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하 SWP) 중앙위원장인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자본주의 체제와 유럽 급진좌파의 현 상태에 관한 글을 SWP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기고했다. 그 글을 차승일 기자가 요약해 소개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8월 7~10일 서울 고려대학교에서 열리는 맑시즘2014 강연을 위해 방한한다.


현재 상황은 역설적이다. 자본이 약하지만 급진좌파는 훨씬 더 약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본은 경제적으로는 약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강하다. 체제에 대한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확신이 강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신뢰할 만한 반자본주의적 대안이 약해서이다.

2008~09년 대불황 이후 경제의 회복이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자본이 경제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지배계급의 일부도 경제가 “1백 년에 한 번 올 부진”에 빠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경제 위기가 대중의 급진화나 혁명을 자동으로 낳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진 지금은 반자본주의 좌파가 대안적 관점을 내놓기에 좋은 시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급진좌파의 상태는 그렇지 못하다.

지난 15년 급진좌파의 궤적

1989~91년 스탈린 체제들이 몰락하며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다. 그러나 1999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WTO 회담을 봉쇄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시애틀 전투’라고도 불린 이 운동은 이른바 대안 세계화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9·11 사태와 조지 W 부시 정부의 국제적 비상사태 선포는 저항이 경제 문제에서 정치 문제로 확장되도록 자극했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반전운동으로 이어졌다. 2003년 2월 15일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해 전 세계적으로 1천만 명이 거리로 나오는 대규모 운동이 일어났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시기에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단결 정서가 광범했다. 그래서 정치적 차이를 경시하거나 스리슬쩍 넘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중요한 논쟁도 있었다. 신자유주의와 전쟁의 관계, 정당과 운동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과는 독립적이었지만 상호작용하면서 좌파 정당들의 새 결집체들이 나타났다. 이 결집체들은 사회자유주의(신자유주의를 수용한 부류의 사회민주주의)를 거부했다. 이 결집체들은 사회민주주의 왼쪽에서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 열리는 것을 보여 주는 듯했다. 그 예로는 이탈리아의 리폰다치오네 코무니스타(재건공산당), 독일의 디링케(좌파당), 그리스의 시리자, 포르투갈의 좌파블록, 스코틀랜드의 사회당, 덴마크의 적록동맹, 영국의 리스펙트 등이 있었다.

급진좌파는 부르주아 정치에 파열구를 내기 시작했다. 가장 극명한 사례는 프랑스의 극좌파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이하 LCR)과 사회당 좌파가 2005년 5월 유럽헌법 반대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가,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집권했다.

그러나 2005년 5월 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급진좌파들은 분열하거나(2006년 스코틀랜드 사회당, 2007년 영국 리스펙트), 선거에서 지지율이 대폭 하락했다(2011년 포르투갈 좌파블록). 두 가지 현상이 다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이탈리아 재건공산당).

이처럼, 2008~09년의 경제 위기가 닥치기 전에 급진좌파들은 혼란을 겪었다. 급진좌파의 약화는 경제 위기 와중에도 계속됐다.

물론 프랑스에서는 사태 전개가 조금 달랐다.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정치 결집체가 비교적 늦게 결성됐다. 2008년 사회당에서 분열해 나온 사람들이 좌파당을 결성했다. 2009년 초 LCR은 반자본주의신당(이하 NPA)를 결성했다. 이 두 정당은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었다.

그러나 NPA는 선거에서 좌파당과 그 동맹인 좌파전선(공산당이 주도한다)에 뒤지면서 2011~12년에 고통스러운 내부 위기를 겪었다. 그 결과 2012년 7월 LCR 출신의 걸출한 활동가도 많이 포함된 수백 명이 NPA에서 이탈해 좌파전선으로 갔다. 그들은 좌파전선 안에서 ‘반자본주의 좌파’를 결성했다.

한편, SWP는 적어도 네 번의 분열을 겪었다. 2010년 리스펙트의 위기를 배경으로 한 분열, 2011년 주로 글래스고의 청년 당원들을 중심으로 한 분열, 2012~13년 서로 관련 있는 두 번의 분열. 2012~13년의 분열로 7백여 명이 탈당해 세 개의 극좌파 조직을 결성했다.

