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서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소득 주도 성장론이 부상하고 있다. 주로 진보적 케인스주의자들이 주장해 온 임금 주도 성장론과 비슷한 이야기를 최근에는 국제노동기구(ILO),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 보수적 국제기구들도 제기하고 있다.

진보정당들뿐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의 일부 의원들도 소득 주도 성장론을 주장한다. 경제부총리 최경환도 소득 주도 성장론을 일부 반영한 정책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말잔치로만 끝났던 경제민주화론의 후속편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말이다.

신자유주의가 경제 성장도, 공평한 분배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소득 주도 성장론은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잡는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연대〉 독자들은 임금을 올려 노동계급의 처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당연히 동의한다. 그러나 소득을 올린다고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물론 소득 주도 성장론에는 합리적 핵심이 일부 담겨 있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줄면 소비가 위축돼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개입해 소비를 늘리는 정책은 단기적으로 경제를 회복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래서 공공 일자리를 늘려 소득을 늘리려 했던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은 일시적인 효과를 거두긴 했다.

그러나 그 회복은 매우 미약했다. 1937년에 미국 연방정부가 지출을 줄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은 또다시 “역사상 최악의 경기후퇴”를 맞아야 했다.

역사적으로 소득 주도 성장론은 그 효과가 제한적이거나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유는 소득 주도 성장론이 경제 위기의 주된 원인을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대중의 소비 부족을 경제 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본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경제 성장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중의 소비보다는 자본가들의 투자다.

기업들은 생산을 늘리기 위해 기계나 소프트웨어 등을 구매하고, 공장, 쇼핑몰, 사무실 등을 건설하며 생산적인 소비를 확대할 수 있다. 투자가 충분히 크다면 임금이나 소득의 정체 또는 감소는 경기후퇴를 낳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 경제 통계를 보면, 기업들의 투자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33년~2008년 민간 비주택용 고정투자 수요가 GDP보다 거의 네 배, 개인 소비보다 거의 다섯 배 빠르게 성장했다. … [같은 기간] 소득 중 투자의 몫은 거의 네 배 증가했던 반면, 소비 몫은 16퍼센트 하락했다.”(앤드류 클라이먼,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한울.)

‘과잉생산자’

사실, 자본주의에서는 아무리 임금을 올린다고 해도 노동자들은 생산된 상품 전체를 구입할 수 없다. 사장들은 노동자들을 일 시켜 기계와 건물의 소모 비용, 원료비와 임금을 보존할 뿐 아니라 이윤도 반드시 얻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매출액 대비 임금 비율이 2013년에 1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번 투자를 위한 적립금과 이윤을 사용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본가들이 결정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처럼 노동자는 언제나 ‘과잉생산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공평한 분배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언제나 있어 왔다. 경제 위기는 분배 문제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에서 비롯한다. 이윤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는 시기에는 투자가 줄면서 고용,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게 될 공산이 크다. 노동자들이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지 않는 수준에서 요구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대립한다는 사실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가 ‘윈-윈’ 할 수 있다는 소득 주도 성장론은 결국 딜레마에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소득 주도 성장론이 현실에서 실패로 드러나면 또 다른 경제 성장론으로 문을 열어줄 수 있다. 실제로, 서구의 많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1970년대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 주도의 소비 확대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 신자유주의로 돌아섰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소비가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윤을 놓고 경쟁하는 생산 체제라는 자본주의의 본질 때문이다.

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단념하지 않고 전개하는 것과 함께, 자본주의 자체를 뛰어넘는 근본적 사회 변혁을 위한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