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내가 경험한 민영화된 미국 의료 시스템:
가난하면 결코 아파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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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 봤어? 의사가 뭐래?” 우리가 흔히 하는 이 표현들을 미국인들은 잘 쓰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의료비라는 공포가 상식인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약 먹었어? 먹을 비타민 있어? 물 많이 마시고 푹 쉬어” 할 뿐이다.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가 사회의 핫이슈인 지금 “완성된 의료 민영화의 사회”에서 살아 본 내 경험이, 이미 저항을 조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뚜렷한 정당성을 주고 이 싸움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같이 싸우자는 제안이 되기를 바라며
싹싹한 미국인들은 유학생이던 나와 친해질 때마다 한국이랑 미국이랑 어떻게 다른지 또 어디가 더 좋은지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두 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비교해서 이야기해 주고는 했는데 덕분에 미국에서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구급차 이용 요금 3백만 원
우선 이미 유명한 미국의 앰뷸런스에 대한 일화다. 학업을 마치고 마리아나
앰뷸런스 이야기 하나 더. 간호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조단
다음 내가 겪은 일은 민영화된 의료의 왕국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비쌀 뿐 아니라 느리고 불편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지난해 가을 나는 잇몸에 문제가 생겨서 아프고 무서웠다. 돈도 없고 가입 된 보험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원, 한국으로 치면 보건소 같은 곳을 찾아냈다. 오후에 첫 방문을 했는데, 검진을 받으려면 그 병원에 먼저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은 아침에만 하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오라더라. 수업이 없는 날을 기다려 안내받은 대로 일찍 갔더니 진료인력이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7시에 병원문이 열리면 그 전부터 줄을 선 사람들에게 번호표를 준다더라. 난 그 번호표가 다 나간 후 병원에 갔고 그래서 또 진료받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 잇몸 염증은 다 나았다. 말 그대로 내 몸의 치유능력이 미국의 서민의료시스템보다 빨랐던 것이다. 아픈 것은 나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을까 걱정돼 일찍부터 줄 서서 그 등록이라는 것을 했다. 그런데 그 병원을 이용하기 위해서 내 신분과 소득수준, 그러니까 너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혀 없지도 않은 수준의 소득이 있다는 것을 지난해 낸 소득세 영수증과 월세 얼마짜리의 집에 사는지가 나오는 계약서 따위로 증명해야 했다.
기다림의 연속
잇몸 사건을 겪은 후, 그냥 “안 아파야지” 하며 미국에 사는 것은 위험할 수 있음을 깨닫고, 나는 갖은 고생과 상담 그리고 나의 가난함에 대한 증명을 통해 어렵게 그리고 운 좋게 메디칼
나는 기침이 심해서 3월 초에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그로부터 2주쯤 뒤인 3월 19일에나 의사를 볼 수 있었다. “나 병원가야 돼” 라는 표현이 영어에서 “I have to see a doctor”보다 “I have a doctor’s appointment”라고 더 많이 쓰이는 것만으로도 내가 원할 때 병원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화로 예약을 잡고 그 날을 기다려 의사를 만나는 미국의 의료문화를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에 가입할 때 어떤 병원 어떤 의사를 나의 주치의로 할지 정해야 해서 그 병원이 붐비거나 나의 주치의가 바쁘면 그냥 2주든 얼마든 기다려야 한다.
어쨌든 병원에 갔더니 결핵이 의심된다고 X-ray를 찍으라고 하고는, 또 그 병원 그리고 내 보험과 연결된 방사선과의 주소를 줬다. 그 병원에서 8킬로미터, 그러니까 서울로 치면 고려대에서 연세대쯤 되는, 전혀 가깝지 않은 곳에서 X-ray를 찍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병원을 떠나며 또 가장 가까운 날에 예약을 잡으니 그것이 3월 29일이었고, 나는 그날부터 약을 타먹을 수 있었다. 정리하면,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의사를 보려고 시도한 지 약 한 달 만에 나에게 필요한 약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주 나는 똑같은 약을 받으려 서울의 한 보건소를 찾았다. 번호표 뽑고, 간호사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보건소 지하에서 X-ray를 찍고, 2층에서 피 뽑고, 1층에서 의사와 진료하고 약까지 받는 데 48분이 걸렸다. 그리고 한 푼도 안 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아프다고 하면, 일을 하시던 엄마는 늘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위로를 구하는 아이에게 하기에 다소 쌀쌀맞은 말이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생각하니 가난하기는 했지만 아들에게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울엄마의 사정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한국의 공공의료가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나도 안다. 분명한 것은 미국 민중의 처절한 삶에 비춰볼 때, 의료 민영화는 우리가 결코 걷지 말아야 할 길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