이에 더해 옛 시절의 악습(예를 들어 스탈린주의)도 급진좌파를 계속 괴롭히고 있는 듯하다. 9·11 사태 이후 영국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반전운동의 성장에 주도적 구실을 했던 영국 전쟁저지연합이 그것을 잘 보여 준다. 2000년대 후반 반전운동이 쇠퇴한 뒤로 영국 전쟁저지연합 안에서 스탈린주의 정치가 득세했다. 예를 들어, 전쟁저지연합의 주도적 활동가들은 서방의 시리아 개입을 반대하면서도 아사드 정권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우크라이나 위기 때는 나토와 유럽연합을 비난하면서도, 크림반도를 장악한 러시아는 비판하지 않는 진영 논리에 빠졌다.

정치가 중요하다

위기에 빠진 것은 정당이지 운동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아랍 혁명, 아랍 혁명에 고무돼 새로 시작된 저항 물결이 있다. 스페인의 5월 15일 운동, 미국의 점거하라 운동이 그것이다. 2010년 영국 학생들의 폭발적 운동, 2013년 브라질과 터키의 대중 시위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운동들을 자본을 전복하는 동시에 옛 좌파의 허를 찌르는 집중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투쟁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와 정당이 사회의 근본적 결정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사례는 이집트 혁명이다. 이집트에서는 한 정당(무슬림형제단)의 오류, 다른 정당들(자유주의, 스탈린주의, 좌파 민족주의)의 배신이 군부의 반혁명 공세에 문을 열어 줬다. 2013년 터키에서도 게지 공원 점거 시위는 공원 자체는 구했지만, 정치는 여전히 총리 에르도안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점거하라 운동이 정치적 의제를 크게 바꿨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여전히 민주당이 득세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해, 새로운 형태의 좌파 정치가 떠오르고 있다는 증거는 실재한다기보다는 외관적이다. 그리스 노동계급의 강력한 저항으로 시리자가 그리스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예외일 수 있다. 그러나 2012년 총선의 큰 성공 이후 2년 동안 시리자는 확실히 중도로 옮겨갔다. 스스로 정부를 운영할 수 있는 책임성 있는 정당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시리자 내 좌파는 주변화됐다. 유럽집행위원회 의장으로 중도우파이자 긴축론자인 장클로드 융커를 치프라스가 지지한 것은 시리자의 우경화를 아주 잘 보여 준다. 좌파 개혁주의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다.

유럽 전역에서 경제 위기와 긴축이 낳은 환멸은 주로 우익 포퓰리즘과 파시즘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프랑스의 국민전선, 영국의 영국독립당이 대표 사례다. 2014년 5월의 유럽의회 선거는 그 추세를 확실히 보여 줬다. 물론 지중해 연안국들에서는 이와 상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스에서 시리자가 1위를 했고, 스페인에서 5월 15일 운동의 산물인 포데모스가 성공했다.

이런 사태들이 결합되며 “반정치” 얘기가 많아졌다. 그런데 ‘반정치’ 담론들은 정치를 ‘자본주의적 정치’와 동일시하고 ‘공산주의’를 반정치의 한 유형으로 보는 근본적 오류를 범한다. 국가를 둘러싼 투쟁이 모두 부르주아 정치의 한 유형인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유지하는 데서 국가가 여전히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으므로 부르주아 사회의 모순은 모두 국가와 융합되고, 그래서 국가를 둘러싼 투쟁은 단지 자본가의 지배를 영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협하기도 한다.

‘반정치’ 담론은 권력을 잡지 않고도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자율주의의 신화와 타협하고, 그럼으로써 전략을 포기한다. 2011~12년 이집트의 젊은 혁명가들은 거리 운동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는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선거 정치를 회피했다. 그럼으로써 선거 정치 영역을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에게 내맡겨 버렸다. 그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은 엘 시시가 이끄는 군부 통치로 가는 길을 열었다.

