간에 ISIL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고, 지금은 이라크 쪽 국경에 상당한 규모의 군인을 배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상황은 또한 아주 유동적이다.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따라 바삐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시리아 정권이 ISIL 거점 도시에는 전기를 공급해 준다는 말이 파다했다. 그러나 최근 시리아 정권은 전투기로 ISIL이 장악한 도시를 폭격했다.

이런 유동적 상황 때문에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관계도 형성되고 있다. 오랫동안 적대적이었던 미국과 이란, 시리아 정권을 둘러싸고 입장이 충돌했던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ISIL의 부상에 맞서 손잡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런 유동적 상황에서 특정 국가나 세력을 일관되게 진보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이라고 여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누적된 위기가 양질전화한 것

서방 언론에게는 ISIL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 보일 것이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이라크에서 수니파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저항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2의 도시인 모술을 함락시키고 그 지역의 군대를 무너뜨리는 등 양질전화로까지 발전했다. 물론 현재 모든 저항을 ISIL이 이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베트남 전쟁 때도 서방 언론은 미국이 이기고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베트콩들이 1968년 구정을 맞아 집중 공세를 퍼부어 미국 대사관을 잠시 점령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이라크 상황을 베트남 구정공세와 비교하는 말들이 많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과 다른 점도 있다. 베트남 구정공세는 미국이 베트남에 계속 개입하려는 의지를 꺾었다는 상징이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그런데 이라크의 경우, 미국은 이미 철군하고 없다.

이것이 미국에게는 치명적 약점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했을 때는 군대와 돈을 이용해 수니파 저항 세력과 동맹을 맺고 또 매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상황을 안정시키기가 어렵다.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미국의 공습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 미국의 공습은 제국주의 세력의 영향력을 지키고, 또 키우기 위한 것이다.

한편, 알카에다조차 ISIL을 극단적이라고 비난했다. ISIL이 다른 수니파나 시아파 등에 대해 취하는 태도 때문이다. 시리아에서 ISIL은 도시를 장악한 뒤 극단적인 이슬람 율법을 강요했다.

아직 이라크에서는 그러지 않고 있다. 아마도 전술적인 고려와 여러 동맹 세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최근 ISIL은 이라크 내 다른 저항세력들을 무장해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장차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봐야 한다.

현재 이라크에서 인상적인 것은 미군 점령기의 저항 세력들이 다시금 등장했다는 것이다. 무슬림학자연합이나 과거 바트당 세력 등이 그렇다.

이들의 재등장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저항 세력을 분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실, 미국은 타협과 매수로 점령의 위기에서 빠져나가려 했던 것이다.

현재 이라크의 말리키 정권이 몰락하면 이런 저항세력들이 성장할 공간이 열릴 것이다. 물론 어떤 세력이 성장하고 주도권을 잡게 될지 미리 알 수는 없다. 그만큼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리키 정권 전복을 분명히 지지해야 한다.

말리키와 손잡았던 오바마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리키 정권이 전복되길 바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