주요 정당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하락하고 있지만 아직 ‘국가의 일반적 위기’ 상태는 아니다

‘반정치’ 담론은 현실을 원래보다 더 낙관적으로 본다. 그람시가 말한 “국가의 일반적 위기” 상황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배계급 헤게모니의 위기는 지배계급이 주요 정치적 과업에서 잘못을 저지르거나 대중의 동의가 빠져나가서, 또는 많은 대중이 정치적 수동성 상태로부터 확실한 활동 상태로 갑자기 나아가서 … 생긴다. ‘권위의 위기’가 표출된다. 이것은 정확하게 헤게모니의 위기이고, 국가의 일반적 위기이다.

“이런 위기가 발생하면 당장의 상황은 유동적이 되고 위험해진다. 폭력적 해법, 잘 알지 못하던 세력들, ‘운명의 카리스마적 인간’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활동할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현 상태를 “국가의 일반적 위기”로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오늘날의 상황은 모든 주요 정당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대체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중이 거듭거듭 수동적 상태로 돌아가는 특징이 있다. 항의성 투표가 간간이 끼어들고, 이따금 폭발적으로 대중 운동이 일어나지만, 지금까지 그런 운동이 지속되지는 못했다.

주류 정당들에 대한 지지 하락은 두 가지 과정이 낳은 결과다. 하나는 장기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좀 더 단기적인 것이다.

개인주의

장기적인 것은 파편화와 개인주의화로 나아가는 경향이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대중 조직들의 기반이 약화된다. 그 대중 조직에는 정당뿐 아니라 주류 교회 같은 기관도 포함된다. 이런 경향은 전후 장기 호황기에도 있었다. 당시에는 대중이 “풍족”해서 “무관심” 병에 걸렸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개인주의화 경향이 비교적 약했다. 토니 클리프는 당시에 이렇게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길이 좁아지거나 닫히는 특정한 상황에서 무관심은 반대의 것으로, 즉 급격한 대중 행동으로 바뀔 수 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대중적 노동자 투쟁이 분출한 것이 그런 결과였다.

단기적인 것은 신자유주의가 파편화와 개인주의적 경향을 강화하고 노동계급 조직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대중적 노동자 투쟁의 분출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 방식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부르주아 정치도 바꾸었다. 주류 정당들이 모두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 결과 선거 정치에서는 차이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와 경제 위기가 가하는 물질적 영향이 결합되면서 “정치적 계급”(주류 정치인들을 표현하는 말)이 유권자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정치적 계급’이 시민들과 구조적으로 단절되고 부유한 세계로 통합되면서 모든 정당에 대한 대중의 거부 정서가 강해졌다. 이 정서는 “모두 물러나라”는 구호로 집약된다. 이 구호는 2001~02년 아르헨티나 항쟁에서 나온 구호다. 모든 정당에 대한 거부 정서는 ‘반정치’라고 부를 만한데, 이것은 경제 위기, 긴축, 부패 추문 같은 요소 탓에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서를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은 우익 포퓰리스트들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대체로 ‘반정치’를 자처하지 않는다. 대신 ‘아웃사이더’를 자처한다.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그들 특유의 계획을 내놓고 그걸 둘러싸고 주도권을 잡아 부르주아 정치를 재편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 낮은 수준의 계급투쟁

왜 우익 포퓰리즘이 경제 위기 속에서 주류 정치와 대중의 괴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가?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경제 위기의 초입에 급진좌파들이 약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시리자라는 예외가 있다. 그러나 시리자가 크게 성공한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그리스의 계급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난 덕분이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노동자들이 시리자의 집권을 기다리면서 계급투쟁 수위가 하락하는 효과가 나고 있다.

사실, 그리스는 다른 곳에서 빠진 요소를 잘 보여 준다. 바로 지난 15년 동안 반자본주의적 급진화 물결이 있었지만 노동계급의 투쟁이 지속적으로 분출하는 것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좌파가 전진한 시기는 1860년대와 1880년대,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둘러싼 시기, 1930년대, 1967~76년이다. 그때는 하나같이 노동운동이 눈에 띄게 전진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시기에는 이 연결고리가 빠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중요한 투쟁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프랑스의 대규모 파업, 2011년 영국 공공부문 파업, 2012년 미국 시카고 교사 파업은 모두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그러나 지금 경제적 계급투쟁이 지속적으로, 충분한 규모로 일어나는 곳은 없다. 그동안 노동운동이 겪은 패배를 역전시킬 만큼 공세적으로 투쟁이 일어나는 곳도 없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것이 오늘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현재 상황과 관련된 몇 가지 이론적 쟁점

(1) 급진좌파의 취약성과 관련된 이론적 쟁점 1: 오늘날 경제적 계급투쟁은 왜 수세적이고 분산적인가?

이것에 대해 세 가지 설명이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심대하게 바꿔서 집단적 행동 가능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설명이다.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세계적 합리성”으로 “인간 존재의 모든 측면을 통합시켜 세계를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경제뿐 아니라 사회관계의 모든 측면을 경쟁 논리에 종속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이 주장은 옳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사람들을 위로부터 개조해 모두 똑같이 만들었고 그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는 점에서는 중요한 결함이 있다.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기업인처럼 바뀌었다면 어떻게 저항이 계속 일어나고 급진화가 실제로 지속될 수 있었는가? 그람시가 주장했듯이, 연대와 집단행동의 토대는 여전히 강력하다. 그람시는 대중이 생산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과거 노동운동의 유산을 공유하므로 연대하고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신자유주의 하에서 경제의 구조조정이 일어나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할 능력이 약해졌다는 설명이다. 셋째,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노조 관료들을 강화시킨 배신과 패배의 사이클을 강조하는 설명이다.

계급투쟁이 강력했던 마지막 시기와 지금의 시간적 격차를 보면 둘째 설명과 셋째 설명을 조합하면 가장 적절한 대답이 될 듯 보인다. 그러나 경제적 구조조정이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구성이 바뀌는 것(예를 들어,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것과 이주 노동자가 계속 유입되는 것)은 착취에 맞서는 저항과 차별에 맞서는 저항을 융합시켜 새로운 급진화의 자극을 줄 수도 있다.

(2) 급진좌파의 취약성과 관련된 이론적 쟁점 2: 정치조직, 특히 레닌주의 조직은 끝났는가?

‘반정치’ 현상은 정당이 더는 쓸모 없는 것이 됐음을 뜻하는가? 특히 레닌주의 정당은 이제 끝났는가? 내가 레닌주의 정당이 끝났다는 주장에 부정적으로 답하자 여기저기서 공격이 들어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적 좌파에서는 레닌주의에 대한 재평가가 매우 광범하게 일어나고 있다. 적어도 영어권에서는 그렇다. 대표 사례가 라르스 리의 기념비적 저술이다. 리는 레닌의 1902년 작 《무엇을 할 것인가?》가 음모적이고 엘리트적인 조직을 만들자고 주장했다는 신화를 교정하려 했다. 리는 레닌이 독일 사회민주당과는 다른 독특한 정당을 만들려 했던 것이 전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리의 노력은 레닌을 전체주의의 화신으로 그리는 부르주아적 관점을 교정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레닌을 리처럼 이해하는 것에도 문제는 있다. 이에 관해서는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이번 호에서 폴 블랙레지가 1914년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분열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다뤘다. 다음 호에서 케빈 코어와 개릿 젠킨스가 더 상세히 다룰 것이다.

시리자는 성공하고 NPA와 SWP는 위기를 겪는 지금 시기에 “광범한 정당”에 대한 급진좌파의 환상은 매우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리의 저술은 독립적인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조직을 건설하려는 프로젝트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그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물론 볼셰비키와 최근의 극좌파들이 정당을 건설하려 한 노력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만만찮은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운동이 맞닥뜨린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답을 운동이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급진좌파의 취약성과 관련된 이론적 쟁점 3: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부활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부활은 국제적 현상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의 부활은 더 넓은 반자본주의적 급진화의 일부라는 점을 꼭 봐야 한다. 페미니즘이 다시 떠오르는 맥락에는 세 가지가 관련 있어 보인다. 첫째, 급진화 자체의 제한성이다. 즉, 급진화가 수동적 성격을 띠고 노동계급의 저항이 충분한 힘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는 여전히 매우 여성차별적인데, 1960~70년대의 여성 해방 운동이 가져온 한 가지 효과로 말로만 페미니즘 운운하는 것이 국가와 기업 세계에 제도화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힘 돋우기(임파워먼트)”(서구에서 랩댄스 같은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는)라는 말로 매개됐다.

셋째는 1960~70년대에 발전한 이론적으로 다양한 버전의 페미니즘이 인문·사회과학계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특히 영어권 대학에서 그렇다. 그리고 여기서 다양한 버전의 페미니즘은 포스트식민주의와 퀴어 이론과 만났다. 한편 주디스 버틀러와 낸시 프레이저 같은 중요한 인물들이 새롭게 이론적 변형을 발전시켰다.

이런 사상들은 특히 학생들과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청년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이 청년들은 현재의 급진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내놓은 평등·힘돋우기 약속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언론이 말하는 것과 여성·피차별자들이 실제로 겪는 고통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해방을 가져올 능력이 있는 강력한 세력은 없는 듯하다. 그들에게 조직 좌파의 정치적 언사와 조직 방식은 흔히 너무 낯설다. 이런 이유로 그들이 정치에 접근할 때 도덕적 비판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도덕적 비판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계속해서 물질적·정신적으로 굴욕적인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조건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분석·전략과 만나지 않는다면 도덕적 비판만으로는 효과가 없다. 결국 도덕적 비판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담론이 되거나 위선적 담론이 되기 십상이다. 최근 급진적 진영 안에서 영향을 끼치는 이론적 개념들의 일부, 특히 특권 이론과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 이론은 피차별자 집단들 내부의 차이점을 발굴하는 데 치중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상호교차성’은 착취와 차별의 여러 형태가 서로 융합되는 현실을 묘사하는 개념으로는 유용하다. 그러나 ‘상호교차성’은 내가 거의 20년 전에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면서 쓴 “자기 차별 내세우기”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 이것의 한계는 개인 체험을 물신화하는 극단적 주관주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개인 체험이 압도하면 비판적 분석과 정치적 논의가 불가능해진다.

새롭게 급진화하는 세대가 자기들이 쉽게 접하는 이론에 이끌리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고 사실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이론들은 대부분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애틀 이후 일어난 급진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체제 자체를 겨냥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자본주의와 여성 차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여성 해방 운동이 일어난 1960~70년대에 벌어진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사이의 논쟁에 유용한 정보가 많다.

1980년대에 전반적으로 우경화가 일어나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무너졌다. 이 상황 덕분에, 여성 차별을 논의하는 데서 급진 페미니즘과 여러 버전의 포스트모더니즘, 나중에는 포스트식민주의가 득세하게 됐고, 여기서 계급과 여성 차별의 관계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됐다.

현 상황에서 여성 차별에 맞선 저항과 자본주의 비판을 연관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매력을 줄 수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1970년대의 논쟁 동안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을 통합시키려 했던 노력의 산물이었다. 핵심 인물은 하이디 하트먼이다.

최근 미국 마르크스주의자인 섀런 스미스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되살리려 하면서 노동계급 남성이 여성 차별에서 득을 보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곧장 나아갔다. 스미스는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이 발전시킨 여성 차별 이론을 공격하는 맥락에서 그렇게 했다. 스미스는 IST가 ‘환원론’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IST의 이론은]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는 계급투쟁만으로도 여성 차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된다.”

스미스의 주장은 중상모략이다. SWP가 낙태권 옹호 운동에서 한 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말이 완전한 어불성설임을 알 것이다. 우리는 여성 차별의 기원과 극복 방안을 놓고 페미니스트들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 해방을 위해 헌신해야 하고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눈앞의 문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페미니스트들과 생각이 같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따라 IST의 창립자 토니 클리프는 모든 형태의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그 피해자가 노동자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고,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의 핵심적 일부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럼에도 IST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부활에 걸림돌이 된다는 스미스의 말은 꽤나 옳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일어난 논쟁에서 린지 저먼과 크리스 하먼은 스미스 등이 되살리려고 하는 많은 가정들에 이의 제기를 했다. 즉, 저먼과 하먼은 가부장제 이론을 허물어뜨렸다. 그 이론이 공상적이고 초역사적이라는 점을 드러내며 그랬다.

그러나 1960~70년대에 하먼은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은 모든 것을 계급 문제로 환원시켜 여성 차별의 현실에 사실상 눈감는다”는 비난에 답변을 내놓았는데 이는 스미스에 대한 답변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여성 차별 문제를 계급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모든 계급의 여성이 차별받는다. 어떤 사회에서 소수 인종이 계급과 상관없이 차별받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계급 사회의 근저에 있는 그 차별의 근원에 도전하지 않고서는 그 차별을 없애지 못한다고 우리는 말한다. 계급 사회에 반대하는 투쟁과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투쟁, 두 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형태의 착취와 차별의 원인에 반대하는 하나의 투쟁이 있을 뿐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 차별을 낳는 물질적 결정 요인들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현재 임금노동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다.(선진 경제에서 비농업 부문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 가운데 거의 50퍼센트가 여성이다.) 이런 경향은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내에서 주도적 구실을 할 능력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착취와 차별의 체제 전체를 묻어 버릴 수 있는 노동계급 내에서 말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노동운동이 이런 획기적인 상황 변화를 반영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지금 시기에는 ‘혁명적 인내심’이 필요하다

급진좌파가 현재 겪는 어려움을 균형감각 있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 위기는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 비판의 정당함을 확인해 줬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마르크스에 대한 칭찬을 돌려서 말하고 있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위기가 이데올로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저명한 소설가인 어느 마르크스주의자는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적 사상과 문화가 정말로 부흥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30살 이하의 많은 사람들의 충성을 박탈당했다는 것이 십중팔구 가장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산업 자본주의가 남반구로 확장되며 노동계급이 국제적으로 확대됐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화가 더 촉진됐다.

문제는 방대한 구조조정으로 노동운동의 기존 구조가 파괴되고, 위기가 급습하고, 자본가들이 계속해서 공격을 해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급진좌파 위기는 이런 배경에 비춰 이해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막 시작한 약 35년 전 크리스 하먼은 두고두고 볼 만한 분석을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기고했다. 그 논문은 당시 유럽의 혁명적 좌파들이 겪고 있던 위기에 관해 쓴 것이다. 당시 혁명적 좌파들이 겪은 위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혹독하고 집중적이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일어난 위대한 노동자 투쟁 속에서 떠오른 중요한 극좌파 조직들이 아주 짧은 기간에 와해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위기는 당시보다 훨씬 더 분산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위험하다. 지금의 혁명적 좌파가 당시보다 훨씬 더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SWP나 NPA 같은 조직을 분열시키거나 파괴하려는 행동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다.

하먼은 다음과 같은 말로 앞에서 언급한 논문의 결론을 썼다.

“혁명적 인내심은 오늘날 꼭 필요한 덕목이다. 혁명적 인내심은 말로는 ‘전환기’를 얘기하지만, 실천에서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 아닌 개혁주의적 땜질로 이끌리는 것의 유일한 대안이다. 혁명적 인내심은 수명이 짧은 ‘새 운동’을 좇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의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혁명적 인내심을 종파적 수동성과 혼동하면 안 된다. 혁명적 인내심은, 투쟁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포착해, 조직을 시험하고 최상의 새 활동가들을 가입시키고, 노동계급 내에서 조직의 영향력을 키워서, 필수불가결한 정당으로 천천히 나아간다는 뜻이다.”

다니엘 벤사이드도 자서전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느린 조바심”을 말했다. ‘느린 조바심’은 “활동적인 기다림, 긴박한 인내심, 참을성, 끈기로서, 기적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것은 세력 균형이 우리 편에 유리해졌을 때 혁명가들이 역사를 만드는 좋은 위치에 서 있게 되기 위해, 현재에 개입해 중요한 영향을 미치려는 단호하고 완강한 노력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